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

시리아 내전
날짜 2012년 7월 14일 ~ 현재
장소 시리아 전역
결과 교착 상태
  • 시리아 정부군, 반정부군, 쿠르디스탄군, ISIS군의 4파전 진행 중
  • 알레포, 다마스쿠스, 모술 등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서 전쟁 진행 중
교전국
시리아 시리아 정부

이란 이란

  • 이슬람 혁명 수호자군
  • 바시지

무장 단체

  • 헤즈볼라
  • 알아바스 여단
  •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 전선

지원국

시리아 반정부군

지원국

무장 단체


시리아령 쿠르디스탄

지원국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병력
시리아 시리아 육군: 250,000명

시리아 시리아 정보국: 8,000명

시리아 시리아 국가방위군: 80,000명

헤즈볼라: 10,000명

시리아 바트 여단: 7,000명

시리아 알 아바스 여단: 10,000명

이란 이란군: 500 ~ 1,000명

자유 시리아군: 40,000 ~ 50,000명

시리아 이슬람 전선: 40,000 ~ 70,000명

무자헤딘: 5,000명 ~ 12,000명

알 누스라 전선: 5,000명 ~ 6,000명

기타 병력: 약 20,000명


인민보호군: 65,000명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100,000명


시리아 내전 또는 시리아 봉기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이다. 처음에는 정부를 몰아내려는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충돌이었지만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및 기타 국가 및 세력들의 개입으로 전쟁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1 배경[편집]

1.1 종교[편집]

시리아의 대통령은 현재 바샤르 알아사드이다. 이슬람교 중에서도 시아파 신자인 그는 아버지인 하피즈 알아사드에 이어 시리아 인구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수니파[1] 인구를 탄압하고 있다. 그래서 시리아는 사실상 시아파 국가이다.(...) 대통령의 이념과 국민 대부분의 이념이 거의 180도 다르니 내전이 벌어질 만도 한 것이다.

1.2 인권[편집]

시리아의 인권은 1963년 이후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한마디로 무려 52년 동안 헬게이트가 열려있는 셈인 것. 얼마나 심하냐면 시리아에서는 선거 자체가 없으며 정부를 비판하면 즉시 감옥행이다. 여성이나 소수 민족 차별도 심하며 집회를 열 수도 없다. 그러니 어찌 보면 반정부 시위는 당연한 결과였다.

2 경과[편집]

2.1 2011년 (시리아 민주화 시위)[편집]

2.1.1 2월 ~ 3월[편집]

시리아의 반정부 시위는 2011년 1월 26일에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때에는 작은 반정부 운동에 불과했다. 심각해도 시위자가 몸에 가솔린을 붇는 정도.[2]

2월 3일에는 페이스북트위터 등지에서 시리아를 규탄하는 글을 올리는 집회가 벌어졌는데 외국에서 소수의 사람들 만이 참가할 뿐이었다. 2월 5일에는 수백 명 규모의 시위가 열리는데 이 시위도 곧 진압되었다.

2월 22일에는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 주변에 200명의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지만 시리아 경찰에 의해 14명이 체포되고 몇 명은 폭행을 당하였다. 이 와중에 "리발 알아사드"라는 한 인물은 시리아에서 큰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하였다.[3]

3월 중순이 되자 반정부 시위는 꽤 크게 번지기 시작했다. 하사카, 다라, 하마 등에서 수천 명 가량의 시위자들이 거리를 행진했으며 다마스쿠스에서도 수십명에 불과하던 시위대가 거의 1000명 가까운 규모로 성장하였다. 특히 다라에서는 3월 20일부터 23일까지 수천명의 규모에 달하는 시위가 또 한번 일어났다.

