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팔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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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
건축물 정보
주소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2가 138번지
소유 국유
문화재 정보
종목 보물 402호
지정일 1964년 9월 3일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이 문은 수원 화성의 남문에 해당하는 문으로, 이름은 서쪽에 있는 팔달산에서 따 왔다. 사실 팔달이라는 의미는 사통팔달의 약자로, 모든 곳으로 통하라는 염원이 함께 들어가 있는 뜻이기도 하다. 문루는 앞면 5칸·옆면 2칸의 2층 건물이며,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문의 바깥쪽에는 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해 반원 모양으로 옹성을 쌓았다. 이 옹성은 1975년 복원공사 때 고증하여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참고로 팔달문은 북문인 장안문과 거의 완전히 동일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팔달문과 장안문을 연결하는 도로는 수원 화성이 설계될 당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되고 있는 도로이기도 하다.(그만큼 도시설계가 잘 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성벽 복원문제[편집 | 원본 편집]

수원 화성의 구간 중 팔달문 양편의 성곽 구간은 복원이 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이 구간에 해당하는 시설물로는 남서적대, 남동적대의 두 적대와 남공심돈, 남암문 등의 시설이 있다. 소실된 성벽의 해당 구간이 어딘지도 뻔히 알고 있고, 원래 있던 시설물의 모양도 화성성역의궤에 고스란히 다 남아 있어서 하려고 한다면 못할 것이 없지만, 문제는 이 팔달문 바로 동편은 팔달시장에 해당하는 시가지이며, 성벽의 자리가 하필이면 시장의 통로가 되는 길 딱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시장을 통째로 옮길 것이 아니라면 사실상 복원 자체는 불가능한 상황인 것. 거기다 팔달문 양편에 있던 적대의 위치는 정확하게 팔달문 로터리의 도로 자리에 해당하는데 여긴 또 수원시 버스들이 몰려오는 장소 중 한 곳이다. 한마디로 이걸 복원하려면 돈이 무지막지하게 깨져나가는데다 주변 도로 교통을 통째로 마비시키는 것을 각오해야 복원아 가능한 상황이다. 그나마 도로 문제는 장안문처럼 성벽을 육교 형태로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결국 옆의 시가지와 시장을 밀어내야 한다는 점은 동일한지라... 결국 인근 시가지를 통째로 재개발하지 않는 한, 해당 구간의 복원 자체는 요원한 상황이다.

팔달문동종[편집 | 원본 편집]

팔달문동종
문화재 정보
종목 경기도 유형문화재
구성 1구
위치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창룡대로 265 (이의동, 수원박물관)
지정일 1976년 8월 27일
소유 국유
관리 수원시

고려 문종34년(1080년) 개성에서 주조된 동종으로 수원부 만의사에서 사용되다가 조선 숙종 13년(1687년) 3월 만의사 대종으로 새로 주조했다는 명문이 종의 몸통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정조가 화성을 축성하고 난 뒤 화성행궁 앞 사거리에 종각을 설치하고[1] 성문을 여닫을 시각을 알려주는 파루용의 기능으로 전환되어 사용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제에 의해 정오 및 화재경보용 종으로 전락하여 팔달문 누각 내부로 강제이전되면서 팔달문동종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동종은 높이 123cm, 구경 75cm의 꽤 큰 종으로 2008년 팔달문과 종의 보호를 위해 종을 수원박물관으로 이전하여 보존, 전시하고 있다.

각주

  1. 현 종로 사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