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의

사마의(司馬懿, 179년~251년 8월 5일)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리이자 서진의 추존 황제다. 자는 중달(仲達).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사마의는 조조 휘하의 최하급 관료였다. 그나마도 조조의 휘하에서 일한 기간은 엄청나게 짧았다. 본디 사마의가 조조에게 발탁된 것도 아니었다.

사마의는 이렇게 조조가 살아생전에는 결코 중용되지 못하고 있다가 조비가 즉위하자 어디 자신의 참모로 쓸 재자가 있나 없나 기웃거렸다. 그때 사마의가 발견되어 사마의는 조비에게 중용되었다. 사마의는 조비가 즉위해서 맹달을 상용태수로 임명하자 그 이유를 물었는데 조비의 답변이 쏘 쿨(so cool)했다. 맹달이 귀여워서란다. 이에 사마의는 예상했다. 조씨 가문은 글렀다고. 여튼 맹달이 상용태수가 되자 사마의는 신탐과 신의를 시켜 맹달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감시하도록 시켰고 조비가 죽자 맹달이 바로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걸 신속하게 진압했다.

또한 공손연도 맹달과 마찬가지로 계속 감시하다가 공손연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자마자 바로 처단했다.

또한 제갈량과의 대결에서 제갈량이 삽질하자 삽질하는 제갈량의 허를 계속 찔렀으며 심지어는 사마의를 약 올리기 위해 여자 옷을 들고 온 제갈량의 사신에게 동요되지 않고 오히려 제갈량의 일과를 물었다. 이에 사신은 제갈량은 모든 업무를 혼자 전담하며 밥도 잠도 조금밖에 안 한다고 했다. 그러자 사마의는 매우 기뻐서 당장 병력들에게 파티를 하고 제갈량이 끝났다는 축하잔치를 베풀었다.

고평릉의 변이야말로 반란을 반란으로서 막은 사건이다. 조상은 본디 뚱뚱이 조진의 아들이었는데 천하에 대한 야욕이 심하고 안하무인이었다. 조예의 뒤를 이어 즉위한 조방의 나이가 무지하게 어렸는데, 조상은 반란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하고 완전히 개판을 쳤다. 이 때문에 하후씨 일족이 가장 크게 피를 봤는데 하후상의 아들 하후현은 그 일족이 몰살당하고 하후연의 아들 하후패는 보따리 싸서 촉나라로 도주했다. 이에 사마의는 조상의 반란에 대한 반란, 즉 역반란을 일으켜 성공하고 실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사마의는 역반란 한 방으로 삼국지의 최종승자로 등극했다.

능력[편집 | 원본 편집]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능력이 좋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능력은 삼국지 전체 최고 수준이었다. 그 똑똑한 두뇌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성격은 사마의의 강점 중 가히 최강이라 할 수 있으며, 사마의에 비하면 제갈량은 완전히 되나마나 처신을 한 애송이에 불과하지만, 역시나 맹목적인 촉나라 만세를 외치는 《삼국지연의》는 이러한 두 사람의 엄청난 수준차를 무시하고 둘을 라이벌로 내세우는 병크를 터뜨렸다.

항상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줄 알았던 사마의는 결국 그 일족이 천하통일에 성공했다. 어허... 그런데 이렇게 좋은 사마의의 후손 중에 어째서 금치산자 사마덕종이 태어났을까? 도대체 그 후손들이 어떤 여자들이랑 결혼했길래...

두뇌 면에서의 평가[편집 | 원본 편집]

당대의 기재급으로 좋았으나 문제는 코브라의 어금니를 갖고 있어서 조조에게는 중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마의를 부하로 두려면 한 치의 약점조차 발견되어서는 안 되는데 조조는 자기 약점이 뭔지 잘 아는 사람이라 사마의를 중용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사마의는 다른 사람의 약점을 무는 능력이 정말 수준급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조에게는 중용되지 못했지만 코브라의 이빨을 발견하지 못하고 흥청망청 사는 조비에 의해 중용되었다.