이런 일들을 알아챈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는 몇 가지 대책을 발표했지만 군중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기만 했다. 3월 25일에는 〈영광의 금요일〉이라는 대규모 집회가 온라인으로 계획되어서 수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자유를 위한 많은 요구를 하였지만 오히려 시리아 정부에서는 다라의 전화 회선을 끊어 버렸다(...). 하지만 시위는 계속되어서 무려 10만명 이상이 시위를 벌였다. 이 날 하페즈 알아사드의 동상이 무너지고 주지사의 집에도 불이 나는 등 큰 사건사고들이 발생했다. 이 시위가 있은 후 며칠 후인 3월 29일에는 수십만 명 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

2.1.2 4월[편집]

4월 1일에는 〈순교의 금요일〉이 열려서 수천 명이 참가했는데 다마스쿠스에서 정부군이 시위대에게 발포를 해서 8명이 죽었다. 반정부 시위와 그에 대항하는 정부군의 대응이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다 보니 이 일은 외부 세계에도 잘 알려지게 되었다. 수많은 기자가 시위를 촬영할려고 시도하였지만 시리아의 국경 폐쇄로 인하여 시리아에는 다른 나라의 기자들이 들어갈 수 없었다.

4월 8일은 〈저항의 금요일〉[4]이었다. 이 날 수천명의 시위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치안 부대에게 돌을 날렸지만 치안 부대의 실탄 발포로 인하여 다수의 시위자들이 부상을 입었다. 한 인권 단체에 따르면 이 날에만 무려 38명이 죽었다고 한다.

일주일 뒤인 4월 15일에는 수만 명이 여러 도시에서 시위를 벌였다. 다마스쿠스에만 5만명이 집결하여 시위를 진행했지만 최루 가스로 인해 돌아갔다.

또 일주일 후인 4월 22일은 〈성스러운 금요일〉이었는데 수만 명이 계속해서 시가지로 쏟아져 나왔다. 4월 25일에는 시리아 정부가 다라에 전차를 파견해서 25명이 살해되었고 6000명의 병사가 동원되었으며 전기, 수도, 통신을 단절하는 등 시리아 정부의 시위 진압은 거의 전쟁 수준까지 다다랐다. 이후에도 〈격분의 금요일〉 시위가 열리는 등 반정부 시위자들의 시위는 멈출 줄 몰랐다.

2.1.3 5월[편집]

5월이 들어서자 시위는 한층 더 심각해졌다. 다라에 대한 공격의 수위는 더욱 높아졌지만 시위자들은 계속 시위를 벌였다. 시리아군은 이에 대항하여 시위자들이 집결한 주요 도시들에 탱크 포격을 가했으며, 민간인 40명을 살해했다.

5월 5일에는 다라 포위전이 끝나고 홈스 포위전이 시작되었다. BBC에 따르면 이날 무려 3000명이 사망했거나 체포되었으며 12대의 탱크가 홈스로 보내졌다고 한다.

5월 6일은 〈도전의 금요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니야스, 홈스, 하마에 집결해서 큰 시위를 열었는데 그 다음날 시위의 핫 플레이스 중 한 곳인 바니야스에서 바니야스 포위전이 벌어지게 된다. 6명이 이날 죽었다.

그 다음 금요일(5월 13일)은 〈자유로운 여성의 금요일〉이었는데 이 때에도 정부군은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한다. 그 다음날에는 한술 더 떠서 2011년 5월 탈카라흐 포위전이 벌어지게 된다.

5월 20일은 〈자유의 금요일〉로 정해졌다. 금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이슬람교 풍속 답게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여러 도시에서 23명이 시리아군 및 경찰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으로 인해 죽었다. 5월 24일에는 한 인권 단체가 시리아 내전의 사망자가 1100명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5월 28일에는 알라스탄 포위전이 벌어지는 등 시위와 정부의 진압은 더욱 격해졌다.

2.1.4 6월[편집]

6월 2일에는 시위 근거지인 몇몇 도시에서 시리아 정부군의 포격으로 인해 많은 수의 건물들이 무너졌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했다. 그 다음날인 6월 3일(〈어린이의 금요일〉)에는 약 5만명 규모의 시위가 일어났지만 시리아 정부는 진압과 함께 시리아의 인터넷을 다운시켰다.시리아 위키러는 안습. 이로 인해 시리아 인터넷 사용량은 ⅔가량 줄어들었다. 그 다음날에도 시위는 계속되어 금요일로부터의 사망자수는 72명으로 늘었다.

