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공주

정의공주
貞懿公主
인물 정보
출생 1415년 9월 27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의동
사망 1477년 3월 5일 (향년 63세)
국적 조선
직업 왕족(공주)
종교 유교, 불교
배우자 안맹담
가족 아버지 세종, 어머니 소헌왕후, 언니 정소공주, 오빠 문종, 남동생 수양대군, 안평대군, 임영대군(臨瀛大君), 금성대군(錦城大君), 평원대군(平原大君), 영응대군(永膺大君)
장남 안여달, 장녀, 차남 안온천, 3남 안상계, 4남 안빈세, 차녀

조선 제4대 국왕 세종과 정실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의 8남 2녀 중 셋째(차녀). 동복언니 정소공주(貞昭公主)는 12세에 요절하여, 사실상 오랫동안 세종의 유일한 적녀(嫡女)였다.

재능[편집 | 원본 편집]

정의공주는 총명하고 지혜로워 아버지 세종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그녀는 수학천문학에 재능이 있었다. 또한 세종이 한글을 창제할 때, 오빠와 남동생들과 함께 많이 도왔다고도 전해진다. 죽산안씨대동보(竹山安氏大同譜)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世宗憫方言不能以文字相通、始製訓民正音、而變音吐着、猶未畢究、使諸大君解之、皆未能、遂下于公主、公主卽解究以進、世宗大加稱賞、特賜奴婢數百口。세종우리말한자가 서로 통하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을 다 끝내지 못하여서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였으나 모두 풀지 못하였다. 드디어 (정의)공주에게 내려 보내자, 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상으로 특별히 노비 수백을 하사하였다.
— 《죽산안씨대동보》

결혼과 자손[편집 | 원본 편집]

정의공주는 죽산 안씨 가문의 아들인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과 결혼했다. 부부의 금슬은 매우 좋았으며, 4남 2녀를 낳았다.

  • 장남 안여달(安如獺): 광주 안씨(廣州安氏) 안기(安耆)의 딸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낳았다. 안여달의 아들은 안원경(安元卿)이고, 딸은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의 외고조모이다.
  • 장녀: 정인지(鄭麟趾)의 장남인 정광조(鄭光祖)와 결혼했다.
  • 차남 안온천(安溫泉): 정의공주의 큰아버지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증손녀와 결혼하여 1남 2녀를 낳았다. 안온천의 아들 안방언(安邦彦)은 성종의 5남인 회산군(檜山君)의 장인이다. 큰딸은 정인지의 막내인 정상조(鄭尙祖)와 결혼하여 아들 정세호(鄭世虎)를 낳았고, 정세호의 딸은 중종과 후궁 창빈 안씨(昌嬪安氏)의 차남인 덕흥군(德興君)과 결혼하여 선조를 낳았다.
  • 3남 안상계(安桑鷄): 순흥 안씨(順興安氏) 안훈(安訓)의 딸과 결혼했다가 사별하고, 언양 김씨(彦陽金氏) 김경장(金慶長)의 딸과 재혼했다. 장남은 안방열(安邦烈)이고, 차남 안방형(安邦炯)은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서손자인 계림군(桂林君)의 장인이다.
  • 4남 안빈세(安貧世): 성주 이씨(星州李氏) 이계현(李繼賢)의 딸과 결혼하여 장남 안윤성(安胤誠), 차남 안극성(安克誠), 3남 안처성(安處誠), 4남 안자성(安自誠)을 낳았다.
  • 차녀: 청주 한씨(淸州韓氏) 한치례(韓致禮)와 결혼했다. 한치례는 한확(韓確)의 3남이며,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仁粹大妃)[1]의 남동생이다.

불교[편집 | 원본 편집]

큰아버지 효령대군 등과 함께, 조선 왕실의 대표적인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남편 안맹담도 마찬가지여서, 그는 항상 불경을 읽었으며 살생을 피하기 위하여 양잠(養蠶)도 하지 않았다. 정의공주와 안맹담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문수사(文殊寺)라는 을 세웠고, 안맹담이 죽자 정의공주는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이라는 불경을 간행했다. (대한민국 보물 제966호)

무덤[편집 | 원본 편집]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 63-1에 남편 안맹담과 합장되어 있다. 1982년 11월 13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각주

  1. 소혜왕후(昭惠王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