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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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나라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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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이름   = 독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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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설명= 위부터 1871~1918, 1918~1935, 1935~1945까지 <br />사용했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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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기간= 74년 1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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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국(Deutsches Reich)은 독일 통일 이후 세워진 나라이다.
독일국(Deutsches Reich)은 독일 통일 이후 세워진 나라이다.

2022년 3월 21일 (월) 11:09 판

{{{이름}}}
Deutsches Reich

독일국(Deutsches Reich)은 독일 통일 이후 세워진 나라이다.

역사

프랑스에 대한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프로이센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통일을 선포했다. 독일은 범게르만주의로 탄생한 국가인만큼 같은 독일 민족국가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동맹을 체결했다. 이후 프랑스에 대해 악감정을 품고있던 이탈리아가 합류하면서 곧 이는 3국 동맹으로 변했다. 뒤늦게 식민지 작업에 뛰어들은 독일은 비잔티움(이스탄불, Byzantium), 바그다드(Baghdad)를 점령하고 베를린(Berlin)으로 잇는 3B 정책을 펼첬다. 하지만 이는 중동 지역으로 범위를 뻗치려고 했던 영국, 러시아를 자극했고 결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는 3국 협상(동맹)을 맺었다.

러시아는 서서히 쇠락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에 전쟁을 벌여 발칸 반도의 슬라브족들을 독립하도록 도왔고, 러시아의 발칸 반도에서의 영향력이 커지자 독일은 베를린 회담을 열어 슬라브족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하지만 러시아와 세르비아는 이 건을 두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해 갈등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사라예보 사건을 구실로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으로 터졌다.

독일은 서쪽에는 영국과 프랑스, 동쪽에는 러시아를 두고 소모전을 벌여야했고, 러시아 내전이 터지면서 어떻게 서부전선만 집중할 수 있게됐지만 미국이 참전하면서 열세에 몰렸고 결국 항복했다. 독일은 이후 체결된 베르사유 체제로 인해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고, 군사 방면에 큰 제약을 받게 되었다. 독일의 좌절감은 유대인들을 탓한 배후중상설로 이어졌고, 이후 대공황마저 터지면서 회복되던 경제마저 악화되자 국수주의가 팽배해졌다. 이후 국수주의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던 나치당이 수권법으로 집권하면서 독일은 다시 제국주의적으로 변했다. 다시 범게르만주의를 내세워 오스트리아를 병합,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고 폴란드가 할양 요청에 응하지 않자 폴란드마저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제1차 세계대전을 반복할 것을 우려해 아무것도 하지 않던 사이 독일은 전쟁 준비를 마쳤고, 이후 덴마크노르웨이, 베네룩스 3국과 프랑스를 점령했다. 이후 독일은 이탈리아를 도와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고는 리비아에 군대를 보내 아프리카 전선에서 승리를 거뒀고, 런던을 공습했으나 항복을 받아내진 못했다. 전쟁이 길어지자 독일은 석유 공급을 위해 불가침조약을 깨고 소련을 기습했고, 처음에는 승리를 거뒀으나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면서 패퇴했고 스탈린그라드에서 고전하게 됐다. 프랑스령 서아프리카가 연합군에 점령당하고 이탈리아 마저 항복하자 독일은 열세에 몰렸다. 발칸 반도가 해방되고 노르망디 작전으로 프랑스마저 재탈환되자 독일은 베를린에서 공방전을 벌이나 실패했고 총통인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 새로운 군부가 항복하면서 독일국은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