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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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청
Seoul Yongsan-gu.svg
지역 정보
종류
구청장 성장현 (더불어민주당)
행정구역 16 행정동, 36 법정동
인구 245,245 명 (2018년 기준)
인구밀도 11,214 명/km2
면적 21.87 km2
기타 정보
상징 소나무 (나무)
장미 (꽃)
비둘기 (새)
웹사이트 용산구청

용산구(龍山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한강 위쪽 중간에 있는 자치구이다. 북동부에 남산, 응봉 등의 산지가 경계를 이루는 외에 대체로 낮은 구릉성 지형으로 되어 있다. 서울역에서 한강대교에 이르는 한강로가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한강로 주변은 상업지구와 업무지구를 형성한다. 명칭의 기원은 『증보문헌비고』와 『신증동국여지승람』 2가지에 나와 있지만 내용이 각기 다르다.[1]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고려까지 과주(果州, 지금의 과천시)에 속했던 곳으로 이후에 남경에 편입되어 한양부로 불리었다. 조선 초에는 한성부에 속했으며, 조선 말에는 용산방 지역이 되었다.

1896년 4월 17일 한성부 용산방으로 시작하여 1910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한성부경성부로 개칭되면서, 경기도에 편입되었다. 1911년 용산방이 용산면이 되었다.

1914년 고양군 용강면 여율리→영등포출장소 이속, 경성부 용산출장소(치소-신계동, 청엽정1~3정목, 원정1~4정목, 금정, 미생정, 경정, 대도정, 영정, 청수정, 산수정, 암근정, 도화정, 강기정, 삼판통, 한강통, 마포동, 이촌동), 용산면의 일부는 고양군 용강면으로 개편되었다.

지리[편집 | 원본 편집]

용산구는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근대 이후 경제 및 교통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남쪽으로 한강을, 북쪽으로 남산을 경계로 중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고, 동쪽과 남쪽은 용산동2가, 서쪽은 동자동, 갈월동과 접해 모두 6개 자치구와 접하고 있다. 한강을 잇는 대교들 중 6개의 한강대교경부선 철도가 용산을 지나고 있어 서울 도심을 잇는 관문이며 교통의 요충이라 할 수 있다. 용산구에는 효창공원,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가족공원, 전쟁기념관, 한강시민공원 등 도심공원이 많아 주민들이 쾌적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자연 휴식 공간이 많다. 또한 관내에 미 8군 기지를 비롯하여 많은 외국 공관저와 문화원, 이태원 관광특구 등이 있어 타지역에 비해 특히 외국인 거주자가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최근 용산구는 호남선KTX의 중앙 역사로서의 기능을 담당할 용산역과 첨단전자산업의 중심인 용산전자상가 등이 존재한다.[5]

행정구역[편집 | 원본 편집]

용산구의 행정구역은 16개 행정동으로 이루어졌으며, 면적은 21.87㎢이다. 용산구의 인구는 2011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112,617세대, 259,288명이다.[6]

행정구역도
행정동 한자 면적 (㎢) 세대 인구 (명)
후암동 厚岩洞 0.86 9,188 20,746
용산2가동 龍山2街洞 1.96 6,179 14,192
남영동 南營洞 1.19 5,148 8,344
청파동 靑坡洞 0.91 11,748 24,667
원효로제1동 元曉路第1洞 0.59 5,674 12,814
원효로제2동 元曉路第2洞 0.71 6,093 16,040
효창동 孝昌洞 0.44 4,532 11,536
용문동 龍門洞 0.28 5,232 13,479
한강로동 漢江路洞 2.90 7,903 16,549
이촌제1동 二村第1洞 2.86 9,997 28,617
이촌제2동 二村第2洞 1.22 4,381 10,537
이태원제1동 梨泰院第1洞 0.57 4,503 10,382
이태원제2동 梨泰院第2洞 0.86 5,428 11,826
한남동 漢南洞 3.01 12,296 26,248
서빙고동 西氷庫洞 2.80 5,608 14,574
보광동 普光洞 0.71 8,707 18,737
용산구 龍山區 21.87 112,617 259,288

명소[편집 | 원본 편집]

