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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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振聲(또는 金晋成). 이명은 김택기(金澤基), 왕운기(王雲起).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김진성은 1914년 4월 16일 황해도 곡산군 상도면 희엽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부친 김정일(金正一)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유하현 동창학교(東昌學校)를 졸업하였다. 이후 1932년 6월에 국민부(國民府)에 가입하여 제2중대 참사로 무송·안도·신빈·통화·집안 등지에서 활동했다.

1934년 음력 7월에 집안현 외차구에서 김창화(金昌化)·김병하(金炳河)·강성채(姜成彩)·정종준(鄭宗俊)·김승호(金承浩)·이봉영(李峯英) 등과 함께 일본 밀정인 김용환(金龍奐)을 처단하고 체포되었다. 김용환은 전직 위원군(渭原郡) 순사로서 집안현 유수림자 강구(江口)에서 국민부의 상황을 일경에 밀고하고 교민들이 군자금을 납부하지 못하도록 방해공작을 하던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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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6월 17일 경성 형사과에서 촬영된 사진.

1935년 7월 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살인 등 7개의 죄명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동년 9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8.15 광복 직후 출옥했다. 이후 1946년 초에 부모를 찾아 길림성 통화현으로 이동했고, 선양시에서 여생을 보내다 1961년 7월 31일에 사망했다.

사후[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김진성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는 이름만 같고 아무런 공적이 없는 엉뚱한 이를 독립유공자로 지정하고 건국훈장을 서훈하는 실책을 저질렀고, 급기야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한 뒤 유족에게 매년 연금까지 지불했다.

그러다 20여 년 후인 1995년 심양시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던 김진성의 장남 김세걸(金世杰) 씨가 한국에 와서 문제제기를 했고, 국가보훈처는 뒤늦게 문제를 깨닫고 '가짜 김진성'에게 주어졌던 건국훈장을 취소하고 '진짜 김진성'에게 서훈했으며, 가짜 김진성의 유해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고 진짜 김진성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이장시켰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자세한 내용은 김정수 일가 건국훈장 서훈 취소 사건 참조.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