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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생애 ==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홀어머니가 10남매를 키우기 위해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는 중에도 성적이 뛰어났다고 한다. 또한 작사, 작곡에 대한 조회도 있어서 중학교 3학년때는 「묵상」이라는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홀어머니가 10남매를 키우기 위해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는 중에도 성적이 뛰어났다고 한다. 또한 작사, 작곡에 대한 조회도 있어서 [[중학교]] 3학년때는 「묵상」이라는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2001년에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에게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품을 받은 후 케냐로 가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보다 더 어려운 수단을 알게 되고 수단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수단에서 문둥병자들을 치료하고 예방접종 사업을 벌였다. 또한 여기서 학교를 짓고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쳤으며 브라스밴드를 만들어 악기를 가르쳤다.
2001년에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에게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품을 받은 후 케냐로 가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보다 더 어려운 [[수단]]을 알게 되고 수단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수단에서 문둥병자들을 치료하고 예방접종 사업을 벌였다. 또한 여기서 학교를 짓고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쳤으며 브라스밴드를 만들어 악기를 가르쳤다.


하지만 전기가 당연히 들어오는 나라들과 달리 수단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평범한 곳이었다. 이말은 즉 약물을 보관하기 위한 냉장시설을 돌리는데 전력이 필요했었다. 따라서 이태석 신부는 집광판을 사서 냉장고를 돌리면서도 남은 전기로는 아이들의 공부를 위해 전력을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하지만 [[전기]]가 당연히 들어오는 나라들과 달리 수단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평범한 곳이었다. 이말은 즉 약물을 보관하기 위한 냉장시설을 돌리는데 전력이 필요했었다. 따라서 이태석 신부는 집광판을 사서 냉장고를 돌리면서도 남은 전기로는 아이들의 공부를 위해 전력을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2008년 건강검진차 귀국했는데 대장암 4기라는 청천벽력같은 결과를 받게 된다. 그런데도 이태석 신부는 톤즈에서 우물을 마저 파야 한다며 실의에 빠졌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죽음'에서 나오는 실의가 아닌 '톤즈에서 봉사를 계속 할 수 없음'에 대한 실의 같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이태석 신부가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계속 봉사했다면 조금 더 오랜기간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2008년 건강검진차 귀국했는데 대장암 4기라는 청천벽력같은 결과를 받게 된다. 그런데도 이태석 신부는 톤즈에서 우물을 마저 파야 한다며 실의에 빠졌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죽음'에서 나오는 실의가 아닌 '톤즈에서 봉사를 계속 할 수 없음'에 대한 실의 같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이태석 신부가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계속 봉사했다면 조금 더 오랜기간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암이 간으로 전이되며 2010년 1월 14일 임종을 맞게 되었다. 임종을 지켜본 수녀에 따르면 사망 몇시간 전 의식이 희미해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돈 보스코'라며 외쳤다고 한다. 이에 수녀가 "돈 보스코 성인이 앞에 보이시냐"라 물었는데 이태석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런 다음 손을 들어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강복을 하고 마지막 유언인 "Everything is good"이라 말하고 임종을 맞았다고 한다.
결국 암이 [[간]]으로 전이되며 2010년 1월 14일 임종을 맞게 되었다. 임종을 지켜본 수녀에 따르면 사망 몇시간 전 의식이 희미해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돈 보스코'라며 외쳤다고 한다. 이에 수녀가 "돈 보스코 성인이 앞에 보이시냐"라 물었는데 이태석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런 다음 손을 들어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강복을 하고 마지막 유언인 "Everything is good"이라 말하고 임종을 맞았다고 한다.


== 사후 ==
== 사후 ==

2023년 8월 7일 (월) 08:59 판

이태석
李泰錫, Lee Tae-seok
인물 정보
출생 1962년 10월 17일 (61세)
대한민국 경상남도 부산
사망 2010년 1월 14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국적 대한민국
학력 이탈리아 로마 살레시오대학교
직업 종교인
종교 가톨릭
Everything is good.
— 죽기 전 이태석 신부의 마지막 유언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이태석 신부의 좌우명[1]

개요

이태석 신부는 가톨릭의 살레시오회 수도자로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수단 톤즈에서 봉사활동을 했었다. 당시 국지전으로 인한 전쟁의 상황에서도 낙후된 톤즈의 아이들을 위해 뛰어가 봉사활동을 했었다. 심지어는 세상을 떠난 이유였던 대장암 말기때에도 우물을 파러 가야 한다며 톤즈로 가려던 신부를 막으려고 애를 먹었다고 한다.

