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나관중이 쓴 중국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다, 절대로 여기 있는 내용을 역사라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삼국시대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은 삼국정사를 읽으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요즘 우리가 나관중이 썼다~라고 하지만, 나관중에 대한 기록이 적고, 나관중이 죽고 100년 정도 지난 뒤에야 그의 작품이라는 기록이 있을 뿐이라, 그가 썼다고 못 박기에도 애매모호하다. 나관중이 썼다고 하는 것이 바로 삼국지통속연의이고, 이를 나중에 강희제 시대의 모종강이 크게 고쳐 써버린 것이 모종이다. (양이 으로 줄었다고 한다) 이건 뭐 거의 다시 쓴 거네, 뭐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그가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이유로 편집했다는 설과 문학적인 이유였다는 설이 양립한다.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아?.

줄거리[편집 | 원본 편집]

후한 말, 십상시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며 기강이 문란해지자, 백성들은 점점 불만을 품기 시작하며 전국은 극도로 혼란해졌다. 이런 가운데 장각이 이끄는 황건적의 난이라는 대규모 농민 봉기가 발생한다. 영웅 호걸들의 활약으로 인해 난은 진압되었지만, 이미 조정의 지방 통제력은 붕괴 직전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수도 낙양에서는 영제가 죽고 외척과 환관 사이의 정권 다툼 끝에 십상시의 난이 발생하였다. 군벌 동탁은 외척과 환관이라는 양대 세력이 없어지는 바람에 공백이 생긴 권력을 장악한 후, 스스로를 상국이라고 칭하며 극악무도한 악행을 저지르니 황실의 정통성과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이런 동탁의 행위에 각지의 군벌들이 서로 연합하여 17로 제후를 중심으로 동탁에 대항하여 낙양으로 진격한다. 그러나 반동탁연합은 서로의 이권 문제 때문에 군웅들 사이에서 대립이 점차 심화되기 시작하니, 결국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하면서 잿더미로 변해버린 낙양만 남겨놓은 채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내분이 심화되어 결국 흩어지게 된다. 이때 서로간에 반감을 품은 군주들은 이후 각자 세력을 유지하면서 상대방을 견제하는 군웅할거의 기반이 다져진다.

세력을 규합해 동탁과 여포를 제거하고 헌제를 옹립하며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은 조조는 군웅들을 정벌해나가며 권력의 입지를 다지고, 또한 관도대전에서 일전일퇴의 사투 끝에 대승하여 천하의 주도권을 마침내 손에 쥐게 된다. 이에 유비제갈량천하삼분지계를 받아들여, 손권과 연합하여 남하하던 조조와 대적, 적벽대전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후 유비는 촉을 점령하고 세력을 확장시켜 나가던 와중에, 형주 영유권을 주장하던 오와 대립이 심해지며 이 과정에서 위와 연합한 오는 형주 도독이던 관우를 협공해 제거하는 성과를 거둔다. 관우 사후 조조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며 아들 조비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위왕에 오른 조비는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였던 헌제를 압박해 결국 황제의 자리를 선양받고 후한은 멸망한다. 후한이 망하자 당시 한중왕을 칭했던 유비는 한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면서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위, 촉, 오의 삼국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황제에 오른 유비는 관우의 원수를 갚겠다면서 대규모 정벌군을 일으켜 오를 치려한다. 이 과정에서 장비가 부하에게 암살당하는 불운이 따른다. 당시 오는 육손의 지략으로 촉의 대군을 격파하는데 이 전투가 이릉대전이다. 이릉에서 패주한 유비는 얼마 후 사망하고, 유선이 유비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다. 유비는 죽기 전 제갈량에게 후사를 간곡히 부탁했고, 이 유지를 받들어 제갈량은 후방을 어지럽히던 남만을 제압하고 본격적으로 위에 항거해 북벌을 감행한다. 하지만 수차례 북벌에서 이렇다할 결과없이 일진일퇴의 공방만 반복하다 결국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제갈량 사후, 북벌을 훌륭히 막아낸 사마의는 위나라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했고, 그의 아들인 사마사사마소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위의 권력을 좌지우지한다. 제갈량의 후계자 강유는 아홉 번의 구벌중원을 감행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결국 사마소의 아들인 사마염이 위의 마지막 황제였던 조환에게 선양받아 위를 멸망시키고 서진을 건국한다. 이후 남아 있던 오를 정벌하면서 삼국시대는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