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불교(佛敎)는 인도에서 시작된 종교이나, 인도에서는 비교적 소수만이 불교를 유지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국가인 한국, 중국, 일본동남아시아 국가인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종교이다. 불교의 가르침을 받고 수행하는 성직자승려라고 부른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과거 인도 북부의 ‘사키야’라는 부족의 왕족 고타마(瞿曇) 가문의 후예 싯다르타(悉達多)가 설립한 종교로, 싯다르타는 왕족이던 시절 어떤 깨달음을 추구하여 출가를 감행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가족들이 계속해서 귀가를 권유하자 스스로의 머리를 깎아 돌아올 의사가 없음을 단호히 하며 고행길을 떠난 끝에 얻은 깨달음을 정리한 종교이다.

특징[편집 | 원본 편집]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 불교는 ‘교’라는 종교적 뉘앙스를 풍기는 이름과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종교(서양의 religion)과는 다소 개념이 다르다.[1] Religion은 초월적인 존재인 ‘신’이란 개념을 정해두고 그것을 반드시 숭배할 것을 기본 골자로 삼고 있지만, 불교는 신의 개념을 부정하지는 않되 신의 숭배를 의무로 잡아두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 다르다. 즉, 불교에서 인정하는 ‘신’ 중 하나인 염라대왕을 아무리 살아생전 “염라대왕님 믿습니다~”라고 숭배해봐야 사후세계에선 별반 도움이 안 된다는 식이다[2]. 단지 자신이 살아생전 얼마나 죄를 범하고 선을 베풀었는가에 따라서만 극락(불교의 천국 개념)이나 지옥(한자문화권에서 지옥이라는 말을 만든 게 불교다)으로 보낸다고 할 뿐이다. 또한, 극락과 지옥의 이분법적인 교리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불교는 수행과 깨달음의 종교이다.

한편 힌두교에서 유래한 종교답게, 힌두교와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불교 또한 힌두교와 마찬가지로 업보와 그에 따른 환생의 개념을 긍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수행을 중요시한다는 점 또한 같다. 게다가 불교 또한 다양한 신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힌두교와 일치한다. 다만 상술했듯, 힌두교는 신을 섬길 것을 기본으로 삼지만 불교는 그러지 않는다. 불교에서 신화적 존재들은 깨달음에 도달하고 자비수행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불교를 ‘서양식 종교’라기보다는, 사회적 계몽 운동의 일종이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이런 논란에 대한 의견을 정리한 서적이나 인터넷 글도 많고 지금도 꾸준히 논의되고 있는 것 중 하나이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편집 | 원본 편집]

불교는 다른 종교들과 비교하면 특이한 축에 들어가서 학문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기도 한다.[3] 이는 불교 종파간의 정통성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영원한 분쟁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에 부처님을 숭배하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처럼 섬기라는 신도 정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신조차도 일개 중생으로 취급한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말인지 진위여부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서, 제자들이 멋대로 해석한 것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부처님의 시대에는 문자가 없어서 암기로 구전되던 것을 후에 기록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1]

그러나 종교의 기준을 다르게 잡으면 불교도 종교에 들어간다. 동아시아의 종교가 대개 이런 식이다.

육도(六道)[편집 | 원본 편집]

중생이 생전에 지은 업(業/karma)에 따라 6가지로 환생한다. 축생도(동물), 아귀도(아귀), 인간도, 아수라도, 지옥도, 천상도가 있다. 중생은 열반(해탈)에 들지 않는 한 이 육도를 통해 윤회(무한히 환생)한다.

생전의 죄가 거의 없고 공적이 많은 자는 기독교천국과 같은 천상도로 환생한다. 그러나 불교의 최종 목표는 천상도에서 환생하는 것이 아닌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천상도, 아수라도, 인간도를 합쳐 ‘삼선도’라고 하고, 축생도, 아귀도, 지옥도를 합쳐 ‘삼악도’[4]라고 한다. 삼선도는 삼악도보다 비교적 고통이 적고 깨달음에 도달하기 쉽다. 대승불교에는 천상도와 유사한 ‘정토’라는 개념이 있는데, 극락 역시 정토에 해당한다.과금 시스템

육도의 상위개념으로 삼계가 있으며 ‘삼계육도’라고 묶어 부르기도 한다. 삼계에는 욕계, 색계, 무색계가 있으며 육도는 가장 하위인 욕계에 해당한다.

한편 이 육도 사상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설정 등 다양한 대중 매체에서도 등장한다. 육도선인

육도 사상도 원래는 불교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사향사과(四向四果)[편집 | 원본 편집]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4가지 단계이다. 향은 일종의 입문 단계이며, 과는 해당 경지에 도달한 단계이다.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으로 분류된다. 아라한과에 도달하면 더 이상 윤회하지 않으며, 상좌부 불교에서는 아라한과 부처를 동일시하였다. 한편, 대승불교에서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가 되지 않은 보살이 강조되기도 한다.