현재는 모든 종교를 포함한 이태석 신부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존경하는 위인으로 남게 되었다.

생애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홀어머니가 10남매를 키우기 위해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는 중에도 성적이 뛰어났다고 한다. 또한 작사, 작곡에 대한 조회도 있어서 중학교 3학년때는 「묵상」이라는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2001년에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에게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품을 받은 후 케냐로 가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보다 더 어려운 수단을 알게 되고 수단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수단에서 문둥병자들을 치료하고 예방접종 사업을 벌였다. 또한 여기서 학교를 짓고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쳤으며 브라스밴드를 만들어 악기를 가르쳤다.

하지만 전기가 당연히 들어오는 나라들과 달리 수단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평범한 곳이었다. 이말은 즉 약물을 보관하기 위한 냉장시설을 돌리는데 전력이 필요했었다. 따라서 이태석 신부는 집광판을 사서 냉장고를 돌리면서도 남은 전기로는 아이들의 공부를 위해 전력을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2008년 건강검진차 귀국했는데 대장암 4기라는 청천벽력같은 결과를 받게 된다. 그런데도 이태석 신부는 톤즈에서 우물을 마저 파야 한다며 실의에 빠졌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죽음'에서 나오는 실의가 아닌 '톤즈에서 봉사를 계속 할 수 없음'에 대한 실의 같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이태석 신부가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계속 봉사했다면 조금 더 오랜기간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암이 으로 전이되며 2010년 1월 14일 임종을 맞게 되었다. 임종을 지켜본 수녀에 따르면 사망 몇시간 전 의식이 희미해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돈 보스코'라며 외쳤다고 한다. 이에 수녀가 "돈 보스코 성인이 앞에 보이시냐"라 물었는데 이태석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런 다음 손을 들어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강복을 하고 마지막 유언인 "Everything is good"이라 말하고 임종을 맞았다고 한다.

사후

시신은 전라남도 천주교공원묘역 살레시오회 성직자 구역에 매장되었다. 이후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의 생가를 복원하고 그 옆에 이태석 신부 기념관이 세워졌다.

2011년, 2012년에는 이태석 신부의 이름으로 봉사활동 재단이 출범했으며 2012년 발족한 이태석사랑나눔 재단은 이태석 재단으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까지도 꾸준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011년 발족한 부산사람이태석기념사업회는 거의 매년마다 이태석 신부의 기일을 기점으로 '이태석 봉사상'을 시상하고 있다.

2011년에는 정부포상 국민추천제의 첫번째 국민훈장 무궁화장의 수훈자로 발탁되었다. 참고로 이 훈장을 받은 사람은 이태석 신부와 2019년 수훈자인 이국종 교수 말고는 없다.

당시 톤즈에서 시가행진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그의 영정을 들고 브라스밴드가 시가행진을 하자 반군도 전투를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는 반군들도 차별 없이 이태석 신부에게 치료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울지마 톤즈>를 연출한 구수환 PD가 쓴 책에서도 현지인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데 "서로 싸우게 하시고는 왜 쫄리 신부님을[2] 데려가느냐"며 원망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2018년에는 남수단 정부가 대통령 훈장을 추서했다.

이태석 신부가 가르친 아이들은 한국으로 와 학업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여진다. 대표적으로 2018년 토마스 타반 아콧씨가 있으며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서 남수단에서 의사로서 활동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2021년에는 유퀴즈에 나와 이태석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근황을 밝히기도 했다.

각주

  1. 마태오 복음 25장 40절에 나오는 말이다.
  2. 수단에서 이태석 신부는 세례명 요한의 John과 한국 성씨인 Lee를 합쳐 '쫄리' 라고 불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