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Malaysia
Flag of Malaysia.svg
국기
Coat of arms of Malaysia.svg
국장
Malaysia on the globe (Southeast Asia centered).svg
표어
Bersekutu Bertambah Mutu
국가
나의 땅
나라 정보
수도 쿠알라룸푸르 (공식)
푸트라자야 (행정)
공용어 말레이어
국교 이슬람교
정부유형 연방제, 양원제, 의원내각제 입헌군주국
면적 329,847 km2
기타 정보
시간대 MST
ISO 458, MY, MYS
도메인 .my
국제전화 +60

말레이시아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나라다. 수도는 쿠알라룸푸르. 행정중심도시는 푸트라자야.

싱가포르[1],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와 닿아있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면적은 약 33만㎢ 정도로 한반도보다 1.5배 가량 더 넓으며, 인구 숫자는 약 3,000만명 가량으로 대한민국보다도 더 적은 나라이다. 적도 근방에 있는 나라로 계절이 없이 일년 내내 덥고 비가 오는 열대우림 기후(Af)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비교적 경제가 안정되어 있는 나라로 1인당 구매력 기준 GDP로 소국인 싱가포르브루나이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나라이다. 통화는 말레이시아 링깃을 사용한다.

모두 13개의 주가 있는 연방국가이며, 국교가 이슬람교인 이슬람 국가이다. 인구의 60%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말레이인들은 거의 다 이슬람교를 믿으며, 약 30% 가량을 차지하는 화교는 이슬람교 신자가 거의 없고 불교신자가 많은 편. 13개 주 중에서 9개 주는 술탄이 다스리며, 이 술탄이 돌아가면서 국가의 군주를 맡는 입헌군주국이다.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총리가 국가의 정치 수반이며 국왕은 총리를 임명하는 의례적인 권한을 갖고 있으나 국가 전체를 통치하고 있지는 않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이나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영미법에 기반한 법률 체계를 가지고 있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약 4만 년 전부터 말레이시아 반도에는 사람이 거주한 기록이 있다.[2] 식민지 지배 이전 2세기에는 말레이 반도 북부에는 랑카수카 왕국이 있었으며, 15세기 초 구 스리비자야 제국의 왕자였던 파라메스와라가 지금의 말라카 지역에 말레이 반도 최초의 독립 국가로 간주되는 말라카 술탄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1511년 포르투갈이 말라카 술탄국을 침략하면서 말레이 반도는 식민지배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현지인들이 포르투갈의 지배에 저항하였으나 곧 1641년 네덜란드가 동인도(지금의 인도네시아) 지역을 식민지배할 때 같이 식민지로 편입되게 되었다. 이후 1819년 영국싱가포르를 획득한 이후 1824년 네덜란드에게서 말레이 반도의 지배권을 얻게 된다. 그 후에 영국은 보르네오섬에도 일부 식민지를 얻어 보르네오섬의 영역 중 네덜란드가 지배했던 영역은 인도네시아의 영역으로, 영국이 지배한 지역은 말레이시아(+싱가포르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독립 후에 독립)가 된다.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에는 일본 제국이 일시적으로 점령했으나 일본의 패배 이후 영국이 다시 점령한다. 그러나 말레이인들의 강한 저항 속에 1957년 말레이시아 연방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이후에 싱가포르브루나이는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떨어져 나가 독립국가로 자리잡는다.

말레이시아 독립을 이끌었던 초대 총리 압둘 라만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와 같이 ASEAN을 만들고 말레이시아의 발전을 주도했으나 1969년 5월 13일 대폭동이 일어난 이후 계엄령을 선포하고 철권통치를 하는 등 독재자가 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말로 1년만에 사퇴하였고 부총리였던 압둘 라자크 후세인이 충리가 되었다. 이후 압둘 라자크 총리는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이라는 정당을 이끌면서 일당 독재체제를 확고히 구축하였고, 말레이인 우대 정책을 앞세워 중국계를 차별대우하였다. 그러나 1976년에 급서하면서 부총리 후세인 온이 정권을 이양받았다.

후세인 온은 5년 후 1981년에 사임하였고, 곧 마하티르 모하마드가 총리에 올랐다. 모하마드는 한편으로는 일본과 한국으로부터 경제 발전을 배우자는 향동학습정책(向東學習政策, Look East Policy)을 펼치면서 말레이사이 산업화를 이끌고, 말레이인들에 정치적 감시를 완화하는 일을 하면서 수도인 쿠알라룸프르의 과밀화를 막기 위해 행정 수도인 푸트라자야를 건설하는 등 말레이시아의 발전에 힘을 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정선거를 자행하기도 하는 등 자신과 집권정당인 UMNO의 장기집권체제를 구축하고, 중국계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일도 하였다. 마하티르 모하마드는 22년간 장기집권하다가 2003년 10월에 22년만에 퇴임하였다.

이후 2003년에 압둘라 바다위가 총리로 임명되었고, 말레이인 우선 정책인 부미푸트라 정책을 완화하기도 하였으나 2008년 집권여당이 야권에 총선에서 패배하게 되자 의회를 해산하였다. 2009년 UMNO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나집 라자크(2대 총리 압둘 라자크 총리의 아들)은 다시 부미푸트라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집권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이 일본 자민당 못지않은 일당 독주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직접 닿아있지는 않고 다리를 통해 연결된다.
  2. Stephanie Holme (2012년 2월 13일). “Getaway to romance in Malaysia”. stuff.co.nz. 2014년 1월 6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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