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고란드 바이트 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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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충돌 정보 | |||||||||
날짜 | 1914년 8월 28일 | ||||||||
위치 | 북해 헬리고란트 바이트 인근 해역 | ||||||||
결과 | 영국의 승리 | ||||||||
교전단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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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ligoland Bight Action
개요[편집 | 원본 편집]
헬리고란드 바이트 해전은 1차 세계대전의 최초 해전으로 매복과 대매복전으로 전개된 해전으로 북해의 독일쪽 연안 출구인 헬리고란드 바이트 근해에서 있었던 영국 함대와 독일 함대간의 전투이다.
양측의 작전계획[편집 | 원본 편집]
영국의 작전계획[편집 | 원본 편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 해군은 매일 오후 북해쪽 독일 방향쪽 출구에 위치한 헬리고란드 바이트 근해로 야간 경비차 출동하는 구축함들을 경순양함이 호송하고 다음날 새벽에 헬리고란드 북서쪽 약 20마일 지점에서 상봉하여 모항으로 인솔하는 규칙적인 패턴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행동을 관찰한 영국의 잠수함 사령관 로저 키즈 제독은 이들을 영국 함대를 이용하여 기습할 계획을 세웠다. 그의 계획은 자신의 잠수함을 미끼로 던져주고 독일 함정을 헬리고란드 서쪽 해역으로 유인한 뒤, 북쪽 해상에서 매복중이던 강력한 순양함 세력으로 공격하여 후방을 차단하여 독일 구축함을 박살낸다는 계획이었다. 영국의 해군성에서는 이 계획을 승인하고 드라이위트 준장이 지휘하는 2척의 경순양함과 33척의 구축함을 지원 세력으로 보내주었다.이외에 해군성은 굿이너프 준장이 지휘하는 6척의 경순양함과 비티 중장이 지휘하는 전투순양함 5척의 세력을 추가로 급파하였는데 하필 해군성의 실수로 키즈 제독과 트라이위트 제독에게는 이 강력한 지원군이 출동한 사실을 알리지 못한 상태로 작전을 개시하게 된다.
독일의 작전계획[편집 | 원본 편집]
독일 측도 키즈 제독의 계획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대매복 계획을 세워 대비하였다.이쪽 해역을 경비하는 세력으로 구축함 19척과 경순양함 2척이 있었으며, 동쪽과 남쪽 방향에 만일에 대비한 매복 세력으로 경순양함 4척을 배치시켜둔 상태였다. 또한 50마일 떨어진 쥬다 만에는 전투순양함들이 상시 지원 전력으로 대기중이었다.
전투경과[편집 | 원본 편집]
1914년 8월 28일 새벽 영국의 잠수함 3척이 헬리고란드 서쪽에서 부상하여 미끼 역할을 하였다. 곧 독일의 구축함 한척이 잠수함의 식별을 위해 다가오자 북쪽에서 매복중이던 트라이위트 제독의 함정들이 휩쓸고 내려와서 독일의 구축함을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헬리고란드 뒤쪽에서 대기중이던 독일의 경순양함 2척이 급히 돌진하여 오면서 함선간 포격전이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영국의 함선들이 승기를 잡기 시작하였는데 영국 함정들은 독일 순양함 한 척을 집중 공격하여 대파시켜 도주하게 만들었고, 처음 확인을 위해 접근했던 구축함도 화염에 휩싸여 감속하게 만들어 버렸다. 한편 이 와중에 키즈와 트라이위트 전대는 지원세력으로 굿이너프와 비티 전대가 출동한 것을 모르고 있다가 안개 속에서 나타난 순양함들을 보고 서로 오인사격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영국 함정들이 서로 오인사격을 멈출 무렵 독일측 매복 세력으로 대기중이던 경순양함 4척이 달려와서 굿이너프의 함선들과 교전이 벌어졌다. 이 때 북서쪽에서 나타난 비티 제독의 전투순양함들이 가세하면서 순식간에 독일 순양함 3척이 격침당하고 살아남은 독일 순양함은 이전의 순양함과 합쳐 불과 2척에 불과하였으며, 이조차도 심하게 난타당하여 전장을 이탈한 뒤 뒤늦게 전장으로 출동한 독일의 전투순양함에 이끌려 쥬다 만으로 간신히 돌아갈 수 있었다.
독일의 경우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전투순양함까지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고 독일 측의 총 전력 자체가 심하게 열세는 아니었다. 그러나 하필 조수간만의 차이 때문에 저수심대인 제이드 바를 흘수가 깊은 전투순양함들이 통과할 수 없어서 막상 이들이 도착할 때에는 사실상 전투가 끝나버린 상황이 되어버려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파손된 함선들을 끌고오는 견인차 역할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결과[편집 | 원본 편집]
영국은 1차 세계대전 최초의 해전에서 승리하는 동시에 독일 경순양함 3척과 구축함 1척을 격침시켰다. 독일측은 해당 격침된 함정의 승조원 중 700여명이 사망하고 400여명이 포로가 되는 피해를 입었다. 반면 영국측의 손실은 경미한 함정 손상과 35명의 인원손실이 있었을 뿐이었다.
반면에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패전의 소식에 충격을 받고 이후에는 자신의 허락 없이는 독일 함정의 출동을 금지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면서 사실상 영국에게 해상을 봉쇄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