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편집 | 원본 편집]
아이돌[편집 | 원본 편집]
- 쟈니즈 (ジャニーズ)
- 1962년[1]부터 1967년까지 활동한 4인조 보이 그룹으로, 멤버는 아오이 테루히코, 마이에 히로미, 이이노 오사미, 나카타니 료였다. 사무소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에 초대 쟈니즈, 원조 쟈니즈로 불리기도 한다. 팀이 결성된 계기가 좀 독특한 게 당시 쟈니 키타가와가 프로듀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2] 동네 아이들로 하여금 야구팀을 결성해서 야구를 가르쳤는데, 어쩌다 비가 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본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영감을 받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기로 결심, 야구팀 중 노래와 춤에 재능이 있었던 4명을 트레이닝시켜서 결성한 팀이 바로 쟈니즈였다. 대표곡으로 《태양의 그 녀석(太陽のあいつ)》, 《내 장갑 찢어져있어(ぼくの手袋破れてる)》, 《눈물 군 안녕(涙くんさようなら)》가 있다.
- 포 리브스 (フォーリーブス, Four Leaves)
- 1967년부터 1978년까지 활동한 4인조 보이그룹으로, 멤버는 키타 코지, 아오야마 타카시, 에기 토시오, 오리모 마사오였다.[3] 쟈니즈의 후속 그룹으로 데뷔 전에는 쟈니즈의 백댄서 그룹이자 쟈니즈 주니어[4]로 대중한테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멤버들 자체가 연예계 경력이 화려한 편으로, 에기 토시오는 3살 때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했고, 오리모 마사오는 극단 출신 패션 모델이었다. 키타 코지는 쟈니의 비서(付き人), 아오야마 타카시는 배우나 탤런트 육성하는 예능 그룹 스쿨메이츠 출신이었다. 당시 팬들은 네잎클로버 모양 판넬을 포 리브스의 상징으로 슬로건처럼 흔들며 응원했었다. 이 당시 보이그룹으로는 흔치 않게 해체하고 나서도 2002년에 재결성해서 2009년까지 꽤 오래 활동하기도 했다. 1970년대 일본에서 완전 히트 쳤던 톱 아이돌로, 현재도 초기 쟈니즈를 대표하는 그룹으로 평가 받고 있다. 대표곡으로 《폭풍이 지나간 뒤(嵐のあと)》, 《무용수(踊り子)》
- JOHNNY'S 주니어 스페셜 (JJS)
- 리틀 갱 (リトル・ギャング)
- 타노킨 트리오 (たのきんトリオ)
- 쟈PA니즈
- 시부가키대
- 이글스
- THE GOOD-BYE
- 오토코구미
- 히카루GENJI
- 닌자
- SMAP
백 밴드[편집 | 원본 편집]
- 하이 소사이티 (ハイソサエティー)
- 슈퍼 에이지스
- 애니메이션
- 갱스 (ギャングス, GANGS)
- 보이그룹 리틀 갱과 연습생 그룹 백호대를 재정비해서 뭉친 아이돌 겸 밴드 그룹이다. 정식 멤버는 마츠바라 히데키, 소가 야스히사, 오오노 요시타카, 하세베 토오루였다. 1976년부터 1980년까지 단독 아이돌로도 활동하기도 했지만, 사실 카와사키 마요의 백 밴드를 담당하며 활동했다. 아이돌 겸 밴드라 포지션이 애매했는데, 1980년부터 다시 멤버를 재정비면서 갱스는 해산하고 완전한 백 밴드인 ANKH로 재데뷔한다. 그래서 음반 데뷔는 했으나 음반으로 나오지 않은 곡들이 몇몇 있다. 예를 들면 《귀여운 마릴린 먼로(かわいいマリリンモンロー)》라던가.
- ANKH (アンク, 앙크)
여성[편집 | 원본 편집]
초기에 여성 연예인을 배출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현재는 완전히 남성으로 갈아탄 상태.
- 쓰리 양키즈 (スリーヤンキース)
솔로[편집 | 원본 편집]
- 고 히로미 (郷ひろみ)
- 1971년에 포 리브스 매니저한테 캐스팅당해서 포 리브스 백업 댄서로 활동했다. 고 히로미란 예명은 팬들이 "렛츠고 히로미"라고 응원한 것에서 따왔다고 한다. 1972년에 배우로 먼저 데뷔한 뒤, 같은 해에 싱글을 내면서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한 때 브로마이드 매출 1위를 달성한 톱 아이돌이었으며, 이 때 《잘 부탁해 애수(よろしく哀愁)》, 《유혹당한 플라멩코(誘われてフラメンコ)》란 싱글을 내고 1975년에 악명 높은 바닝 프로덕션[8]으로 이적해 현재도 여기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한창 젊은 시절에는 가늘고 비음이 강한 음색이 특징이었으며,[9] 꾸준한 활동으로 80~90년대까지 전성기를 이끌어갔다. 당시 마츠다 세이코와의 결별 스캔들이 있었는데, 어마어마하게 기사가 쏟아졌을 정도로 파급력이 셌다. 홍백가합전에도 자주 출장하는 가수이기도 하다.
