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페미니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과 성적 차이 페미니즘[편집 | 원본 편집]

포스트모던 페미니즘과 성적 차이 페미니즘은 다른 분파지만 서로 논쟁하며 특색을 확립했기에 같은 문서에서 설명한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편집 | 원본 편집]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남성중심지배구조를 포함한 모든 억압적 지배구조로부터, 여성뿐 아니라 성소수자남성까지 포함하는 인간해방을 목표로 한다.

또 여성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여성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라 비판하며 여성에 대한 모든 규정을 지양한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들은 다른 페미니즘의 여성에 대한 정체성 규정에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여성은 동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선진국 여성과 후진국 여성, 백인 여성과 유색인종 여성, 성다수자 여성과 성소수자 여성의 삶, 경험, 이해관계, 요구 등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무시하고 여성이라는 동일 집단으로 묶는 것은 소수집단 여성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적 차이 페미니즘[편집 | 원본 편집]

성적 차이 페미니즘은 뤼스 이리가레가 대표적 사상가이다. 성차 페미니즘이라고도 한다. 이리가레와 들뢰즈의 논쟁이 유명하다.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에 반발하며 이리가레는 성차의 철학을 주창했다. 성적 차이 페미니즘은 여성 스스로에 의한 새로운 여성성 발견을 목표로 한다.

이리가레는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을 비판했다. '차이 페미니즘'은 본래 문화적 페미니즘의 다른 이름이었다. 문화적 페미니즘은 그동안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여성성을 재해석하고 의의를 부여하는 분파이다. 그런데 이리가레의 성적 차이 페미니즘은 이전의 문화적 페미니즘이 연구한 여성성은 사회가 만들어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여성 스스로에 의한 새로운 여성성 발견을 원하는 것이다. 성적 차이 페미니즘은 문화적 페미니즘에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결합한 뒤 들뢰즈의 차이 철학과 싸우며 만들어진 분파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가장 유명한 알튀세르주의자 윤소영에 따르면 뤼스 이리가레의 성적 차이 페미니즘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뛰어넘었다. 한국 학생운동단체 전국학생행진이 성적 차이 페미니즘 노선이다. 노동운동단체 사회진보연대도 이 노선이다. 한국에서 유명한 페미니즘 분파 중 가장 나중에 나온 분파라 다른 분파의 이론적 진보를 모두 흡수했기도 하고 해서 한국에서 이 분파에 대한 비판은 찾기 힘들다. 최신이론이라 많은 노동운동 및 여성운동 단체, 그리고 학계에서 선호하는 이론이다. 다만 문제는 제대로 공부하려면 철학적 지식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실증적 자료와 경제적 지표 위주로 공부해야 하는 것과 대조된다.

두 이론의 철학적 배경[편집 | 원본 편집]

'차이' 개념을 중요하게 다룬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질 들뢰즈가 있다.

현대철학에서 '차이'란 '동일성'의 반대말로 쓰인다. 예컨대, 인간 개개인 중 어떤 사람들은 대체적인 공통점을 기준으로 묶여 '남성'이라는 범주로 호칭되지만, 실제로는 저마다 다른 외모, 성격, 신체적 특징, 자아 정체성 등을 가지며, 심지어는 성적 정체성과 지향, 실천 면에서도 저마다 차이점들이 있는 무수한 개별자들이다. 이렇게 어떤 대상들을 집합으로 묶어 내부적으로는 공통점을 강조하고 외부와는 차별점을 부각해서 개념화하는 것을 '동일성'이라 하며, 그와 대조적으로 동일성 속의 개개별 인자들이 제각기 개별성, 고유성을 갖는 것을 '차이'라 한다.

들뢰즈는 동일성보다 차이(Différence)를 더 근본적인 존재의 속성으로 보았다. 세계 속의 존재자들은 근본적으로는 어느 것도 다른 것과 완전히 동일하지 않고 차이를 갖는데, 기존의 지식 체계는 그 미세한 차이들을 묵살하고 몇몇 범주들로 묶어서 동일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만 세계를 이해해왔다. 그리고 이같은 동일성의 강요는 개개별 존재자들에게 있어서 억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차이의 철학', '차이의 정치'는 동일성을 해체하고 차이를 해방시키기 위한 운동을 대안으로 제시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여성'이라고 했을 때, 그들을 '여성'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어서 인식하면 "여성은 이래야 한다", "여성은 원래 이렇다" 식의,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들을 무시하는 관습과 규범들 속에 개인이 억압받게 된다. 차이의 정치는, 궁극적으로는 어떤 개인 A가 '여성인 A', '한국인인 A', '직장인 A', '아무개의 딸 A'로서가 아닌, 그저 'A 그 자체인 A'로서 드러나게 되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차이의 정치가, 공통의 문제 의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모여 공동으로 노력하는 것을 부정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이전까지 잊혀지고, 배제되고, 비주류의 영역에 남겨져 있었던 정체성들이 양지로 나와 모습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는 것을 통해, 기존에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주류의 것들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그럼으로써 이 세계가 동일성이 아닌 차이로 이루어져 있음이 의식되게 된다. 따라서 차이의 정치에서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모여 각각의 운동 부문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