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문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수원 화성의 북쪽 성문이자 정문에 해당하는 문이다. 보통 성의 남문을 정문으로 삼지만, 화성은 특이하게도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에 해당하는데 이는 정조의 능행 당시 왕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문이라는 이유로 북문임에도 불구하고 정문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축성 시기는 화성과 동일한 1794년이며, 이름의 유래는 서한을 비롯한 역대 중국 왕조의 수도의 이름인 장안(長安)을 붙여서 장안과 같이 번성한 도시가 되라는 정조의 바램이 들어간 것이라 한다.

구조 및 특성[편집 | 원본 편집]

아치형의 홍예문 위에 2층의 누각을 두르고, 바깥쪽에는 닥은 옹성을 둘러놓은 형태로 되어 있다. 옹성을 제외한 외관 자체는 숭례문과 비슷하지만 사실 장안문은 숭례문보다도 더 큰 문으로, 대한민국의 성문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성문 자체는 화강암을 사용하였지만, 옹성의 경우는 벽돌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벽돌로 쌓은 부분의 경우 포격을 당했을 경우 성이 한번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피격 부위만 부서지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성벽의 방어력을 높이고자 애쓴 결과물 중 하나이다. 1978년 장안문을 복원할 당시에는 장안문 로터리의 형태로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섬과 같은 모양이 되면서 접근이 불가능하였으나 2007년 복원공사를 통하여서 도보로 접근이 가능한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장안문의 좌우편에는 일반 치성(雉城)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적대 두개[1]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성문의 방어력을 배가시키고 측면에서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진[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동북적대와 서북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