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부탄 왕국
འབྲུག་རྒྱལ་ཁབ་
인도의 보호국
Flag of Bhutan.svg
국기
Emblem of Bhutan.svg
국장
Bhutan (orthographic projection).svg
나라 정보
국어 종카어
정부유형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군주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총리 로테이 체링
기타 정보
화폐 눌탐
ISO 064, BT, BTN

부탄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아시아나라로 남쪽에는 인도, 북쪽에는 중국 티베트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직접적으로 접해 있지는 않지만, 네팔, 방글라데시하고도 많이 가깝다. 나라가 험한 산지에 있다 보니 고도가 많이 높은 편이다.

지리[편집 | 원본 편집]

나라가 히말라야 산맥에 걸쳐 있다보니 고도가 많이 높은 편이다. 북쪽으로 갈수록 기온이 낮아지고 고도가 더 높아지는 반면, 남쪽은 평평하고 온대기후 이다.

경제[편집 | 원본 편집]

일단 전체적인 국내총생산은 낮아 가난한 나라이지만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낮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조금씩 경제가 성장하며 점차 국민들의 행복도가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사회[편집 | 원본 편집]

세계적으로 자국민들이 행복한 나라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GNH(Gross National Hapiness)라는 용어가 창시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옛날얘기가 된것이 젊은 층들이 SNS를 접하고 부터는 행복지수가 떨어졌다고 한다.

외교 관계[편집 | 원본 편집]

중국[편집 | 원본 편집]

부탄은 건국 이래로 거의 한결같이 강력한 반중 정책을 펴고 있으며,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관계 자체는 매우 험악하다. 이는 1951년 중국의 티베트 점령이 원인으로, 부탄이 거의 동포에 가깝게 여기는 티베트가 중국 지배 하에 놓이면서, 자칫하면 자신도 중국에 점령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까닭이다. 그나마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지리적 장벽 덕택에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것. 정부간 뿐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중국에 대한 감정은 최악이라, 믿을 수 없는 중국산을 쓸 바에야 차라리 인도산을 쓰겠다는 것이 일반적인 민심이다.

인도/네팔[편집 | 원본 편집]

부탄과 인도와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다. 비록 인도의 주요 종교가 힌두교라지만 티베트 불교 신자도 결코 적지 않으며[1], 특히 접경 지역일수록 과거에는 같은 티베트 문화권이던 시킴 등의 영향으로 높은 동질감을 갖는다. 더욱이 부탄은 내륙국, 거기서도 교통이 매우 불편한 산악지방인지라 좋든간 싫든간 경제적으로는 인도에 많이 기댈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한편 인도 입장에서도 부탄이 매우 중요한데, 특히나 중국을 공통의 적으로 두는 까닭에 부탄을 프렌드 실드로 삼기 위해 가난 등으로 무너지지 않게끔 안보적 및 경제적 직・간접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니 부탄도 자연스럽게 인도와 친해지게 되었고, 오죽하면 화폐마저 상호 통용이 될 수준이다. 특히 중국이 위협적으로 군사행동을 보이면 그냥 곧장 인도에게 지원을 요청할 정도로 상호 동맹 관계가 두터워지고 있다.

한편 부탄과 네팔의 관계는 많이 소원한 편인데, 대다수의 부탄인은 네팔인을 불법체류자로 간주할 정도로 별 곱지 못하게 보고 있다. 이는 같은 티베트계 왕국이었던 시킴이 인도로 편입된 이유가, 시킴 내에 과반수로 거주하던 네팔계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이다. 훗날 부탄 왕실 주도의 네팔인 추방 조치의 원인이었기도 하다.

한국/일본[편집 | 원본 편집]

부탄과 한국의 관계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다만 한국 기독교인들이 하도 부탄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추방되는 사례가 잦아, 민간에서도 한국하면 "기독교 믿는 나라"일 정도. 몰론 불교 승려들이 방문하면 매우 환영해 한다.[2]

부탄과 일본과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으로, 역시나 반중을 공유하는 것이 첫째고, 나머지는 일본의 막강한 경제력 때문이다. 일본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한국이나 러시아와 사이가 친밀하다거나 하진 않아서, 굳이 일본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다보니 위안부나 남방 진출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그저 침묵하는 것.

영국/미국[편집 | 원본 편집]

부탄-영국/미국간의 관계는 적당히 우호적인 편이다. 다만 부탄이 세계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너무 적어서 영미가 부탄에 경제적 투자를 별로 안 하기 때문에, 딱히 긴밀한 관계는 아니다. 다만 반중감정만은 서로 잘 맞아, 중국 비판에는 매우 협조적이다.

부탄이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이 있긴 했으나, 거의 보호령에 준할 정도로 간섭을 안 한 까닭에, 인도와는 달리 딱히 반영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나무위키의 부탄#s-8 문서는 부탄의 단점이 제법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 한국 내 정치판에선 극우파의 관점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애초에 부탄이 정치적으로 칭송받는 것은 부탄 국왕이 민중의 반대에 불구하고 스스로의 절대 권력을 포기하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80년대 민주화 투쟁으로 군사정권의 독재화를 좌절시킨 한국으로선 상상도 못했던 상황으로,[3] 실제로 민주 정부가 들어선 90년대 초 이후로도 대통령직을 비롯한 주류 정당들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게 최고권력을 어떻게하면 따낼 수 있을까에만 혈안되어 있었으며, 이로 인해 한국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개판으로 인식되어 왔다. 때문에 동시대의 부탄의 사례와는 비교도 못할 수치로, 공권력이 없으면 군림할 수 없는 한국의 일부 정치계 입장으로선 매우 위협적인 사례로 비춰질 수 있다. 때문에 어떻게든 까내리기 위해 정말 몇 안 되는 부탄 왕실의 실책으로 평가되는 네팔인 탄압을 내세우곤 하나, 그걸 자국민을 수 십년동안 탄압해온 역사가 있던 한국에서 지적하는게 되려 적반하장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하는건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여행시 자유여행으로 방문하는건 불가능하고 가이드를 동반한 패키지 여행만 가능하다.

각주

  1. 역사적으로는 네팔에서 인도로, 인도에서 티베트/부탄으로 불교가 전파되었고, 그 부탄인의 일부가 산에서 내려와 인도 동북부에 정착한 것에 가깝다. 시킴과 레도 비슷한 경우.
  2. 부탄 입국 제한의 가장 강력한 면제 조건이 승려의 방문이다.
  3. 이는 여타 대부분의 나라들도 마찬가지다보니 부탄의 사례가 매우 부각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