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립

Bellamism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7월 25일 (수) 17:35 판

鄭汝立 (1546 ~1589)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인백(仁伯), 호는 죽도(竹島)이며, 본관은 동래이다.

생애

낙향 이전

전라북도 전주부에서 정희증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그를 잉태할 때와 출산하는 날 밤의 꿈에 정중부가 나타났기에, 정희증은 아들이 태어났음에도 불길하게 여기고 기뻐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어린 시절 새끼 까치를 토막내 죽이고, 그 짓을 아버지에게 여종이 일러바치자, 그날 밤에 여종의 부모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여종을 찔러죽였다고 한다. 이후 그 부모가 돌아와 울부짖고, 마을 사람들이 그 참혹한 현장을 보러 모여든 가운데, 어린 정여립이 나서서 태연하게 자신이 죽인 것임을 밝혔다. 이에 어떤 사람들은 정여립을 보고 '악한 장군이 태어났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만 이러한 기록들은 정여립의 이미지를 폄하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장성해서는 이이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이는 정여립의 재능을 칭찬하며 선조에게 천거하면서도, 남을 업신여기는 성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정여립은 스승 이이를 따라 서인에 속해 있었고, "공자가 다 익은 감이라면 율곡은 반쯤 익은 감이니, 언젠가는 다 익을 수 있을 것이다"라며 이이를 높이 받들었다. 그러나 이이가 죽은 후에는 동인으로 전향하여 이이를 포함한 서인 인사들을 비난했다. 이는 스승을 존숭하던 당시의 풍토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였기에 많은 지탄을 받았고, 결국 정여립은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대동계 조직

비록 벼슬에선 물러났지만, 이발 등 동인 계열의 인사들과 인맥이 두터웠고, 정여립 본인의 학식이나 수완도 뛰어났기 때문에, 정여립은 곧 전라도 지역의 명사가 되었다. 정여립은 사람들을 모아 대동계(大同契)라는 조직을 만들고, 매월 15일 모여 활쏘기를 겨루고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즐겼다. 그의 밑에서 배우는 문인들도 활쏘기를 배우면서, "동방의 선유(先儒)들은 모두 예학만 알 뿐이었고, 사예(射藝)를 가르치는 것은 우리 선생님뿐이다"라고 하였다.

1587년, 왜구가 전라도 지역에 쳐들어오자, 전주 부윤 남언경은 정여립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여립은 혼쾌히 요청을 받아들여, 대동계에 소속된 무사들을 중심으로 군을 조직해 왜구를 물리쳤다.

정여립의 난

1589년, 황해도 관찰사 한준, 재령 군수 박충간, 안악 군수 이축, 신천 군수 한응인 등이 연명으로 상소를 올려, 정여립이 한강이 얼 때 한양으로 진격해 모반하고자 한다는 고변을 하였다. 선조가 금부도사를 보내 정여립을 체포하도록 하자, 정여립은 아들 정옥남과 함께 죽도로 도망갔으나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자결하였다.

그러나 이미 반란이 들통난 상황에서 자신의 근거지인 죽도로 달아난 점이나, 체포 전에 자결해버린 점 등,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 사건의 실체가 명확치 않다. 모반 자체가 거짓이고 동인을 견제한 선조와 서인 세력의 음모일 뿐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정여립의 난은 기축옥사로 이어졌고,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동인의 세력이 꺾이고 남인북인으로 갈라지는 계기가 된다.

사상

사마온공의 《통감》은 위(魏)로 기년(紀年)을 삼았으니 이것이 직필인데 주자가 그것을 그르게 여겼다. 대현(大賢)의 소견이 각기 이렇게 다르니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바이다.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정해진 임금이 있겠는가.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은 서로 전수하였으니 성인이 아닌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것은 왕촉(王蠋)이 한때 죽음에 임하여 한 말이지 성현의 통론은 아니다. 유하혜(柳下惠)는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는가.’ 하였고, 맹자제선왕양혜왕에게 왕도(王道)를 행하도록 권하였는데, 유하혜와 맹자는 성현이 아닌가.[1]

반역자로 죽으면서 학통이 끊어져 그의 사상을 세밀히 알기는 어렵지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언행을 보면 당시로서는 이단으로 여겨질 만큼 혁명적이고 파격적인 사상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중 매체에서

만화 포천에서의 정여립

유승진 작가의 웹툰 포천오성X한음에서는 전통적인 서인들의 시각에 가깝게 야심이 크고 잔인한 인물로 묘사된다. 아래에는 두 만화의 행적이 종합되어 서술되어있다.

정도령이 자객을 시켜 이이를 암살하려 할 때 이를 가로막으면서 등장했다. 정도령은 정여립의 관상을 심상찮게 여기고 자객에게 사죄하고 물러나도록 했는데, 이 때 정여립은 '상하반상의 구분을 새겨주겠다'면서 자객의 얼굴을 칼로 그어버리는 잔인한 면모를 보인다.

오성X한음에서는 스승인 이이로부터 관심을 받고 공을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음모를 꾸몄으나, 오성에 의해 그 사실이 밝혀진 후 이이와 거리가 생겼다. 그 뒤 이이의 병세가 심해지자 병문안을 갔으나 만나보지 못하고, 대신 정도령을 통해 얻은 담비 갖옷을 바쳤다. 그러나 사실 그 갖옷은 정도령이 이이를 죽이기 위해 역병 환자들에게 입혀가며 오염시킨 옷이었고, 이이는 곧 사망하고 만다. 정여립은 스승의 임종을 지켜본 오성을 향한 질투심, 자신을 멀리한 스승을 향한 야속함, 그리고 정도령의 충동질 등이 더해져 폭주, 대동계를 조직하며 반란을 준비한다. 정도령은 정여립이 자신의 장기말이라고 말하고, 정여립은 자신이 조선의 왕이 될 자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서로가 서로를 이용해먹는 관계인 듯. 이후 변숭복이 정도령을 칼로 찌르고 정여립에게 달려와 정도령의 실체를 이야기하지만, 정여립은 "나 정여립이야말로 정도령이다."라고 말하며 무시하고 반란 준비를 계속한다.

그러나 선조는 오래 전부터 정여립의 역심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왕권 강화에 이용할 기회를 엿보기 위해 방관하고 있던 것뿐이었다. 역모 고변이 올라오자마자 관군이 재빠르게 움직여 대동계는 허무하게 무너졌고, 정여립은 "여기까지인가보다. 대동의 꿈."이란 말을 남기고 자결한다.

위엄 넘치는 첫등장에 비해 퇴장이 몹시 초라한데,[2] 실제로 허무했던 진압과정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각주

  1. 선조수정실록 선조 22년 10월 1일.
  2. 포천에선 모반을 고변하는 장계가 조정에 올라오고 정여립이 자결하기까지의 분량이 아홉 컷에 불과하며, 오성X한음에서는 더욱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