용산전자상가
국립중앙박물관
백범김구기념관
엔서울타워
예전엔 남산에 있다고 하여 남산타워로 불리었으며, 전파 송출용 탑이나 전망대, 식당 등도 있다. 남산 공원 정상 부근에 위치한 관광 및 전파 송출용 탑이다. 1969년에 착공하여 1975년 7월 30일 완공되었다. 높이는 236.7m, 해발 479.7m이다. 전망대에서 서울 시내 전역을 내려다 볼 수 있으며, 맑은 날씨에 찾는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다. 탑이 세워진 곳은 원래 조선신궁이 있었던 자리로, 철거하면서 공터로 있다가 안전기획부 청사 등이 세워지면서 같이 세워진 것이다.
용산전자상가
용산전자상가는 전기/전자제품 상가 밀집구역이다. 신용산역과 용산전자상가 단지를 잇는 신용산 지하보도에는, 서울시 도시갤러리추진단 주관으로 추계예술대학교 정원철 교수가 기획·제작한 알루미늄 판화 작품 2,000여 개가 붙어 있다. 길이 50㎝ 삼각기둥 모양의 알루미늄판에는 1980~90년대 용산전자상가 전성기 시절 인기를 끌던 전자부품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공공디자인 작품이 된 이곳의 이름은 "S-peed back! 그곳"으로 지어졌다.[7]
전쟁기념관
한국의 전쟁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용산구 이태원로 옛 육군본부 자리에 1994년 6월 10일 세워진 박물관이다.
지하 2층, 지상 4층 건물로, 3만 5천여 평의 부지위에 2만 3천 평 규모의 전시관을 갖추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전쟁사 종합박물관인 만큼 다양한 유물과 정보, 볼거리가 있으며, 전시실에 있는 전시자료를 합하면 모두 9,000여점이 된다. 전쟁기념관은 옥내전시와 옥외전시로 나뉜다. 옥내전시실은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 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방산장비실, 대형장비실로 총 7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있으며, 전시실에 따른 다양한 벽화부조, 각 전투의 기록화, 모형, 기록물, 각종 무기장비, 영상 등을 관람할 수 있어 전쟁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호국선열들의 업적을 알 수 있다. 그 중 대형장비실은 옥내와 옥외전시실에 나누어 쓰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민국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에 위치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국립박물관이다. 본관은 동관과 서관으로 되어 있으며, 지하 1층, 지상 6층으로, 3개 층으로 나누어 전시된다. 길이 404m, 최고 높이 43.08m의 건물이다. 어린이 박물관과 야외 전시장이 별도로 갖추어져 있다. 1월 1일과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2008년 5월 1일부터 상설전시관, 어린이박물관의 관람료는 무료로 바뀌었다. 극장 ‘용’에서는 여러 가지 공연을 한다.
이태원
이태원은 용산구 보광로에 있으며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거리로 유명하다. 주로 해밀턴호텔 주변을 가리키며, 이태원동이라는 법정동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이전에는 일본군의 기지가 있었지만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들의 주요 위락지대로 번창하여 이 인근에 미8군 기지가 위치해 있다. 이후 외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관광 지대로 번창하여 1997년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이슬람교 성원인 서울중앙성원도 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효창공원
원래 5살의 어린 나이에 죽은 정조의 첫째 아들 문효세자와 몇달 후 죽은 그의 어머니 의빈 성씨의 무덤으로 효창원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불순한 의도로 두 무덤은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 당하고, 이름도 효창공원이 되었다. 현재는 김구의 묘소를 비롯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이동녕, 군사부장 조성환, 비서부장 차이석의 묘소와, 윤봉길·이봉창·백정기의 묘소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묘지가 있다.
용산가족공원
1992년에 국립중앙박물관 옆에 개원했으며 휴식공간이 있다.

교육 기관[편집 | 원본 편집]

숙명여자대학교
  
  
  
  • 평생교육
  

교통[편집 | 원본 편집]

이 지역에는 1900년 건립된 한강의 첫 교량, 한강철교1917년 건립된 한강의 첫 도로 교량, 한강대교가 존재한다.

철도[편집 | 원본 편집]

한강로(용산역 입구 부근)

서울역용산역에서 KTX, 새마을호, 무궁화호를 탈 수 있다. 이전에는 통근열차도 탈 수 있었으나 운행이 중지되었다. 경상도 지역으로 가려면 서울역으로, 전라도 지역으로 가려면 용산역으로 가야 한다. 이전에는 용산역에서 강원도로 가는 열차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ITX-청춘을 이용해서 강원도 지역으로도 갈 수 있게 되었다. (강원도 영동 지방으로 가려면 청량리역에서 환승해야 한다.)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자매 결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증보문헌비고』에는 '용이 나타났고 해서 용산(龍山)이라 했다'라고 되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양화나루 동쪽 언덕의 산형이 용이 있는 형국이라 생긴 이름'이라고 되어 있다.
  2. 조선총독부령 제163호(1943년 6월 9일 공포) 참조.
  3. 조선총독부령 제350호(1944.10.23 공포)
  4. 구의 증설 및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 (제정 1975년 9월 23일 대통령령 제7816호)
  5. 위치 및 면적, 2013년 6월 12일 확인
  6. 《제26회 용산통계연보 2012》. 용산구청. 2012. 43쪽, 54쪽.
  7. 최선욱 기자. “ [도시는 미술관] ⑩ 굴다리에 새긴 ‘용산 키드의 추억’”, 2008년 11월 20일 작성. 2009년 7월 4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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