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김대령대한민국의 유사역사학자다.

소개[편집 | 원본 편집]

5.18의 이덕일

신학, 심리학, 선교 교육 기관[1]에서 철학분야 인식론 연구로 학위를 받은 목사이며 유사역사학자이다. [2] 인터넷에선 역사학자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 학위는 미국 메릴랜드 대학에서 받았다는 학사학위 뿐이며 박사학위(Ph.D.)는 사학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분야이다.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한국사 관련 과목도 HIS319 하나뿐. 이것도 필수가 아니라 선택과목이다. 이 사람이 역사학자라는 건 곧 리브레 위키에서 역사 관련 문서를 쓰는 위키러를 두고 역사학자라 하는 것과 다를 께 없다.

행적[편집 | 원본 편집]

옛날부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왜곡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기본 사실부터 왜곡해서 퍼트리는 시도를 할 때가 여러 번 포착됐다.

이데아님, "그는 친구들과 점심식사 뒤 집으로 돌아오던 중 공수부대의 눈에 띄어 무차별 구타당했다" 이것은 사실성립이 불가능한 주장입니다. 공수부대는 5월 21일 저녁 때 비로서 시위진압에 동원되었습니다. 김경철군이 낮에 구타당하였다면 둘 중 하나입니다. 지금도 광주에서 종종 폭행사건이 일어나고 있지요? 만약 그런 평상시 폭행 사건이 아니라면 시위대에 맞은 것입니다.[3]

대검 판단에 대한 왜곡[편집 | 원본 편집]

일부 부대원들이 대검을 사용하는 등”이란 문구는 공수부대원들이 대검을 사용하였다는 주장인데, 어떻게 전혀 아무런 확인 없이 이렇게 판단하는가? 공수부대원들은 대검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검을 허리에 찬 군인들은 광주시민들이었다. 처음 시위진압에 동원된 부대는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처럼 공수부대였던 것이 아니라, 광주시민들로 구성된 광주향토사단 방위병들이었다.[4]

그러나 이건 왜곡인데 실제로는 대놓고 확인이 됐다. 대검사진 계엄군의대검(푸른눈의 목격자)1.jpg

계엄군의대검2(푸른눈의 목격자).jpg

계엄군의대검3(푸른눈의 목격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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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사에서 작성한 '전교사 작전상황일지 1950. 5.18'을 따르면 대처상황 중 수습 및 작전에 '7空輸隊 銃劍鎭壓'라고 적혀있고 안기부가 1985년 작성했던 자료에도 '7공수여단 착검진압'이라고 써져있다. [5]

도망가는 시위대를 향해 공수부대원이 칼을 던진 것을 중앙일보 취재팀이 목격하기도 했다. [6]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