주요 경전[편집 | 원본 편집]

  • 브라만 경전[5]
    • 우파니샤드
  • 상좌부 경전
    • 니까야=아함경[6]
      • 디가 니까야=장아함경
      • 맛지마 니까야=중아함경
      • 상윳따 니까야=잡아함경
      • 앙굿따라 니까야=증일아함경
      • 쿳다까 니까야
        • 숫타니파타
          불교 최초의 경전
        • 담마파다=법구경
  • 대승 경전
    • 반야경
      • 반야심경
    • 금강경
    • 법화경
    • 화엄경

종류[편집 | 원본 편집]

종파[편집 | 원본 편집]

대승불교[편집 | 원본 편집]

  • 선종
  • 교종
  • 천태종
  • 조계종: 현대 한국 최대의 종파
  • 화엄종(華嚴)
  • 진각종(眞覺)
  • 일련종
  • 정토종: 중국일본의 종파, 일본의 정토종은 서민들은 고기를 섭취하도록 예외를 둬도 된다고 했다.
  • 정토진종

각국의 불교[편집 | 원본 편집]

일본의 사찰은 신사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토착 민속 신앙인 신토를 일본 불교가 흡수했기 때문이다. 한때 국가신토 정책으로 불교를 탄압하고 신토를 불교에서 분리시키던 때도 있었다. 일본에서 불교가 남긴 부정적인 면으로는 강제로 육식을 금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초창기의 카레라이스에는 개구리 고기가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훗날 일본군의 평균 신장이 작은 원인이 되었다.

한국삼국시대~고려시대에 불교의 나라였다. 그러나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승려들이 천민으로 전락해버렸다. 한국은 대승불교의 영향이 강했기 때문에 유교의 괴력난신을 믿지 않는 가르침에 더해 고려 말 혼란해진 사회상으로 사찰들의 타락이 심했고, 전대 고려의 흔적을 지우려는 의도도 있었다.

역사속의 불교[편집 | 원본 편집]

건축물[편집 | 원본 편집]

불교는 동아시아 건축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오해[편집 | 원본 편집]

