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건 정보
날짜 1999년 6월 30일 오전 0시 30분
장소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인근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인명피해 사망 : 23명, 부상 : 6명
재산피해 수련원 건물 전소 및 붕괴

사고 당시 뉴스 보도

단 한순간의 화재로 인해 유치원생 19명이 희생된 최악의 화재 참사.

사고 과정[편집 | 원본 편집]

1999년 6월 30일, 새벽 0시 30분경 경기도 화성군[1] 서신면 백미리에 위치한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당시 수련원에는 서울 소망유치원생 42명, 안양 예그린유치원생 65명, 서울 공릉미술학원생 132명, 부천 열린유치원생 99명, 화성 마도초등학교 학생 42명 등 497명의 어린이와 인솔교사 47명 등 모두 544명이 있었다. 화재 발생 1시간이 지난 새벽 1시 41분, 화재 신고를 접수한 관할 소방서에서 소방차 20여대와 소방관 70여명, 경찰관 250명 등을 동원하여 화재진압 및 구조작전에 돌입했다.

사고 원인[편집 | 원본 편집]

화재는 C동 3층 301호에서 발화해 건물 전체로 번진것으로 파악되었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정밀감식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화재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사고 초기에는 방안에 피워둔 모기향에서 발화하였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고, 전기누전에 의한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였지만 정확한 화재원인은 미궁속에 빠졌다. 화재가 삽시간에 수련원 전체로 번진 이유는 건물의 구조적 결함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해당 수련원은 1층 콘크리트 건물위에 컨테이너 가건물 52개를 얹어서 만든 임시구조물로, 제대로 된 화재경보시설이나 소화시설이 미비했다. 생활관에는 화재경보기가 있었으나 불량품으로 판명되어 유명무실한 상황이었으며, 건물에 비치된 소화기 14개중 9개는 작동하지 않았다. 소화전의 기능도 부실하여 방화용수가 공급되지 않았다. 이런 허술한 소방설비를 갖추고도 안전점검은 무사히 통과하여 형식적인 점검을 하였음이 드러났다. 또한 건물 구조적으로 스티로폼이 대량 사용된 샌드위치 판넬 구조물[2]에 전선이 어지럽게 엮여있었으며, 당시 계절적 요인으로 건물에 설치된 에어컨 50대가 가동하며 전력 과부하로 인한 전기화재의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신고후 대처에서도 문제가 발견되었다. 최초 신고는 새벽 1시, 씨랜드 대표인 박재천에 의해 서산 파출소에 접수되었다. 하지만 담당 경찰관은 시골에서 발생한 조그마한 화재로 여겨 119에 지원요청을 하지않았고, 1시 10분에 가까운 의용소방대에 화재사실이 전파되었으며 해당지역 이장에게도 연락이 갔다. 뒤늦게 화재사실은 통보받은 관할 소방서인 오산소방서는 사고지점에서 무려 70km나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소방대가 도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당시 소방서는 1시 41분 이전까지는 어떠한 화재신고를 접수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가건물에서 발생한 대량의 유독가스와 건물붕괴 위험으로 적극적인 진압작전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1시 51분에 선발 소방대원들이 도착하여 화재진압에 나섰지만, 당시 좁은 농로를 따라 진입하는 과정에서 초동진압은 요원했으며, 새벽 4시 25분이 되어서야 화재가 진압되었다.

피해[편집 | 원본 편집]

화재 진압후 처참한 현장

사망자는 모두 23명이며,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4명이 포함되었다. 피해상황이 가장 많은 18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소망유치원생들은 301호에 18명, 302호에 24명 등 42명의 어린이들만을 3층2개 호실에 재우고 원장 천경자와 인솔교사 등 3명은 301호의 맞은편 314호에 투숙하고 있었으나 301호실에 투숙한 어린이 18명이 불길을 헤쳐나오지 못하고 희생되었다. 화재 당시 인솔교사들은 어린이들이 잠든 방안에서 보호해야할 의무를 망각한체 저녁 늦게까지 술자리를 벌였던 것으로 드러나 유가족의 비난을 감내해야만 했다. 술자리에 있던 인솔교사중 1명이 화재현장으로 뛰어들었으나 학생들을 제대로 구조하지 못한체 목숨을 잃었다. 반면 같은층에 투숙했던 마도초등학교 학생들은 각 방마다 인솔교사가 배치되어있었고, 화재가 발생하자 인솔교사가 침착하게 잠든 학생들을 깨워 대피시킨 덕분에 화를 면했다. 당시 학생들을 대피시켰던 2명의 교사 가운데 1명인 김영재(당시 31세)는 화재현장을 오가며 어린 학생들을 구조하다 탈진해 쓰러졌으며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결국 한순간 화재와 적절치 못한 어른들의 대응으로 인해 어린 생명들이 무려 19명이나 희생되는 참사가 벌어졌으며, 워낙 불길이 강력했고, 화재진압도 늦게 이뤄지는 바람에 희생된 어린이들의 시신수습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화재진압 이후 폐허가 된 건물더미에서 불에타고 남은 사람의 뼛조각을 수습하는게 전부였다.