- 토요카와 죠 (豊川誕)
- 카와사키 마요 (川崎麻世)
- 타하라 토시히코 (田原俊彦)
- 나가타 에이지
- 우치다 요시로
- 아오이 테루요시
- 아오야마 노부히로
- 이노우에 준이치
- 토노 요타카
- 모리타니 아키라
- 미토 유우
- 아카기 사토시
- 히카루 잇페이
- 미요시 케이치
- 나카무라 시게유키
- 츠치다 카즈노리
- 오오사와 히데타카
- 토모다 키요히코
- 메구로 마사키
- 아오이 이츠키
- 코지마 히로무
- 니시하라 세이스
- 시부타니 스바루
- 모리우치 타카히로
- 쿠사노 히로노리
- 다나카 코키
- 아카니시 진
- 다구치 준노스케
- 모리모토 류타로
- 야마구치 타츠야
- 사노 미즈키
- 나카이 마사히로
각주
- ↑ 《꿈에서 만납시다(夢であいましょう)》라는 예능으로 첫 데뷔했다. 1964년이 되고 나서야 첫 싱글을 내고 음반 데뷔를 했었다.
- ↑ 당시 본업은 미국 대사관에서 번역 일을 하는 것이었다. 쟈니즈란 이름도 이 때 만든 야구단 이름이었는데, 당시엔 감독이 쟈니상이라서 지은 이름이었다.
- ↑ 원래 나가타 에이지라는 멤버가 있었으나, 당시 초등학교 6학년 밖에 안 되는 나이 때문에 아오야마 타카시가 대신 영입됐다. 결성 이전에는 극단에서 활동했고, 이후 나가타는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 ↑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는 쟈니즈 주니어 시스템의 원조인 셈이다.
- ↑ 원년 멤버는 야마가타 타카요시(山縣孝良)였으나, 원래 고 히로미의 백댄서 그룹인 쟈니즈 주니어에서 연습생 2명이 탈퇴하자 스페셜에서 나왔다. 이후 야마가타를 비롯한 5명의 연습생으로 쟈니즈 주니어 에이스란 팀을 만들었으나, 이 중 한 명인 하타야마만 남고, 고 히로미가 바닝 프로덕션으로 이적할 때 나머지 연습생까지 같이 데려갔다. 처음에 빠졌던 2명과 같이. 이후 고 히로미와 간 총 6명의 연습생들은 바닝 프로덕션으로 가서 멧츠(METZ, メッツ)라는 팀을 결성해 활동을 했으나 큰 반응 없이 조용히 해체했다. 혼자 남은 하타야마는 주니어 스페셜에 합류해 팀이 완성됐다...
- ↑ 선배인 포 리브스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 ↑ 다만 노무라 요시오는 솔로 활동보다는 쟈니즈 주니어였으며, 타노킨 트리오 이전에는 쟈니즈 소년단이란 연습생 그룹 멤버였다. 이후 드라마 《3학년 B반 킨파치 선생님》에 출연한 직후 트리오가 결성된 것. 물론 해체 직전인 1983년 6월이 되어서야 노무라까지 솔로 데뷔를 하긴 했다.
- ↑ 야쿠자를 등에 업고 설립한 연예 기획사로 알려져 있다.
- ↑ 이 목소리 때문에 호불호가 다소 갈린다.
- ↑ 고아 출신으로 2살 때 공원에 버려져 있던 걸 누군가 발견해서, 당시 시장이 자신의 본명과 생년월일을 부여받고 고아원에서 컸다고 한다. 생년월일은 약 3년 전인 1958년 10월 5일로 추정했다고 한다.
- ↑ 《하얀 모습(白い面影)》이란 노래는 첫 구절부터 부모가 없는 아이는 굽지 않은 빵을 / 목까지 채워넣고 물을 마신다(親のない子は焼かないパンを / 喉につまらせ水をのむ)였다.
창립자: 쟈니 키타가와 |
|
현재 소속 | |
관련 항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