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제국주의(帝國主義, Imperialism)는 한 나라나 조직의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지배권을 타국으로 확대하는 사상이나 이에 기반한 정책을 일컫는다.

명칭은 19세기 대영제국에서 유래된 것이며, 1902년 영국의 경제학자 존 앳킨슨 홉슨에 의해 《제국주의》가 출판되기도 하였다.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존재한다. 가장 유명한 이론은 블라디미르 레닌의 제국주의 개념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다양한 견해[편집 | 원본 편집]

칼 카우츠키[편집 | 원본 편집]

칼 카우츠키는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열강들이 농업지대를 차지하려는 시도로 보았다. 제국주의보다 더 상위의 단계인 초제국주의(Ultraimperialismus)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카우츠키는 초제국주의 상태에서는 세계 카르텔들이 연합하여 세계를 공동착취하며 이 때문에 세계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아래에 하술하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사실 카우츠키를 비판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 역시도 자신의 저서인 <<자본과 축적>>에서 카우츠키의 이론을 비판했다.

당대 카우츠키가 가진 위상을 감안하면 카우츠키의 수정주의 노선을 비판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초제국주의는 "제국주의 위에 더 고도화된 자본주의적 발전단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이비과학적인 부르조아 우익 기회주의의 개념"이라고 까였다.

블라디미르 레닌[편집 | 원본 편집]

레닌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최종단계로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고 정리했다.

  1. 생산과 자본의 집중으로 인한 독점형성
  2.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에 의한 금융자본의 성립과 이를 기초로 한 금융과두제(金融寡頭制)의 발생
  3. 자본수출의 우위
  4. 독점자본가 집단 간의 시장의 분할, 가격정책, 생산규모 등을 통한 경제면에서의 세계분할
  5. 자본주의열강 사이에 지구의 영토적 분할이 이루어지고 영토획득을 위한 투쟁과 식민지쟁탈전이 격화[1]


레닌은 홉슨과 힐퍼딩을 비판하긴 했으나 자신의 제국주의 개념을 정립하면서 홉슨의 《제국주의》(Imperialism)와 힐퍼딩의 《금융자본》(Das Finanzkapital)의 영향을 일정부분 받았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후일 독점자본주의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이끌어내었다. 한국 사회구성체 성격논쟁 당시 그 "국가독점자본주의" 맞다.

로자 룩셈부르크[편집 | 원본 편집]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저작인 《자본과 축적》에서 제국주의의 원동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본주의적 축적이 가져오는 폭력적 착취의 항구적인 과정" 혹은 “아직도 비자본주의적 환경을 가진 세계의 나머지를 독차지하려고 경쟁하는 자본축적 과정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표현한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는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는 관점이다.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도 레닌처럼 당대에 가장 유명한 제국주의 이론인 카우츠키의 평화로운 초제국주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반박한 편이었다. 그녀는 제국주의 국가간의 신성동맹은 있을 수 없다고 바라본 편이다. 즉, 초제국주의는 불가능하다는 관점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말했다.

또 그녀는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확대재생산 모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이는 마르크스가 자본론 2권을 제대로 수정하지 못한 상태에 낸 것이 원인이라고도 지적한다. 그 외에도 애덤 스미스와 리카르도의 이론도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잘못된 이론으로 바탕으로 만든 모형을 만들어서 사회주의의 미래를 예측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결론에 귀결한다.

즉, 자본주의의 팽창은 자본 축적의 한계로 종말을 맞이하는데 이를 막으려고 제국주의가 동원되는 편이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몸집을 한계까지 부풀리기 위한 몸부림을 위해서 자본주의자들은 제국주의란 개념을 등장시켰다.

제국주의는 자본축적 과정에서 비자본주의 지역을 자본주의화하면서도, 선진자본주의 세계를 차지하는 나라가 우위를 차지하고 경제적으로 비자본주의 지역을 자본주의화하면서 나오는 이익을 차지하려고 움직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로자 룩셈부르크가 보는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한계와 모순을 넘어서 자본 축적을 지속하기 위해서 벌이는 정치적인 표현이다.

더 큰 자본 축적을 위해서 정치적인 표현인 제국주의는 폭력적 착취, 군대라는 수단을 이용해서 비자본주의 지역을 점거하고 지배한다. 이후에 제국주의 국가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 무력 충돌로 이어지며, 큰 전쟁이 일어난다고 봤다.

결국은 자본주의라도 자본 축적은 결국 한계가 있는데, 그와중에 자본주의자들은 자신들과 나라가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시도한다. 이때에 억지로 자본 축적을 늘리려고 하는 점에서 나온 개념으로 그들만 이익을 보려고 만든 것이 제국주의라는 정의를 로자 룩셈부르크가 내린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타파하고, 제국주의를 내세운 자본가들의 다른 무기인 민족주의에 속지 말며 연속혁명으로 나가서 타협적인 개혁주의가 아니라 순수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독일 사민당의 주류 거물이던 베른슈타인을 비판했다. 베른슈타인주의, 다르게 잘하자면 타협적 개혁주의는 자본가들에게 놀아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를 모두 비판하면서 자신만의 정치경제이론을 만들어 나갔다. [2][3]

루돌프 힐퍼딩[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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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A. 홉슨[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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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비아[편집 | 원본 편집]

이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이 나와 있으나, 중요한 것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발달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제국주의 국가로는 영국과 프랑스를 필두로 한 식민시대의 유럽 열강[4]을 꼽는다.

현대에 와서는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평가하는 견해도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미국을 제국으로 보는 것은 보통 포스트 모더니즘마르크스주의 계열이고, 반면 니얼 퍼거슨 같은 학자는 제국주의가 전 세계에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고대 중국도 제국주의로 꼽는 견해가 있으나, 현실적으로 자본주의 발생 이전의 전근대 세계에서의 중국은 제국주의라기보다는 패권주의(Hegemonism)의 개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화 시대를 분기로 제국주의와 신제국주의로 나뉜다. 물론 기본 이념은 동일하다. 안토니오 네그리제국 개념 또한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 제국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하였다.

각주

  1. 블라디미르 레닌, 『제국주의론』
  2. https://marx21.or.kr/article/384 참고
  3.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530358 로자 룩셈부르크 정치경제학의 재인식을 위해: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비판적 수용 참고
  4.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 보불전쟁 이후의 독일 제2제국, 아편전쟁신해혁명 이후의 중국,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도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