조사와 처벌[편집 | 원본 편집]

경찰의 조사결과, 씨랜드 화재사건 이면에는 각종 비리와 형식적인 절차가 만연한 사건으로 밝혀졌다. 몇몇 어른들의 비도덕적인 행태때문에 죄없는 어린아이들의 목숨이 허망하게 사라진 것이다. 행정 당국이나 소방 당국 등 한 군데만 제대로 관리 감독을 했더라도 막을 수 있었다. 먼저 건물 자체가 부실 투성이 가건물이었다. 콘크리트 1층 건물 위에 52개의 컨테이너를 얹어 2~3층 객실을 만든 임시건물이었다. 청소년수련원으로 이용하기에 부적합했다. 원래는 양어장이었다. 그러다 수영장으로 바뀌었고 다시 가건물을 올려 청소년 수련원으로 바꿨다. 사실상 건축물과 운영 상태가 인허가 기준에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행정 당국은 사용 승인 뿐 아니라 운영 허가까지 내주었다. 또 3명 이상 둬야하는 청소년 지도사를 2명만 고용했는데도 적발하지 못했다. 더구나 유치원생들은 안전사고위험 때문에 ‘어린이 캠프’가 금지되어 있는데도 씨랜드는 유치원생들을 입소시켰다. 소방당국의 형식적인 소방 점검 실상도 드러났다. 소방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준공 검사에 필요한 소방시설 완공 필증을 내주었다. 게다가 두세 달 전에 소방점검을 했지만 화재 당시 화재경보기와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다. 비치된 15개 소화기 가운데 9개는 속이 텅 빈 '먹통 소화기'였다. 관리 감독 기관의 생색내기 행정은 검은 돈 거래의 결과였다. 경찰과 검찰 수사과정에서 씨랜드가 시공회사와 감리회사 관계자들을 돈으로 매수하고 군청 공무원들의 묵인 또는 비호를 받는 등 각종 불법 행위가 드러났다.

검찰은 수사결과 비리혐의가 드러난 화성군수, 씨랜드 관련자들, 화재당시 술자리를 벌인 유치원 인솔교사 등에 대해 법적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기소된 군수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났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활동중이다. 이를 두고 유족들과 시민들은 전형적인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강하게 판결을 비판하기도 했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이 사고로 당시 필드하키 국가대표였던 김순덕은 아들을 잃고 이후 정부의 졸속대처와 무능력한 모습이 실망한 나머지 그간 국가로부터 받았던 훈장들을 모두 반납하고 뉴질랜드이민을 떠났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를 접한 김순덕은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이 나라는 아무것도 변한게 없다. 이민온것이 다행스럽다대한민국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했다.
  • 당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었던 H.O.T.의 4집 앨범 I Yah!의 대표곡인 I Yah!(아이야!라는 제목으로도 활동)의 가사는 이 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피우지도 못한 아이들의 불꽃을 꺼버리게 누가 허락했는가
언제까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반복하고 살 텐가
— H.O.T 4집 수록곡 I Yah!의 가사중 일부
  • 이 사고로 법적인 처벌을 받은 씨랜드 소유자가 사고가 발생한 지점 인근에 또다시 불법 휴양시설을 건축하여 운영하였던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곳 관리인이 "시청에서도 이 시설물들이 설치돼 있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며 "왜 이제 와서 그러느냐"고 말하며 씨랜드 사건 이후로도 정신을 못차린 관련 공무원들의 행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언론의 뭇매를 맞은 이 불법 휴양시설은 소유주가 자진 철거하며 사라졌다.

영상[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당시에는 시승격 이전이었다.
  2. 가연성 물질의 대표주자인 스티로폼이 대량 사용되었으므로 화재가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고, 건물 자체가 거대한 땔감이 되버린 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