나리타 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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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ght view of Tokyo Narita Airport Terminal 1.JPG
공항 정보
코드 IATA: NRT, ICAO: RJAA
웹사이트 공식 홈페이지

일본의 관문

개요

포화에 이른 도쿄 국제공항(하네다)의 부하를 분담하기 위해 신설한 공항.

원래 계획대로 라면 4000m급 평행 활주로 한쌍과 측풍에 대비한 3200m급 활주로 1개의 대형 공항이 되어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역사

좋아, 새 공항을 짓자. 어디다 짓지?

1960년대에 이미 충분히 포화에 다다른 도쿄 국제공항의 부하를 해소시키기 위해, 국토교통성은 고민을 했다. 초반에는 그냥 하네다를 무한 확장하는 방안도 생각해보았으나, 도쿄항 수로의 간섭과 주거지의 소음 문제, 부근의 미 공군 기지의 간섭으로 딱히 이득이 없다고 판단 되었다.나중에 이리저리 다 했다는 건 비밀 이에 신공항 부지를 물색하고 치바현 미사토시가 선정되었으나, 치바현 측에서 난색을 표함에 따라 새로운 후보지를 물색했다.

  1. 치바현 미사토시
  2. 이바라키현 가스미가우라시[1]
  3. 요코하마시 가나자와구 일대 앞바다

미사토시 이외에는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되어 최종적으로 미사토시로 결정되었지만, 치바현에서는 지속적으로 난색을 표한다. 이에 정부는 부근의 나리타시 산리즈카를 내정하고, 치바현도 이에 합의함에 따라 1966년 7월 4일, 신공항은 치바현 나리타시 산리즈카에 짓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2]

어디서 땅을 날로 먹으려고?!

사실 산리즈카를 최종 결정한 것은, 정부 소유의 토지가 상당수 있기 때문에 행정 대집행으로 나머지 사유지만 정리하면 쉽게 공항 건설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뒤에 숨어있었다.

이에 정부는 사유지를 소유한 농민들에 대해 주민설명회 같은 건 하지도 않고 별다른 보상방안도 마련하고 있지 않았다. 1966년 7월 20일 분노한 농민들은 <산리즈카·시바야마 연합 공항 반대 연맹>을 결성하고 반대 농성에 들어간다. 일본 사회당일본 공산당이 참여했으나 사회당이 치바현과 신사협약을 맺어 뒤통수를 치면서 공산당도 난리통 속에 그만두게 된다.

2년 후, 홀로 싸우던 농민 세력에 신좌파가 합류한다. 반국가 투쟁 단체였던 이들은 갈고 닦았던 실력을 전수하면서 반대 연맹을 순식간에 반대 게릴라로 변모시킨다. 이때부터 일명 <산리즈카 투쟁>의 역사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하, 남은 활주로는 언제 짓지?

1978년에 신도쿄 국제공항이 개항했지만, 활주로는 A활주로 하나 뿐이었다. 하네다 국제공항의 국제선이 통쨰로 옮겨왔기 때문에 이를 모두 처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용량이었다. 이에 1차 공사에서 짓지 못한 B활주로 공사를 해볼려고 했더니, 1985년에 치바현 수용위원회 회장이 게릴라에게 구타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은 협박으로 치바현 수용위원회 전원이 사퇴함에 따라 2004년에 다시 임명되기 전까지 수용위원회가 완전히 기능을 잃게 되고, 2차 공항 확장도 일단 중단되었다.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 A활주로만으로는 넘쳐나는 수요에 허덕거릴 것이 자명한 상황이 되자 급히 B활주로 조성에 착수한다. 지난 산리즈카 투쟁에서 그나마 좀 얻은 교훈이 있었는지, 이번 공사에서는 NAA가 발로 뛰면서 공청회를 열고 주민에게 양해를 구했고, 일단 구해놓은 땅을 이용해 2001년 11월 30일 2200m급의 잠정 활주로를 개방한다.[3]

틀:공사 2500m급의 현재 B활주로는 2010년에 조성되었다.

현재 : 만신창이 누더기 공항

시설

사건사고

NAA vs 게릴라

그 외 평범한 사고들

각주

  1. 지금의 이바라키 공항이다. 예전에 아시아나에서 도쿄행이랍시고 이바라키행을 돌렸던 전적이 있다.
  2. 나리타 공항 ~그 역할과 현황~ 4.1장 나리타 공항의 개항, 나리타 국제공항 주식회사, 2012년 [1]
  3. 나리타 공항 ~그 역할과 현황~ 4.2장 잠정 평행 활주로의 개시까지, 나리타 국제공항 주식회사, 2012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