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민

한화 이글스투수이다. 2015년 현재 공익요원으로 군복무중이다. 특유의 노안으로 디시인사이드야구 갤러리를 포함, SNS와 주요 야구 사이트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다.

무명 시절[편집 | 원본 편집]

청주 태생이지만 이후 공주에서 자라면서 공주고등학교 야구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안승민의 고교 시기는 2007년~2009년인데 이때 공주고 야구부는 특별히 장점이 없는 약팀이었음에도 안승민의 활약으로 전국대회 상위권에 자리매김했다. 특히 봉황대기에서 두경기 연속 무사사구 완봉승을 한 기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경기간에 기복이 심하다는 점과 투구폼, 그리고 부상 경력이 약점으로 지목되었다.

이때문에 2010년 신인 드래프트 당시 다른 팀들은 안승민 지명을 기피했고, 1, 2순위로 북일고 김용주김재우를 지명한 한화는 3지명까지 안승민이 남아 있는 행운에 쾌재를 부르며 즉시 안승민을 지명했다. 한화는 사실 3순위까지 안승민이 남아 있을 거라 생각치 않고 3지명으로 성균관대 외야수 이상훈을 지명하려 했는데 안승민이 남아 있자 이상훈을 거르고 안승민을 콜한 것.[1]

사실 다른 구단에서도 안승민을 생각안한 구단은 없었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기복으로 인한 플루크 가능성 및 부상 경력때문에 상위 지명을 미뤘을 뿐이다. 넥센 히어로즈의 경우 구단주 이장석이 직접 안승민을 조기에 지명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스카우터들이 씹었다.

2010 ~ 2011 시즌[편집 | 원본 편집]

데뷔 첫 시즌부터 1군에서 활약, 초기에는 주로 계투진으로 활약하며 4월 13일 프로 첫 승을 구원승으로 장식했다. 이름있는 강타자들을 상대로 전혀 주녹들지 않고 자기만의 공을 던졌고 공 또한 위력있어서 순식간에 한화 유망주 1순위로 등극했다. 이후 2군에 잠시 내려가 선발 수업을 받은 뒤 8월 7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6이닝 3피안타(1홈런) 6삼진 2실점의 위력투를 보여주며 성공적으로 1군 선발투수로 데뷔했다. 이후 선발로 2승을 추가해 2010시즌을 4승(선발 3승) 4패 방어율 5.43으로 마무리했다.

2011시즌에는 처음부터 선발로 시작하여, 류현진 다음의 2선발로서 중책을 맡았다. 양훈과 함께 토종 5선발 중 유이하게 선발 로테이션을 거루지 않았으며[2] 매번 등판할 때마다 최소 5이닝 이상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아무리 길어도 6이닝 이상은 가져가기 힘들었는데 투구수가 많아서 그런것도 아니고 투구수가 60여개에 불과한데도 이상하게 7회만 되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종적으로 7승 9패 ERA 5.89를 기록했는데, 볼펜진의 방화로 승수를 날린 적이 많았고 한화 특유의 허술한 수비력으로 안 먹어도 될 실점을 먹은 점 등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10승 투수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9월 3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1회부터 백투백투백 홈런으로 내리 3실점하며 모두가 아쉬워하는 그 순간에도 오히려 멘탈을 다 잡고 6이닝동안 4피안타 3실점 9삼진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1회초에 백투백투백 홈런을 맞은 이후 6회까지 안타 딱 하나 허용했다는 이야기. 더군다나 9삼진은 본인의 한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이다.

2012 ~ 2013 시즌[편집 | 원본 편집]

역시 초반에 선발투수로 시작하였으나 하필 첫 등판인 4월 8일 롯데전에서 환상적인 수비 실책으로 무너진 이후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하여 선발진에서 빠지고 말았다. 이후 계투진으로 전환했으나 하필 4월 29일 넥센전에서 블론하며 선발투수의 승리를 날려먹고 급격히 위축되기에 이르렀다. 그 경기의 선발투수가 하필이면 박찬호였기에 심적 부담감이 상당했던 듯.

이후 5월부터 본격적으로 마무리로 전업하여 몇몇 경기를 빼면 팀의 리드를 철저하게 지켜냈다. 2012시즌에는 3승 7패 16세이브 ERA 4.75를 기록했는데 선발일때 잔뜩 올려놓은 ERA를 감안하면 정상급은 못되어도 믿을만한 마무리였다는 건 분명하다. 안승민의 마무리 전업으로, 마무리 투수로 영입한 데니 바티스타의 선발 전업이 가능해진것도 수확. 그러나 12시즌부터 안승민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13년에 악몽으로 다가왔다.

13시즌 초반 한화가 개막 최다연패 행진을 하고 있을 무렵 연이은 블론세이브로 마무리 자리에서 내려왔다. 4월 30일에 반짝 선발로 나와 롯데전에서 6이닝 3실점(2자책)으로 퀄리티스타트를 찍으며 2년 만에 선발승을 기록했지만 이후 선발로 등판하지 못하고 주로 구원과 계투로 나왔지만 나올 때마다 신나게 털렸다. 결국 마무리 자리를 송창식에게 넘기고 2군으로 내려갔으며 이후 부상과 함께 시즌 아웃. 2014년에 입대하였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장민재, 송창식과 함께 한화의 노안 3총사로 불리며 그중 노안이 제일 심하다! 때문에 야갤에서 시카고 컵스의 마지막 우승을 함께 한 멤버라는 드립을 합성짤과 함께 올리고 있다. 2013시즌 종료 후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11시즌 기준으로 상당히 배짱이 두둑한 선수였다. 볼넷을 주느니 차라리 안타를 맞아라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선수. 덕분에 팬들은 쓸데없이 볼을 남발하며 주자를 쌓는 짓거리는 안봐도 되지만 대신 안 좋을 때는 그만큼 꾸역꾸역 쳐맞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도 멘탈이 워낙 튼튼해서 한두번 안타 맞는 것 정도는 신경도 안썼는데 12시즌 이후로는 전역 후 멘탈이 회복되기를 바랄 뿐이다.

각주

  1. 정작 거른 이상훈은 4지명 한화 차례때까지 지명받지 못해 그대로 한화가 지명한다.그럼 뭐하나 13년에 트레이드로 삼성갔는데
  2. 류현진은 부상으로 1달정도 이탈했고, 김혁민은 5월부터 로테이션에 합류했으며, 장민재는 8월부로 계투진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