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형

김원형
金圓衡/ Kim Wonhyong
김원형2.jpg
인물 정보
출생 1972년 07월 05일 (51세)
전라북도 전주시
국적 대한민국
학력 전주고등학교
프로선수 경력
종목 야구
포지션 투수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1~1999)
SK 와이번스 (2000~2011)
SK 와이번스 등번호 16번
창단 김원형 (2000~2011) 이재영 (2012~2015)
한국시리즈 우승
2007
한국시리즈 우승
2008


소개[편집 | 원본 편집]

커브의 대명사

쌍방울,SK에서 활약하던 투수였다. 우완투수로써는 레전드 반열에 오르는 투수다.

무려 21년 동안 팀을 이적 한번없이 은퇴를 했을 정도로 팀에 대우가 좋았던 선수였다.

그러나 그에 걸림돌인 우승은 선수 말년인 2007년에 17년만에 우승을 겪어봤다. 그것도 주장으로써

그의 친구는 SK 와이번스 최초이자 아직도 없는 영구결번인 박경완이다. 현대 시절을 제외하면 김원형과 나란히 팀에 뛸정도로.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편집 | 원본 편집]

전주시 출신으로 전주시에서만 초중고를 졸업한 프랜차이즈 선수였다. 초반에는 고려대학교와 쌍방울의 영입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 쌍방울이 데려갔다.

그러나 창단 첫해는 투수는 거의 없어서 바로 즉시 전력감으로 투입됐다. 방어율은 4.69에 7승 11패 4완투를 거두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실 1완봉승을 기록했는데 그 상대가 하필 상대 투수가 레전드 투수인 선동렬 투수로 완봉승을 기록했다. 그 당시 해태 타이거스는 최강 라인업으로 왕조 시절을 꾸리던 그 시절에 완봉승을 거두었다.

1992년은 소포모어 징크스 없이 무난하게 성적을 내고 1993년에는 최연소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만 20세로 현재도 안 깨지고 있는 대기록

그러나 1994년부터 어깨 부상으로 하락을 거듭하더니 1995년은 재활을 성공적으로 하고 9승을 기록해서 에이스를 기록했다.

1996년은 에이스로써는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팀은 최초로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다.

1998년은 150이닝 12승 7패 13세이브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사실 이때 국가대표에도 뽑혀 병역특례를 받았지만 좋지않은 투구를 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말미암아 박경완, 김기태 등이 다 팔려나갈 때 유일하게 안 팔려나간 선수로[1] 1999년에는 장종훈의 타구에 맞아 시즌 아웃이 되는 대부상을 당했다.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 원본 편집]

창단 시절인 2000년도에는 투수진이 없다고 없어 선발과 중계를 오가는 투수로 하면서 무려 2승 13패를 먹고 만다.

2002년까지는 노쇠화와 얼굴에 맞는 투구로 인해 하락기가 시작될때는 강속구 투수보다는 변화구와 직구 속도를 비슷하게 하는 일명 기교파 투수로 변신했다.

2003년에는 한국시리즈 7차전에 등판을 했으나 결국 팀은 준우승에 그치게 된다.

2005년에는 선발로 뛰어 14승 8패를 거둬 SK의 노장 에이스로 활약하게 된다.

2007년에는 투수로써는 주장을 맡았으나 선발로 좋은 성적을 남기지 못해 불펜으로 이동해 노장으로써는 쏠쏠한 원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했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었으나 1경기에는 등판하지 못했다. 워낙 승부가 치열해서 등판하지 못했다고.

2008년에는 12승 6패 2세이브 2홀드로 불펜으로써는 좋은 활약을 해줬다. 이때는 연장전 경기일때는 김원형을 투입해서 끝장을 낸다는 승부수였다.

2연속 우승을 맛봤으나 2009년에는 팔꿈치 수술을 받고 경기는 등판을 못하고

2010년엔 3경기밖에 등판을 못하고 2011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친구인 박경완은 FA 대박을 터트렸다.

사실 16번은 영구결번이 가능했다 안가능했던 애매했는데 사실 SK 시절이 쌍방울 시절보다 그다지 좋지는 못해서 애매하다는 평가가 돌고있다.

코치 시절[편집 | 원본 편집]

은퇴를 하고 해외 코치 연수를 생각했으나 SK에 남았고 루키 투수코치로 자리를 잡았다.

본인의 주무기인 커브볼을 임정우나 문승원에게 전수한다. 실제로 임정우가 커브의 제왕을 불리는 이유가 김원형 코치에게 배워서이다!

서진용은 무려 평균자책점이 0점대를 기록했다.[2]

2013년 시즌부터는 조웅천을 대신해 1군 불펜코치를 맡게 된다.

2016년 시즌부터는 16년동안 활약했던 SK 와이번스를 떠나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보직은 투수코치 겸 수석코치

평가는 애매한편. 워낙 롯데 불펜이 막장스러운 모습을 줄였다는 평이 있지만 아직 커브볼을 쓴다는 선수가 없다!

그러나 주무기인 커브보다는 포크볼이나 체인지업으로 활약하는데 이것이 밋밋하거나 실투가 되어 홈런이나 단타성 타구를 너무 맞아서 평가가 안좋았지만

후반기에 롯데가 대폭발을 해 조원우 감독과 평가가 매우 올랐다. 전반기에 불태웠던 불펜들이 후반기에 돼서 사람이 되어가자 능력이 있는 코치로 자리매김했다.

커브볼[편집 | 원본 편집]

커브볼은 주로 12-6커브를 사용하는데 12-6 커브는 12시에서 6시 각도로 떨어지는 커브볼으로 낙차가 매우 큰 게 장점이다. 김원형이 선수 시절에 대활약했던 이유 중에는 이 커브볼 또한 있다. 전성기 때는 140km/h의 직구와 변화구로 싸움을 하는데 주로 커브볼이나 포크볼이나 체인지업을 쓰며, 간간히 싱커볼도 쓴다.

이 시절에는 정민철, 김상엽하고 비교됐는데, 이 셋의 장점은 커브의 각도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정민철은 직구와 커브볼이 속도가 어마어마해 삼진을 잡는 방면 김원형은 직구와 커브 자체가 속도가 비슷해 스윙을 하는 순간 공이 떨어져 삼진을 잡았다.

각주

  1. 부상으로 다른 팀에 러브콜을 못 받은 까닭도 있다.
  2. 2군 성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