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

요리의 일종. 중국에서 기원한 요리로 크게 중국식, 한국식, 미국식으로 나뉜다.

중국 잡채[편집 | 원본 편집]

한자: 杂碎 영어: Tsap Seui

한자를 풀이해보면 섞일 잡(杂)에 부술 쇄(碎)로 잡다한 것들을 잘게 썰어 섞어 만든 것을 정의한다 보면 된다.

중국식 잡채는 서민의 간단한 반찬의 대명사로 이런저런 채소들을 잡다하게 섞어낸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꼭 채소만 볶으란 법은 없지만, 고기가 귀한 고대 사회에서 서민이 고기를 마구잡이로 먹을수는 없으니 자연스럽게 채소를 섞어 먹는 쪽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딱히 정해진 규격 없이 아무거나 섞어서 먹으면 잡채이기 때문에 들어가는 재료는 지역에 따라, 시기에 따라, 집집마다 제각각이다. 일례로 남부 지방에서는 고수, 머위 같은 남부 지역의 채소의 비중이 높아지고, 사천 지방에서는 고추 등 매운 채소의 비중이 높아지며, 기름진 식문화가 발달한 광둥 지역에서는 재료들을 기름에 볶아서 만든다. 가정집의 경우는 그날그날 집에 있는 채소들로 만들기 때문에 매번 구성이 다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고기를 넣은 바리에이션도 존재한다. (고기를 넣기 힘든거지 넣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 물론 이 역시 잡채의 정의에 부합한다.

미국 잡채[편집 | 원본 편집]

영어: Chop suey

미국식 잡채는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유래한 그 잡채가 맞다. 이것은 과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넘어간 중국인들이 현지에서 본토의 맛을 즐기기 위해 만든 것이 미국 현지인들에게 인기를 끌어 대중화가 된 케이스로 때문에 미국화가 가해져있어 본토 중국식과는 꽤나 차이가 있다(다만 한국식에 비한다면 그나마 중국식에 가깝다). '찹수이'라는 이름도 잡채를 일컫는 중국어인 '짭쑤에이'가 영어식으로 변환되어 나온 이름.

이 '찹수이'의 특징은 미국 답게(...) 고기가 풍족하다는 점이 특징이며 여기에 을 얹어 먹는 일종의 덮밥화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여기엔 사연이 하나 있는데 이는 전기밥솥이 없어 밥을 장기 보존하기 어려웠던 과거에 장사하고 남은 밥을 처리하기가 곤란해서 그냥 잡채에 섞어 처리한 것이 그 기원이다.

여하튼 이 찹수이가 어느 정도로 인기였는지는 당시 발간된 문학작품들 여럿에 찹수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도 중국인이 쓴 소설 그런게 아니라 확실한 유럽계인 오 헨리의 소설에서도 등장할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과거만큼 대중적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서민들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지금은 미국인들의 입맛에 잘 맞는 제너럴 쏘 치킨 같은 다른 고기 요리(...)들이 더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 그래도 여전히 메이저 중 하나이기는 하다. 심지어는 유럽으로도 진출해서 유럽에 있는 중화요리 전문점에서는 기본으로 취급하고 있어 유럽에서도 어렵잖게 접할 수 있다.

한국 잡채[편집 | 원본 편집]

잡채.jpg

한자: 雜菜 영어: Japchae

한국의 잡채는 중국의 잡채에서 유래하였지만 상당히 다른 음식이 되어버렸다. 이름부터도 중국의 그 잡채와는 다른데 이쪽은 섞일 잡(雜)에 나물 채(菜)를 써서 채식임을 강조한 이름이다(물론 지금은 고기도 들어가니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이 되어버렸지만).

한국의 잡채는 조선 시대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서민의 끼니 해결 수단이였던 원조 중국 잡채와는 달리 이쪽은 궁중요리라는 고급화 버전으로 정립되었다. 임금님의 수랏상에 올라가는 음식이니만큼 중국처럼 채소를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막 썰어 섞어 내놓을 수 없어서 모양도 예쁘게 썰어놓고 또 어떤 재료는 기름에 지져서, 어떤 재료는 물에 삶아서 등 각 재료의 맛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는 방도로 따로따로 조리하여 합쳐 내놓은 식이였던 고로 손이 많이 갔다. 오늘날 잡채가 고급 요리로 취급받는 건 이런 조리과정 때문. 한술 더 떠서 이 당시 잡채는 별도의 양념장이 있어 거기에 찍어먹는 음식이였다.

잡채가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궁중요리가 된 까닭은 바로 민생을 살피려는 당시 군주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익히 알려져있다싶이 수랏상에 올라가는 재료들은 조선 팔도에서 모인 진상품으로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 이 중 잡채는 들어가는 야채의 가짓수가 많은데 말인즉 잡채 하나에 조선 팔도의 모든 야채가 들어가게 되어 있으며, 임금은 잡채를 보고 어느 채소가 제대로 들어왔는지를 보고 이를 통해 어느 지역에 문제가 있나 없나 확인해보려 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강원도에서 시금치를 진상하기로 되었는데 강원도 도지사가 착복을 행하여 시금치가 제대로 진상되지 않으면 임금이 수랏상에 올라온 잡채를 보고 시금치가 없다는 것을 보아 강원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강원도를 조사하여 합당한 조치를 취한다 이런 목적이였다. 하지만 정작 이 방법은 실효성이 전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각 지역의 관리들이 이걸 알고 당연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어진 진상품의 할당량을 꼭 채워넣곤 했기 때문에 당연히 수랏상에 올라가는 잡채는 늘 풍성했던 것이다. 즉 의도는 좋았지만 여러모로 현실성 없는 생각이였다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런 잡채는 다른 궁중음식들이 그렇듯 근대를 거쳐 민간에도 퍼졌는데 이 과정에서 당연히 임금이 먹던걸 그대로 민간에 보급하는 게 워낙 어려운 일이 아닌지라 결국 다운그레이드가 되었으며, 특히 6.25 전쟁 같은 급박한 상황들을 거치면서 싸게 많이 먹는 게 미덕이 되면서 여기에 값 싼 당면을 추가하여 오늘날의 잡채가 완성되었다.

즉, 정의하자면 한국의 잡채는 중국에서 기원한 그것이 맞긴 하지만 발달 과정도 목적도 완전히 달라진 별개의 요리가 되었다 할 수 있다.

중국집 잡채[편집 | 원본 편집]

중국집에서 취급하는 잡채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일단 '잡채'라고 하면 당면이 들어간 한국식 잡채를 의미하며, 피망을 이용해 만든 중국 본토 잡채에 가까운 잡채는 '고추잡채'로 정리한다. 다만, 일부 중국집은 그냥 한국식 잡채만 취급하거나 반대로 고추잡채만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고추잡채는 피망을 베이스로 하여 고기를 넣고 두반장으로 양념하여 기름에 세게 볶아낸 요리로 상술했듯 중국 본토의 잡채에 더 가까운 요리이다. 굳이 정의한다면 중국의 잡채의 바리에이션인 청초육사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기타[편집 | 원본 편집]

주석[편집 | 원본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