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방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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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芳梅.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윤희순과 함께 구한말 여성 의병장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0년 8월 18일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서 양덕관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오빠로 양성일이 있었다. 그녀는 유학자인 아버지 아래에서 자라 성품이 곧고 말수가 적었다. 1908년 9월 20일 심남일과 함께 강진, 장흥, 남평, 능주, 영암, 나주, 해남 등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던 의병장 강무경이 전투 후유증에 시달리다 평소 인연이 있던 양덕관의 집을 찾았다.

양방매를 강무경을 정성껏 치료했고, 강무경은 원기를 회복했다. 양덕관은 딸이 강무경의 좋은 배필이라 여기고 이들의 혼례를 치러줬다. 며칠 후 강무경이 집을 나서려 할 때, 양방매가 따라나서려 했다. 이에 강무경이 말했다.

여자가 나설 데가 아니다.

양방매가 답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결국 강무경은 아내가 함께 가는 걸 허락했고, 오빠 양성애 역시 여동생을 따라갔다. 이후 양방매는 1년간 장흥, 보성, 강진, 해남, 광양 등지에서 남편의 의병대에 종군했다. 특히 19109년 3월 8일 남평 거성동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다수의 군경을 사살했을 때, 그녀 역시 참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1909년 9월부터 일본군이 남한 대토벌 작전을 전개하자 피신하다가 10월 9일 전남 화순군 능주면 바람재 바윗굴에서 남편과 함께 체포되었다. 남편 강무경은 12월 15일 대구 형무소로 이송되었고, 1910년 10월 4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반면 양방매는 나이가 어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풀려났다.

이후 영암군 금정면 반치마을 초가로 돌아와 의병 활동 중 전사한 오빠 양성일의 딸을 키우며 약초 캐기 품팔이로 삶을 연명했다. 의병 활동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곤혹을 치를 것을 우려해 평생 숨어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다 1984년에야 그녀의 존재가 비로소 세상에 드러났고, 그녀는 이해 8월 14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남편의 무덤을 찾아갔다. 위의 사진은 이때 촬영된 것이다.

1986년 9월 28일 영암군 금정면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96세.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양방매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던 강무경의 곁에 합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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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