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일가 건국훈장 서훈 취소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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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김정수 일가 5명 전원의 [[건국훈장]] 서훈을 취소한 사건. 독립유공자 관리 실태의 부실함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다.
2018년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김정수 일가 5명 전원의 [[건국훈장]] 서훈을 취소한 사건. 독립유공자 관리 실태의 부실함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다.

2022년 8월 29일 (월) 17:43 기준 최신판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의 파묘를 촉구하고 있는 김세걸씨.png

2018년 국가보훈처독립유공자로 지정된 김정수 일가 5명 전원의 건국훈장 서훈을 취소한 사건. 독립유공자 관리 실태의 부실함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편집 | 원본 편집]

김정수 일가는 독립유공자가 5명에 달하는 명실상부한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손꼽혔다. 조부 김낙용(1860~1919)은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고, 백부 김병식(1880~?)은 196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고, 부친 김관보(1882~1924)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김정수 본인은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그리고 사촌동생 김진성(1913~1961)은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서훈받았다.

이후 김정수 일가는 1968년부터 2015년까지 3억 9357만원을 보훈급여금으로 챙겼다. 김병식 유족은 1963년부터 2017년까지 4892만원, 김관보 유족은 1963년부터 1983년까지 522만원, 김진성 유족은 1968년부터 1983년까지 164만원을 보훈급여금으로 받았다. 김정수의 딸이 2015년 마지막 보훈급여를 받았을 당시 매월 188만 2000원을 받았다.

그러던 1988년, 중국 심양에서 군의관 생활을 하던 김세걸씨는 어느 날 노래방에 갔다가 반주 화면에 등장한 현충원 묘역 영상에서 부친 김진성의 이름을 새긴 묘비명을 발견했다. 이에 국가보훈처에 사실 확인을 요구했는데, 국가보훈처는 "부친과 성함이 똑같은 동명이인이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뭔가 석연치 않다고 판단한 김세걸 씨는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진 이듬해인 1993년 직접 한국으로 건너와 문제의 묘지를 확인했다.

그는 묘비에서 김진성의 행적을 조사했고, 묘비에 적힌 가짜 김진성의 행적은 생몰연대만 다를 뿐 부친의 공적과 거의 동일하다는 걸 확인했다. 이에 그는 자신의 부친이 진짜 독립운동가이며,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김진성은 가짜라는 걸 증명하는 증거들을 모아 국가보훈처에 제출했다. 그러나 보훈처가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하자, 김세걸 씨는 홀로 국사편찬위원회 등을 찾아다니며 김정수 일가의 공훈이 조작됐음을 입증하는 증거들을 모아 제출했다. 그러자 보훈처 공무원은 "어떻게 그걸 찾으셨느냐"며 "나는 머리가 나빠 못 찾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국가보훈처는 1995년 김세걸 씨의 부친 김진성이 진짜 독립운동가임을 인정하고 건국훈장 독립장을 서훈했고, 1998년 가짜 독립운동가로 밝혀진 동명이인 김진성의 유해를 다른 곳으로 이장했고, 그 자리에 김세걸 씨의 부친 김진성의 유해가 안장되었다. 그리고 김세걸 씨는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적을 수여받았다.

사건의 심화[편집 | 원본 편집]

하지만 김세걸 씨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유공자를 허위로 지정받은 김진성 일가를 처벌하고 연금을 회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보훈처 직원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인정해줬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느냐.

그는 이에 크게 실망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가짜 김진성의 유족으로부터 훈장과 연금을 회수하려 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수령인인 김재원 씨(가짜 김진성의 딸)는 이미 행방불명되어 연금 지급이 끊긴 지 오래라는 답변을 했다.

김세걸 씨는 이러한 보훈처의 답변에도 굴하지 않고 수소문한 끝에 묘역을 관리하던 직원으로부터 결정적인 제보를 받았다. 가짜 김진성의 묘역에 제사를 지내러 오던 후손들이 바로 옆에 위치한 김정수의 묘역에서도 제사를 지내더란 것이었다. 이에 김정수의 묘역을 찾은 김세걸 씨는 가짜 김진성의 묘비에 조카로 기록되어 있던 이름들이 김정수의 묘비에는 아들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김세걸 씨는 김정수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김정수는 만주 일대의 대표적인 항일무장단체였던 참의부에서 활동한 공로로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은 바 있었다. 하지만 그는 김정수의 공적으로 기록된 사실이 독립운동가 김정범과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김정수의 유족은 "김정범이라는 이름은 독립운동하던 당시에 쓰던 다른 이름"이라며 동일 인물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김세걸 씨는 관련 자료를 면밀히 조사한 결과 유족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밝혀냈다. 우선 일제강점기 당시의 기록을 살펴봐도 김정범이 김정수란 이름을 썼다는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또 김정수와 김정범의 나이 차이는 무려 9살 차이인 데다가(김정수는 1909년생, 김정범은 1900년생) 원적 역시 김정범은 '평북 초산'이지만 김정수는 '평북 영변'이었다.

김세걸 씨는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그런데 국가보훈처는 2009년 김정범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지만, 김정수의 건국훈장 서훈을 취소하지 않았다. 김정수의 후손들에게도 소명할 기회를 줘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보훈처의 설명이었다. 이에 대해 김세걸 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분노를 토로했다.[1]

내가 김정수가 가짜라는 증거를 다 찾아서 제출했음에도 저런 행보를 벌인 건 무능하다고밖에 볼 길이 없습니다.