6월 10일(〈민족의 금요일〉)에는 시위자들이 "민족의 금요일" 행사를 예정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정부군에서 먼저 작전을 개시했다. 결국 2000명이 터키로 가는 등 반정부 시위대 쪽 피해가 예상보다 더 커졌다.

6월 14일아랍 연맹에서 공식적으로 시리아를 규탄했다. 그에 이어서 6월 16일에는 반기문 UN 사무총장 역시 시리아를 규탄했다. 국제 사회는 시리아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하는 모양새로 가는 가운데 드디어 금요일인 6월 17일이 왔다. 평소 이슬람교 예배를 드리던 신자들의 모습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많은 사람들이 예정된 시각이 되자 거리로 나왔고 같은 시각, 시리아 정부군도 거리로 나왔다. 알레포에서 그 날 첫 사망자가 속출하였으며 홈스, 하마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같은 시각 레바논트리폴리에서도 수니파와 시리아 친정부 세력의 충돌로 사망자가 나왔다.

6월 18일에는 터키-시리아 국경에서 불과 2 km 떨어진 도시에서 시리아 정부군이 포격을 가해 터키와 시리아 간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6월 24일(〈잃어버린 정당성의 금요일〉)에는 모스크가 포격으로 인해 무너져 6명이 사망하는 등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이 날 총 15명이 사망했으며 20명 이상이 사망하였을 수도 있다고 보도되었다. 6월 31일에는 7월 1일의 〈떠남의 금요일〉 시위가 예고되었다.

2.1.5 7월[편집]

7월 1일에는 "떠남의 금요일" 시위가 열렸다. 전국적으로 큰 시위가 열렸고 5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리아 전역에 쏟아져 나왔다. 이 날 정부군의 무자비한 진압과 여러 사건사고 등으로 28명이 숨졌다.

금요일이 지난 후에도 시위는 이어져, 12명이 체포되고 11명이 죽었다. 7월 8일(〈침묵의 금요일〉) 시위에서는 50만명[5]에 달하는 사람들이 다시 모여 시위를 벌였는데 반정부 시위대에 따르면 이날 13명이 죽고 40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7월 11일, 친정부 시위대가 주시리아 미국 대사관과 주시리아 프랑스 대사관을 공격했다.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이 공격을 계기로 시리아를 비판했다. 7월 15일(〈인질의 자유를 위한 금요일〉)에는 시리아 인구의 6%에 달하는 107만명이 시위를 벌였는데 이 날 민간인 사망자가 28명이나 속출했다.

다음 금요일에는 110만명이 시위를 벌여 많은 사람들이 숨졌으며 또 다음 금요일인 7월 29일에도 엄청난 수의 시위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20명이 각종 사건사고로 숨졌다.

7월 31일에는 시리아 정부가 하마 포위전을 일으켰다. 시리아 정부군의 거센 탱크 공격에 의해 137명이 숨졌다.

2.1.6 8월[편집]

8월 3일부터는 거의 매일 대규모 시위 사건이 터지기 시작했다. 8월 3일에는 45명이 숨졌으며, 8월 4일이 되자 8월 사망자가 200명을 돌파했다. 8월 5일 〈신이 함께하는 금요일〉에서는 30000명 규모의 시위가 일어난 것을 비롯해 시리아 전국적으로 시위 인파들이 모였다. 8월 8일에는 87명이 숨졌는데 그 날 온라인 해킹 그룹 어나니머스에 의해 시리아 국방부 사이트가 해킹되었다. 8월 9일에는 전날에 일어났던 해킹 사건과 반대로 어나니머스 관련 사이트가 친정부 세력에 의해 해킹되었다.

8월 12일 금요일에는 기도 행렬이 쏟아졌는데 기도 이후 20000명 가량의 시위 행렬이 쏟아져서 시리아 정부가 진압에 나섰다. 8월 14일에는 시리아 해군까지 나서서 민간인들을 공격했다. 8월 15일에 6명의 민간인이 살해되는 등 시리아 정부의 민간인 살해가 계속되자, 터키의 총리인 아흐메트 다우토을루는 시리아의 시위 진압 중단을 요구했다. 8월 18일에는 미국, 프랑스 등 북아메리카의 주요 국가 정부가 시리아 대통령인 바샤르 알아사드에게 대통령 사퇴를 처음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8월 19일 〈승리의 시작의 금요일〉에서 23명이 살해되는 등 시리아 정부의 무차별 공격은 계속되었다.

