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립

정여립(鄭汝立, 1546년~1589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는 인백(仁伯), 는 죽도(竹島)이며, 본관은 동래이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낙향 이전[편집 | 원본 편집]

전라북도 전주부에서 정희증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그를 잉태할 때와 출산하는 날 밤의 꿈에 정중부가 나타났기에, 정희증은 아들이 태어났음에도 불길하게 여기고 기뻐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어린 시절 새끼 까치를 토막내 죽이고, 그 짓을 아버지에게 여종이 일러바치자, 그날 밤에 여종의 부모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여종을 찔러죽였다고 한다. 이후 그 부모가 돌아와 울부짖고, 마을 사람들이 그 참혹한 현장을 보러 모여든 가운데, 어린 정여립이 나서서 태연하게 자신이 죽인 것임을 밝혔다. 이에 어떤 사람들은 정여립을 보고 '악한 장군이 태어났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만 이러한 기록들은 정여립의 이미지를 폄하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장성해서는 이이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이는 정여립의 재능을 칭찬하며 선조에게 천거하면서도, 남을 업신여기는 성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정여립은 스승 이이를 따라 서인에 속해 있었고, "공자가 다 익은 감이라면 율곡은 반쯤 익은 감이니, 언젠가는 다 익을 수 있을 것이다"라며 이이를 높이 받들었다. 그러나 이이가 죽은 후에는 동인으로 전향하여 이이를 포함한 서인 인사들을 비난했다. 이는 스승을 존숭하던 당시의 풍토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였기에 많은 지탄을 받았고, 결국 정여립은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대동계 조직[편집 | 원본 편집]

비록 벼슬에선 물러났지만, 이발 등 동인 계열의 인사들과 인맥이 두터웠고, 정여립 본인의 학식이나 수완도 뛰어났기 때문에, 정여립은 곧 전라도 지역의 명사가 되었다. 정여립은 사람들을 모아 대동계(大同契)라는 조직을 만들고, 매월 15일 모여 활쏘기를 겨루고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즐겼다. 그의 밑에서 배우는 문인들도 활쏘기를 배우면서, "동방의 선유(先儒)들은 모두 예학만 알 뿐이었고, 사예(射藝)를 가르치는 것은 우리 선생님뿐이다"라고 하였다.

1587년, 왜구가 전라도 지역에 쳐들어오자, 전주 부윤 남언경은 정여립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여립은 혼쾌히 요청을 받아들여, 대동계에 소속된 무사들을 중심으로 군을 조직해 왜구를 물리쳤다.

정여립의 난[편집 | 원본 편집]

1589년, 황해도 관찰사 한준, 재령 군수 박충간, 안악 군수 이축, 신천 군수 한응인 등이 연명으로 상소를 올려, 정여립이 한강이 얼 때 한양으로 진격해 모반하고자 한다는 고변을 하였다. 선조가 금부도사를 보내 정여립을 체포하도록 하자, 정여립은 아들 정옥남과 함께 죽도로 도망갔으나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자결하였다.

그러나 이미 반란이 들통난 상황에서 자신의 근거지인 죽도로 달아난 점이나, 체포 전에 자결해버린 점 등,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 사건의 실체가 명확치 않다. 모반 자체가 거짓이고 동인을 견제한 선조와 서인 세력의 음모일 뿐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정여립의 난은 기축옥사로 이어졌고,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동인의 세력이 꺾이고 남인북인으로 갈라지는 계기가 된다.

사상[편집 | 원본 편집]

사마온공의 《통감》은 위(魏)로 기년(紀年)을 삼았으니 이것이 직필인데 주자가 그것을 그르게 여겼다. 대현(大賢)의 소견이 각기 이렇게 다르니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바이다.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정해진 임금이 있겠는가.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은 서로 전수하였으니 성인이 아닌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것은 왕촉(王蠋)이 한때 죽음에 임하여 한 말이지 성현의 통론은 아니다. 유하혜(柳下惠)는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는가.’ 하였고, 맹자제선왕양혜왕에게 왕도(王道)를 행하도록 권하였는데, 유하혜와 맹자는 성현이 아닌가.[1]

반역자로 죽으면서 학통이 끊어져 그의 사상을 세밀히 알기는 어렵지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언행을 보면 당시로서는 이단으로 여겨질 만큼 혁명적이고 파격적인 사상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중문화 속의 정여립[편집 | 원본 편집]

  • 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배우 안내상이 정여립 역을 맡았다.
  • 사극 《왕의 얼굴》에서는 최철호가 정여립 역을 맡았다.
  • 사극 《징비록》의 초반부에 기축옥사가 비중있게 다루어졌다. 그러나 정여립 본인은 거의 비중이 없다.
  • 유승진의 웹툰 《포천》과 《오성X한음》에서는 전통적인 서인들의 시각에 가깝게 야심이 크고 잔인한 인물로 묘사된다.

외부 참조[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