또한 현재의 상황과 세상의 이치를 파악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능력 역시 수준급이었다. 장합을 전사시킨 거? 장합이 계속 살아있었더라면 사마의는 고평릉의 변에서 아주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 때문에 사마의는 철저하게 자신을 중심으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났던 것이다.

그런 사마의가 좀 깨는 게 뭐냐 하면 자기 아내인 장춘화한테는 맨날 멍청하다고 혼났다는 점이다. 도대체 왜?

저래 봬도 크고 작은 전투에 참전한 백전노장이다. 또한 병력의 기동성이 매우 뛰어나서 여기저기서 일어난 반란을 신속하게 진압했으므로 사마의의 군재는 가히 탁월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사마의는 적이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시를 붙여서 반란이 일어날 조짐을 빨리 파악해서 미연에 차단하는 능력 또한 수준급이었다. 사마의는 맹달을 처음부터 믿지 못한 정도를 떠나서 맹달을 보자마자 맹달을 죽일 기회를 노렸을 정도였다. 그런데 자기 주인인 조비가 워낙 귀여워하는 놈이 맹달인지라 섣불리 건드리지는 못하고 신의와 신탐에게 감시하도록 시켰다가 조비가 죽고 맹달이 조예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자마자 바로 처단해버렸다.

인격[편집 | 원본 편집]

조조는 애초에 사마의의 포부가 지나치게 웅대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마의를 중용하지 않았다. 사마의는 기본적으로는 충직한 모습만을 보여 오면서 한편으로는 항상 상대방의 허를 찔렀다. 그게 적이든 아군이든 내가 모시는 주인이든 가릴 것 없이 허를 찌를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의 허를 찔렀다. 항상 허를 찌르는 버릇을 갖고 있는 사마의였는지라 자신의 아들들인 사마사와 사마소에게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허를 찔리지 않게 철저히 교육시켰다. 전투에 있어서는 제갈량에 대해 제갈량이 뭔 작전을 짜고 있는지 따윈 관심조차 없어했다. 왜냐하면 제갈량 그 병신새끼는 하는 짓이 뻔하니까... 그래서 사마의의 관심사는 제갈량의 하루 일과였다. 사마의는 제갈량의 하루 일과를 알아냈을 뿐인데 크게 기뻐했다. 제갈량은 쥐알만큼 밥을 먹으며 잠도 거의 자지 않았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과로로 쓰러져 죽을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러면서 경쟁자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해나갔고 그 명분 또한 그럴 듯 했다. 잘못된 작전 명령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잘된 작전 명령인 것처럼 속여 장합을 전사시켰고 반란 진압을 하는 척 하면서 자기가 반란을 일으킨 고평릉의 변은 오늘날에도 회자된다. 필자만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장합이 전사한 것은 절대 사마의의 판단 미스가 아니다. 사마의의 권모술수이다. 만에 하나 촉나라를 평정한 이후에도 장합이 살아있을 경우 사마의에게는 가장 거대한 정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 기준으로 위나라에서 가장 군공이 많은 게 장합이기 때문이다.

처세[편집 | 원본 편집]

괜히 최종승자가 아니다. 사마의는 자신의 허점을 원천봉쇄했고 충직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장합을 죽게 한 것도 작전 미스 같아 보이게 했고 반란을 진압하겠다고 하면서 자기가 반란을 일으켰고, 당연한 결과지만 그 반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조방과 사마의는 조상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사마의는 조방을 도와줍네 하면서 명분도 얻고 조상이 갖고 있는 밥그릇을 대놓고 강탈할 수도 있고 완전히 일석이조였기 때문에 조방의 옹호를 받은 정당한 반란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처세로 위나라를 장악한 사마의와 그 후손들은 이후 오나라와 촉나라를 멸망시키고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대중문화 속의 사마의[편집 | 원본 편집]

삼국지 6[편집 | 원본 편집]

능력치[편집 | 원본 편집]

  • 통솔 98
  • 무력 67
  • 지력 98
  • 정치 90
  • 매력 79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