8월 21일의 방송 인터뷰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반군과 국제 사회에 대해 경고하며 시리아에 대한 국제 사회 개입이 불쾌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2.2 2012년(내전의 시작)[편집]

2.2.1 7월[편집]

작년 4월까지만 해도 단순한 대규모 시위일 뿐이었던 것이 이듬해 7월 중순이 되자 국가적으로 번지더니 정부군과 반정부 시위대 간의 무력 충돌이 빈번해졌다. 결국 7월 14일에는 적십자에서 이 상황을 내전 상황으로 규정했다.

7월 16일에는 반정부군이 다마스쿠스에 대해 큰 공격을 개시했다는 소식이 떴는데 시리아 정부군의 전차와 헬기를 격추시켰다는 것으로 보아 반군도 정부군에 밀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시리아 정부군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쯤이면 헬게이트 오픈은 별로 다가오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3 2015년[편집]

2.3.1 11월[편집]

2.4 2016년[편집]

2.4.1 2월[편집]

  • 2월 11일: 미국, 러시아 등 국제사회가 1주일 내로 시리아 내의 ‘적대적 행위 중단(cessation of hostilities)’을 한다고 합의했다. 단, IS와 ‘알누스라 전선’을 포함한 테러 단체에 대한 공습은 계속된다.[6]
  • 2월 12일: 시리아 대통령 바샤드 알아사드가 반군에 맞서 시리아 전역을 탈환할 것이라며 전날의 평화회담을 지지한다면서도, “협상이 테러리즘과의 싸움 중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7]

2.4.2 3월[편집]

  • 3월 14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15일부터 시리아에서 러시아군 주요 병력을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테러 격퇴를 명분으로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공습을 시작한 지 6개월만이다. [8]
  • 3월 15일: 시리아 주둔 러시아군의 부분 철군에도 IS 등 시리아 내 테러 조직들에 대한 러시아 공군의 공습은 계속될 것이라고 니콜라이 판코프 러시아 국방차관이 밝혔다.[9][10]

2.4.3 6월[편집]

  • 6월 4일: 시리아 정부군이 IS의 사실상 수도인 락까시 외곽에 진입했다. 정부군이 락까에 진입한 것은 IS가 2014년 8월 이슬람제국인 ‘칼리프 국가’를 선언한 이후 처음이다. 한편, 쿠르드군이 주축을 이루는 반군인 SDF(시리아 민주군)는 만비즈 인근 마을 34곳을 점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락까의 북쪽 IS의 거점 만비즈에서 락까 쪽으로 남진하고 있다. [11]

3 각주

  1. 같은 이슬람교지만 여러 부분에서 시아파와 반대되는 이념을 가지고 있다.
  2. 심각해 보일수도 있지만 막판에 벌어지는 것헬게이트에 비교하면 아주 사소한 일이다.
  3. 이 예언은 곧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
  4. 이슬람권에서는 금요일이 공휴일이다보니 집회가 금요일날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5. 50만명은 시리아 인구의 3퍼센트에 달한다.
  6. 케리 “시리아 내전 1주일내 중단” 1000만 명 눈물 멈출까, 중앙일보, 2016.02.13
  7. 알아사드 대통령 “반군에게서 시리아 전역 탈환할 것”, 뉴시스, 2016.02.13
  8. 시리아 철군 명령... 내전 판도 바꾸고 발 빼는 푸틴, 경향신문, 2016.03.15
  9. 러시아 "시리아 철군 관계없이 IS 공습 계속하겠다", 연합뉴스, 2016.03.16
  10. 사실상 시리아 반군에 대한 공습만 중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1. 시리아軍, IS 수도 락까 첫 진입… 반군도 거점 34곳 점령, 서울신문, 201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