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은 역사학 같지만 실제로 역사학이 아닌 주장을 가리킨다. 영어 슈도히스토리(pseudohistory)를 번역한 용어. 의사역사학(擬似歷史學)이라고도 하며, 저렴한 표현을 쓰자면 사이비 역사학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유사학문이 그렇듯이 달콤하게 들리지만 위험하다.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의 공통점은 사학계의 교수 혹은 대학원생과의 현장 답사를 흔쾌히 수락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사학을 배우는 수업 및 교수실부터 현장 답사까지의 검증 과정을 직접 문답식으로 체험하면 교과서로 요약되기까지의 연구자들의 노고와 자신의 무지함 및 초라함을 인정하게 되니 백해무익한 자존심만 세우는 것이다. 신봉자들한테 현장 답사가 결여되어 서고에 떠도는 서적만 아전인수식 겉핥기로 왜곡하니 이를 노린 사기꾼과 허세만 고집하는 성격 나쁜 비전문가만 모이기 쉽다.

유사역사학 주장[편집 | 원본 편집]

유사역사학 주장 관련 국가 사실이 아닌 이유
삼국대륙설 고구려 고구려조차도 요동 근방이 한계였고 고구려가 영토확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나마 중국이 분열기이기에 가능했다.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 때문에 중국 대륙에 영토를 갖기 어려운 환경이다.
백제
신라
대륙고려설 고려 고려가 중국 대륙에 영토를 가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성계 화교설 조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이성계가 화교라는 증거는 전무하다.
조선 500년 내내
왜구 시달림설
조선 이 주장대로라면 왜구가 19세기말까지 존재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1]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적어도 17세기부터는 조선이 왜구한테 침입당하지도 시달리지도 않았다. 만약 임진왜란 이후에도 조선이 왜구한테 시달렸다면 관련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적혔을 것이다. 사실 문종 재위년부터는 왜변 몇 번을 제외하면 조선이 딱히 왜구한테 시달리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대륙조선설 조선 조선은 중국 대륙에 영토를 가진 적이 없다.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칭기즈 칸 설
일본
몽골 제국
애초에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와 칭기즈 칸의 사망년도부터 다르다.
금청 한국사론 금나라 시조가 신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장하는 헛소리인데, 시조가 신라인인지도 불확실하며 설령 그렇다고 해도 금청이 한국사가 될 수는 없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고려 태조의 아버지는 당숙종의 후손이니 고려는 중국사라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도 가능하다.
청나라
한글 창제자
후쿠자와 유키치론
조선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 조선왕조실록 세종 25년 12월 30일 두 번째 기사

반박 끝.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일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서력 1588년에 해적금지령을 내리고 에도막부가 추가로 다시 금지령을 내린 이후로 왜구는 거의 사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