결말[편집 | 원본 편집]

2015년 국가보훈처는 김정수 일가에게 지급하던 보훈 연금을 정지시키기로 결론지었다. 보훈처 공훈발굴과 관계자는 “일단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2015년부터 연금과 예우를 정지시켰다. (김정수) 후손에게 소명자료를 요청해 받은 후 지난해 공적심사위원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공심위는 김정수가 제출한 공적서류를 면밀히 검토하고, 진위여부를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보훈처는 김정수의 항일투쟁 활동을 인정해 훈장을 수여할 당시의 근거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김정수의 포상근거 중 하나였던 ‘가출옥 서류 455호’를 찾아내지 못했다. 김정수가 훈장을 받았을 당시 독립운동가 공적심사는 국사편찬위원회가 맡았고 1977년부터 보훈처의 전신인 원호처로 이관됐다. 그런데 김정수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던 서류가 소재파악이 안 된 것이다. 심지어 당시 공적을 심사할 때의 회의록 등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가출옥 서류 445호’의 사실 근거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렇지만 생전의 김정수가 독립유공자 신청 관련 공적서류를 제출할 때 함께 제출한 인우보증서 7통은 남아있었다. 이에 보훈처는 인우보증서 7통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김정수의 필적과 대조해 봤다. 그 결과 7통 중 2통이 김정수의 필체와 동일한 것으로 나왔다. 즉, 김정수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한 후 자신이 써서 제출한 것이다.

결정적인 증거는 사진과 지문이었다. 남아있는 김정수와 김정범의 사진을 같이 놓고 비교해 보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생김새가 달랐다. 게다가 두 사람의 지문 역시 대조해 본 결과 다른 사람으로 판명되었다. 보훈처 관계자는 “일제강점기에 남아 있던 김정범 선생의 지문 원본과 해방 후 채취한 김정수의 지문을 대조해 봤으나 다른 사람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결국 국가보훈처는 사실 확인 결과 김정수의 독립운동 행적은 사실 무근이며, 진짜 독립운동가였던 김정범의 행적을 자신의 것으로 위조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김정수의 조부 김낙용과 부친 김관보, 백부 김병식 역시 독립운동 행적을 입증할 객관적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2018년 8월 27일, 국가보훈처는 정부 관보를 통해 김정수, 김낙용, 김관보, 김병식의 건국훈장 서훈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2] 앞서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 서훈이 취소된 김진성까지 합치면 총 5명이 취소된 것이다. 20년 전부터 김정수 등 가짜 독립운동가를 고발한 김세걸 씨는 "문제를 제기한 지 20여 년이 지나서야 서훈을 박탈했다"며 "어이없다"고 말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때늦은 서훈 취소 결정에 대해 "서훈을 받은 분을 단순 의혹제기로 공적을 재심의 하기는 곤란했다"며 "김정수 심사 당시 서훈의 근거가 되었던 가출옥서류가 확인되지 않아 서훈 취소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김정수의 인우보증서 필적감정과 각종 증빙자료를 통해 김정수가 가짜 독립유공자임을 밝혀 서훈을 취소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김정수와 그의 부인의 유해는 여전히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서훈 취소 후 서울현충원에 이장 조치 협조 요청을 하고 지난 3일 김정수 유족에게 이장 안내를 했다"고 밝혔다. 또 "보훈청에서 각 대상자별 수혜 내역을 확인 중에 있으며, 검토 후에 형사고발 등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건의 여파[편집 | 원본 편집]

김정수 일가 5명이 20여 년간 독립운동가 행세를 하며 3억원이 넘는 연금을 타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2018년 10월 16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러 의원들이 독립유공자 관리에 대한 질의를 쏟아냈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최근 가짜 독립유공자 일가를 찾아낸 사람이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며 "보훈처가 할 일을 방기하고 피해자가 스스로 밝힌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10년간 서훈이 취소된 사람이 39명에 이르고 이중 5명은 아직도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며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용진 더불어 민주당 의원은 "가짜 독립유공자로 드러난 '대전 김태원'(김태원 문서 참고)과 최근의 '가짜 김정수 일가'를 보면 브로커와 보훈처 내 내부 조력자의 합작품으로 보인다"며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 의원은 "특히 당장 문제가 드러난 사람에 대해서는 즉각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계획을 세워 전수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최근 가짜로 드러난 4명의 독립유공자가 받아 챙긴 보훈 연금만 4억 5000여만 원에 이르지만 소멸 시효가 지나 환수 가능한 돈은 9000만원만 불과하다"며 "보훈 행정을 제대로 하고 있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피우진 처장은 "보훈처 내에 독립유공자 부정등록 신고코너를 만들고 독립유공자 편찬 사업 과정에서 허위 등록유공자를 가려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1970년 이전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에 한해서는 단계적으로 공적을 재조사하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3]

김세걸 씨는 2018년 10월 9일 시사플러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가문(김정수 일가)은 한국에서도 정말 드문 범죄 가문이다. 3대에 걸쳐 다섯 사람이 다 가짜 독립 유공자로 등록돼 있다”며 “김정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1963년 건국훈장을 받았고, 1968년에는 김진성, 김정수, 김병식 세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공적을 이용해 유공자로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진성은 1995년 전 서훈이 취소됐지만, 나머지 4명은 2018년 8월 15일에야 문재인 대통령이 사인해 서훈이 취소됐다”며 “범죄도 보통 범죄가 아니다.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가짜 독립 유공자 가족의 행방을 1998년 찾았다. 은평구에 살고 있고 아파트에서 얼마나 떵떵거리면서 잘 살았겠나”라며 “묘에 ‘3대가 빛나라’라고 썼더라. 저희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사형까지 선고받고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울분을 참지 못한다”고 말했다.[4]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