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

Skky999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7월 13일 (월) 16:48 판
{{{전쟁이름}}}
군사 충돌 정보
날짜 2011년 3월 15일 ~ 현재
결과

교착 상태

  • 시리아 정부군, 반정부군, 쿠르디스탄군, ISIS군의 4파전 진행 중
  • 알레포, 다마스쿠스, 모술 등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서 전쟁 진행 중
교전단체
{{{단체1}}} {{{단체2}}}
병력:
시리아 시리아 육군: 250,000명

시리아 시리아 정보국: 8,000명

시리아 시리아 국가방위군: 80,000명

헤즈볼라: 10,000명

시리아 바트 여단: 7,000명

시리아 알 아바스 여단: 10,000명

이란 이란군: 500 ~ 1,000명
병력:
자유 시리아군: 40,000 ~ 50,000명

시리아 이슬람 전선: 40,000 ~ 70,000명

무자헤딘: 5,000명 ~ 12,000명

알 누스라 전선: 5,000명 ~ 6,000명

기타 병력: 약 20,000명


인민보호군: 65,000명
병력: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100,000명

시리아 내전 또는 시리아 봉기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이다. 처음에는 정부를 몰아내려는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충돌이었지만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및 기타 국가 및 세력들의 개입으로 전쟁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배경

종교

시리아의 대통령은 현재 바샤르 알아사드이다. 이슬람교 중에서도 시아파 신자인 그는 아버지인 하페즈 알아사드에 이어 시리아 인구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수니파[1] 인구를 탄압하고 있다. 그래서 시리아는 사실상 시아파 국가이다.(...) 대통령의 이념과 국민 대부분의 이념이 거의 180도 다르니 내전이 벌어질 만도 한 것이다.

인권

시리아의 인권은 1963년 이후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한마디로 무려 52년 동안 헬게이트가 열려있는 셈인 것. 얼마나 심하냐면 시리아에서는 선거 자체가 없으며 정부를 비판하면 즉시 감옥행이다. 여성이나 소수 민족 차별도 심하며 집회를 열 수도 없다. 그러니 어찌 보면 반정부 시위는 당연한 결과였다.

경과

2011년

2월 ~ 3월

시리아의 반정부 시위는 2011년 1월 26일에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때에는 작은 반정부 운동에 불과했다. 심각해도 한 명의 사람이 몸에 가솔린을 붇는 정도.[2]

2월 3일에는 페이스북트위터 등지에서 시리아를 규탄하는 글을 올리는 집회가 벌어졌는데 외국에서 소수의 사람들 만이 참가할 뿐이었다. 2월 5일에는 수백 명 규모의 시위가 열리는데 이 시위도 곧 진압되었다.

2월 22일에는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 주변에 200명의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지만 시리아 경찰에 의해 14명이 체포되고 몇 명은 폭행을 당하였다. 이 와중에 "리발 알아사드"라는 한 인물은 시리아에서 큰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하였다.[3]

3월 중순이 되자 반정부 시위는 꽤 크게 번지기 시작했다. 하사카, 다라, 하마 등에서 수천 명이 거리를 행진했으며 다마스쿠스에서도 수십명에 불과하던 시위대가 거의 1000명 가까운 규모로 성장하였다. 특히 다라에서는 3월 20일부터 23일까지 수천명의 규모에 달하는 시위가 또 한번 일어났다.

이런 일들을 알아챈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는 몇 가지 대책을 발표했지만 군중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기만 했다. 3월 25일에는 〈영광의 금요일〉이라는 대규모 집회가 온라인으로 계획되어서 무려 수만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자유를 위한 많은 요구를 하였지만 오히려 시리아 정부에서는 다라의 전화 회선을 끊어 버렸다(...). 하지만 시위는 계속되어서 무려 10만명 이상이 시위를 벌였다. 이 날 하페즈 알아사드의 동상이 무너지고 주지사의 집에도 불이 나는 등 큰 사건사고들이 발생했다. 이 시위가 있은 후 며칠 후인 3월 29일에는 무려 수십만 명 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

각주

  1. 같은 이슬람교지만 여러 부분에서 시아파와 반대되는 이념을 가지고 있다.
  2. 심각해 보일수도 있지만 막판에 벌어지는 것헬게이트에 비교하면 아주 사소한 일이다.
  3. 이 예언은 곧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스포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