  • 신자는 반드시 삭발을 한다
    승려들만 삭발하며, 일반 신자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사항이다. 상술했듯 싯다르타가 출가를 하면서 가족에게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보이기 위해 삭발을 했던 것에서 착안하여 수행자가 ‘나 또한 싯다르타처럼 속세와 확실히 연을 끊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의식이었는데, 이것이 관습화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계율로 성문화된 것이다. 일부 자유주의적인 종파에서는(특히 일본) 삭발 없이도 승려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 역시 승려들에게만 해당하며, 일반 신자들은 고기를 먹어도 상관없다. 정확히는 ‘먼저 나서서 고기를 탐하지 말라’는 쪽에 더 가깝다. 불교가 만들어졌던 고대에는 고기가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아가는 수행자가 고기에 입맛을 들여 고기를 계속 탐하면 오래 버틸 수 없게 되어 있다. 따라서 ‘돈 없으니 고기는 자제하자’는 것이 점차 고착화되어 아예 ‘살생을 금한다’는 후대의 이유와 결합하여 관습이 된 것이다. 참고로 불교의 창시자인 싯다르타도 유제품을 입에 댔다. 초창기에는 그 역시 육류를 입에 대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신명나게 굶고 나서 죽을둥 말둥 하던 와중에 ‘이러다 죽으면 진리 못 깨우치는 거잖아. 일단 살아야 뭘 깨우치든지 말든지 하겠네.’라고 생각하여, 인근 마을로 내려가서 어느 여인으로부터 우유죽을 대접받았다. 참고로 지금은 우유를 많이 짜내는 품종(젖소)이 있어 송아지가 먹고 남아돌고도 한참 뽑혀서 우유 값이 싼 것이지만, 고대엔 젖소가 없어서 딱 송아지만 먹을 만큼의 우유만 나왔다. 그러므로 우유를 가져다먹는 것은 미래 농사의 밑천인 송아지의 성장을 저해하는 행위로, 고대 사회에서 농업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사실 일국의 군주도 쉽사리 먹을 수 없는 초특급 사치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싯다르타는 바로 그 사치품을 처묵처묵 했다(…).
  • 포교를 하지 않는다
    아주 안 하는 건 아니고, 단지 굉장히 소극적일 뿐이다. 불교는 시초인 싯다르타가 다른 종교들처럼 어느 대단한 존재에게 가르침을 얻어서 창설한 그런 종교가 아니라, 싯다르타가 ‘세상의 진리는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며 혼자 수행하다보니 진리를 깨우쳐서 완성된 개념이기 때문에, 굳이 사람들 붙잡고 “불교 믿으세요”라고 말하기보다는 본인의 자발적인 참여를 더 권장하는 편이다. 물론 포교사가 아주 없지는 않은데, 대한민국 기준으로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인정하는 불교대학과정을 마치고 소정의 고시에 합격하고 일정기간 연수를 마면 포교사 자격을 얻을 수 있고, 그걸 기반으로 포교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술했듯 굉장히 소극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잘 안 보일 뿐이다. 애초에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것부터가, 중국의 포교로 들어온 거다(…) 다만 과거 적극적인 포교를 하던 가톨릭이 현대에 들어서 지나친 공격적 포교를 자제하는 것처럼, 불교 역시도 수많은 역사를 거쳐 오면서 오늘날과 같은 ‘지나친 공격성을 자제하는’ 포교성이 나오게 된 것 뿐이다.
  • 부처들을 신으로 섬긴다.
    부처는 신이 아니다. 석가모니를 예로 들자면 석가모니는 한 종단의 창시자라는 점에서 예수와 대응되지만, 그 종단에서 차지하는 포지션은 전혀 다르다. 불교의 부처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예언자 포지션에 오히려 가깝다. 부처가 신이냐는 오해는 그리스도교가 모세, 세례자 요한을 신으로 믿고 이슬람교가 무함마드를 신으로 믿는다는 것과 동급의 오해이다. 앞에 언급한 종교들의 예언자처럼, 불교의 부처 또한 어디까지나 진리를 깨달은 선지자일 뿐이며 결코 신이나 그에 준하는 존재가 아니다. 즉 부처는 그저 위대한 스승이자 선지자일 뿐 신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불교는 신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신을 섬길 것을 요구하지 않는 개념이다. 그냥 ‘진리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고 그걸 바탕으로 착하게 살면, 신들이 저세상에서 당신의 생전 행적을 기준으로 당신을 평가하고 그에 걸맞게 다룰 것이다’라는 것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물론 불교에서도 엄연히 부처에게 빌다보면 들어주는 경우도 있다는 믿음이 존재하며, 이는 수능을 앞둔 시기에 절에만 찾아가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톨릭에서 성인에게 기도한다고 한들 성인을 신으로 믿는 것이 아니듯이, 불교에서 부처에게 비는 것이 부처가 신임을 뜻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당장 지나가는 가톨릭 신자 붙잡고, 성모 마리아를 신으로 믿느냐고 물어봐라. 쌍욕 먹지 않으면 다행이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종교들 중 국가에서 지원받는 지원금이 가장 많은 종교이기도 하다. 이것 때문에 개신교에서 종교 차별이네 뭐네 하며 왈가왈부하기도 했지만, 실상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많은 지원금은 불교의 각종 유물 관리에 쓰이기 때문이다. 불교가 한반도에 자리 잡은 지가 제일 오래된 종교이기 때문에 그만큼 국가적인 유물들[7]도 불교 것이 많기 때문에 그거 잘 관리하라고 돈을 더 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참고로 가톨릭은 조선 말기에, 개신교는 그보다 더 늦게 도입되었기 때문에, 불교보다 천년 이상 늦어서 역사가 좀 되는 유물이라고 할 것이 끽해야 명동성당을 비롯한 몇몇 성지 정도가 전부이며, 이슬람교나 기타 종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때문에 불교도 그 많은 지원금을 유물 관리에 다 쓰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검소하고 엄숙한 이미지로 유명하지만, 신병훈련소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자세한 건 불교 나이트 항목 참고. 부처 핸섬!

관련 문서[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사실 한자문화권에서 ‘종교’라는 말을 만든 것은 불교이므로, “불교는 종교보다는 철학에 가깝다”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말이다. 한자문화권으로 불교가 전래되면서 변질된 것도 있다고 한다. 토속종교와 결합하면서 전래되어 왔다. 신라의 불교도 토속 종교와 결합한 형태이다. “불교는 religion인가?”라는 물음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불교는 엄연히 종교가 맞다. 물론 오늘날에는 한자어 ‘종교’가 서양의 religion 개념으로 의미가 변화해서, 이런 식의 말장난은 의미가 없지만(…)
  2. 덧붙이자면 그리스도교에서도 “믿습니다”라고 입으로만 떠든다고 구원이 온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물론 종파마다 해석이 좀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세계적인 규모에서 주류가 되는 가르침은 이렇다.
  3. 그러나 불교 경전들이 신화의 영향이 짙은 고대에 쓰였음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4. 아수라도를 포함해 ‘사악도’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인 아수라가 사악도에 포함되는 것은, 폭력과 투쟁을 지양하는 가치관의 차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5. 브라만교의 경전으로 불교와 힌두교의 공통 경전
  6. 팔리어인 <니까야>를 산스크리트어인 <아가마>를 거쳐 한문으로 옮겨 적은 것이 <아함경>이다. 원본인 니까야와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
  7. 예시만 들자면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 아예 건물 자체가 국가유물인 불국사석굴암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