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C 석간

TBC 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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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배급사 동양방송
출연 길종섭기자, 이영혜 아나운서 (최종)
장르 시사보도
나라 Flag of South Korea.svg 대한민국
언어 한국어
방영일 1972년 4월 ~ 1980년 11월 30일
방영시각 월~금 오후 9시

암울했던 독재정권 시기에 그나마 자유분방했던 뉴스 프로그램.[1]

1 개요[편집]

TBC가 1972년 4월 8일부터 1980년 11월 30일까지 16년 6개월 하고도 22일 동안 방송하고, 신군부언론통폐합에 의해 사라진 뉴스 프로그램.

평시에는 생방송으로 방송되었지만, 마지막 특집 고별방송에는 신군부가 녹화테잎을 사전 검열하기 위하여 녹화로 방영되었다. 요즘은 별다른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서 이 문서도 거의 1980년 11월 30일 마지막방송에 의존해서 작성되었다.[2]

2 방송방식[편집]

정통 이브닝 뉴스 스타일이다. 보통은 생방송으로 진행되나, 1980년 11월 30일에는 녹화방송으로 진행되었다. 이것또한 신군부가(...) 당연히 녹화테잎을 사전검사하기 위해서였다고.

방송 포맷은 오프닝 -> 인사 -> 광고 리스트 -> 광고 -> 본방송으로 추정된다.

기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취재해온 "르포"르뽀도 방영하였으며,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인 시도로 시청자 만화(!)를 방영하기도 하였다. # 여담으로 TBC가 방송한 르포 중에는 상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상당히 고퀄이 많았다.

3 역사[편집]

1972년 4월에 첫방송을 TBC 夕刊으로 시작하였고, 1976년 8월에 제목을 TBC 리포트로 제목을 바꾸었으나, 1978년 6월 원래의 타이틀로 환원[3]하였다. 이는 정부의 한글 사용 정책을 따른 것이었다고.

3.1 폐지[편집]

1972년 4월 첫 걸음마를 시작해서 오늘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TBC 석간이 있기까지에는 TBC 가족 여러분의 따뜻하고 적극적인 성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비록 오늘 TBC 가족 여러분에게 떠난다는 고별인사를 드리지만은, 헤어지고 끝난다는 것은 곧 다시 만나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내일부터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가구로서 일해나가는 저희에게도 변치 마시고, 지금까지 보내주신 그 많은 성원, 또 많은 관심을 보내주실 것을 여러분에게 끝으로 당부하면서 TBC 고별석간을 전해드리겠읍니다.

-길종섭 앵커, 1980년 11월 30일 마지막 방송에서.

1980년 11월 30일, 신군부에 의해 동양방송 자체가 없어지며 그 9년의 역사를 마무리하게 된다.

신군부가 TBC를 없앨 때에 내건 명분명분이랄 것도 없긴 하다만..이 "80년대의 새 변혁기를 맞아 한국방송협회의 결의로"였다. 물론 80년대의 변혁기라는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허나, 80년대의 변혁기를 발전의 기회(...)로 삼던가 하면 절대 멀쩡한 언론을 폐지시킬 이유가 없다.독재를 발전시킬 기회로 삼으면? 그럼에도 통폐합을 강행한 이유는 TBC가 전두환에게 불리한 언론이라 그런 듯. 왜 불리한지는 하단의 "논조" 문단 참고.

4 논조[편집]

당시 강력하던 언론통제에도 대체적으로 반정부성향을 띠었다.[4] 신군부가 언론통폐합을 통해 TBCKBS 2TV로 강제 편입시킨 것도 이것 때문이라고. 공정한 보도가 TBC의 목표였다고 대놓고 방송할 정도. 말만 그랬을 수도 있지만.[5]


TBC가 비교적 검열에서 자유로웠음을 보여주는 자료.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에서 단독 취재한 영상으로, 신군부의 보도 검열 탓에 보도할 수 없어, 30여년 동안 미공개 영상으로 남아있었다. TBC가 검열에서 자유로웠던 탓에 용자라서 취재할 수 있었으나, TBC가 전두환에 의해 읍읍당하면서 보도할 수 없게 되었다.

5 후신[편집]

JTBC를 동양방송의 후신으로 본다면 JTBC 뉴스룸, KBS2를 후신으로 본다면 KBS 8 뉴스타임이다. 전자는 정신적 정당성, 후자는 물적/인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체적인 대세를 보면 JTBC 뉴스룸이 TBC 석간의 후신으로 평가받는 것으로 보인다. 둘 다 정부 비판적인 논조를 보면 비슷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후신으로 인정할 만한 부분이 많은 편.

6 타이틀 그래픽[편집]


1972년 ~ 1980년까지의 타이틀 그래픽으로 추정되는 자료. 각 버전의 사용 시기는 불명이다. 초반의 夕刊이 왠지 일본 느낌 난다.

7 역대 진행자[편집]

아래 정보는 모두 마지막 방송에서 보도한 자료이다.
마지막방송 이라 표기된 것은 1980년 11월 30일이다.

인물 특이사항 역임 시기
남성앵커
봉두완 TBC 논평주간 1972.4 ~ 마지막방송
홍용기 79년 미국서 사망 1972.4 ~ 1972.12
조용중 퇴사후 문화/경향전무 역임 1972~1974
양흥모 성균관대학교 교수 1972.4 ~ 1972.7
박종세 TBC 방송주간 1972.10 ~ 마지막방송
원종관 TBC 아나운서, 부국장 1972.10 ~ 1974
박노설 TBC 심의실장 1972.10 ~ 1974
남정휴 제일기획이사 1974.4~1974.7
노계원 TBC 경제부장 1974.10~마지막방송
임응식 TBC 논평위원 1974.1 ~ 1975
구박 TBC 정치부장 1975.1 ~ 마지막방송
이의일 1977년 퇴사 1976.8 ~ 1976.9
김성호 TBC 파리특파원 1978.6 ~ 1979.10
성대석 TBC 편제부차장 1978.7 ~ 마지막방송
이희준 TBC 사회부장 1980.10 ~ 마지막방송
길종섭 TBC 정치부 기자 1980.10 ~마지막방송
여성앵커
이정애 1980.7 퇴사 1978.6 ~ 1980.7
박초아 TBC 아나운서 1978.6 ~ 마지막방송
이영혜 TBC 아나운서 1980.7 ~ 마지막방송
최희선 TBC 아나운서 1980.7 ~ 현재

8 같이 보기[편집]

9 각주

  1. TBC가 전국단위 방송으로 변모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나마 정부비판적이던 논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2. 영상은 문서 상단 참조.
  3. 다만 "TBC 석간"으로 한글표기를 이용했다.
  4. 물론 1990년대~2000년대 MBC 뉴스데스크보다는 어쩔 수 없이 친정부적인 논조이긴 했다.
  5. 물론 찬양성 보도를 TBC에서 내보내기는 했다. 예시로 1980년에 방송된 <내가 본 전두환 대통령> 이라던가... 물론 다른 방송사들이 충공깽 수준의 방송을 내보낸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