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

김학철
Kimharchul.jpg
인물 정보
출생 1972년 11월 4일 (51세)
국적 대한민국
신체 177cm, 70kg
프로선수 경력
종목 축구
포지션 센터백
소속팀 부산 아이파크 (1995~2002)
상주 상무 (1998~1999)
대구 FC (2003)
인천 유나이티드 (2004~2008)
지도 대건고등학교 (2010~2012)
동국대학교 (2014)
포천 시민 축구단 (2015)
파타마 유나이티드 (2016)

소개[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 출신의 센터백.

선수 경력[편집 | 원본 편집]

클럽 경력[편집 | 원본 편집]

국민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산광역시대우 로얄즈에서 데뷔했다. 1998년 상주 상무에 입대해서 199년도에 전역하고, 다시 부산 아이콘스로 돌아왔다.2002 시즌이 끝난 뒤,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게 된다. 이안 포터필드의 수비진 구상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 김학철과 인연이 있던 안종복이 막 창단한 대구 FC에 추천을 해주며, 김학철은 대구 FC의 창단멤버로 들어가게 된다. 박종진, 임중용 등의 창단멤버와 함께였다. 대구의 핵심 수비수로 자리잡으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터키의 라힘 자파르를 밀어내고 호제리오와 함께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게 되지만, 임중용과 함께 인천 유나이티드로 1년만에 이적하게 된다.

이때 대구 FC에 김학철을 추천해 준 안종복이 인천 유나이티드의 단장으로 부임한다. 대구에서 맹활약한 김학철은 임중용과 인천에서 강력한 센터백을 이루며, 인천의 상승세에 기여한다. 노장이 되었음에도 좋은 모습을 보인 김학철은 2008년 수원 삼성 블루윙스를 상대로 프로 마지막 경기를 가지고 은퇴 했다. 은퇴 후 지도자 준비를 한다고 한다.

국가대표 경력[편집 | 원본 편집]

1998년 다이너스티 컵 한일전에서 국가대표로 차출되었다. 당시 감독은 차범근. 전반 17분 김학철의 실수로 연결된 코너킥에 의해 한국은 실점했다. 설상 가상으로 김학철은 부상을 당해버리고, 한일전의 패배에 부상이 겹쳐서 국가대표팀 경력은 1경기로 끝나고 말았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 원본 편집]

신체능력이 뛰어난 파이터형 수비수. 수비수 중에서도 빠른 발을 바탕으로 한 근성과 투지로 수비를 했다. 근성의 영향으로 굉장히 노력을 했기 때문에, 스포츠 과학이 자리 잡기 전인 세대 치곤 굉장히 오래 선수 생활을 지속했다.

다만, 신체 능력에 비해 부족한 제공권이 약점으로 꼽혔지만, 선수생활을 거치며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지도자 경력[편집 | 원본 편집]

은퇴 이후 김학철은 인천 유나이티드의 코치로 부임했다. 이후 2010년부터는 그리고 대건 고등학교 코치로 부임했다.

2012년에 독일로 축구 연수를 떠났다. 2년간의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2014년에 단국대학교에서 감독 제안이 들어와 수락했으며, 1년 후인 2015년에는 강릉제일고 감독을 맡았다가, 2016 K3리그의 포천시민구단의 감독으로 재임했다.

그리고 2016년 6월에 태국 프리미어 리그의 파타야 유나이티드의 감독 제안을 수락하면서, 아마추어 리그에서 프로팀 감독으로 순식간에 자리를 옮기게 된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임중용과 함께 대구 FC인천 유나이티드의 창단 멤버이다.

1996년 10월20일 인천에서 열린 부산 대우와 전북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득점을 성공시켰고 이 골이 프로생활에서의 유일한 득점이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