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웅천

조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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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출생 1971년 03월 17일 (53세)
전주시
국적 대한민국
프로선수 경력
종목 야구
포지션 투수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 (1989~1995)
현대 유니콘스 (1996~2000)
SK 와이번스 (2001~2009)
SK 와이번스 등번호 41번
송재익 (2000) 조웅천 (2001~2009) 박종훈 (2010~2012)

소개[편집 | 원본 편집]

연습생 신화

SK 와이번스에서 활약했던 투수였다.

태평양 돌핀스 시절[편집 | 원본 편집]

야구를 시작할 때는 유격수로 시작했지만 키가 작은 이유로 팜이 좋은 광주상고로 진학하지만 일반학생으로 전환했다.

1989년에 태평양 돌핀스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당연히 1년 계약이라서 등번호가 없었다.

1990년에는 정식 선수로 전환이 되고 2경기 3실점이라는 허무한 성적을 남기고 방출 대상에 올랐지만 프런트와의 협상으로 기회를 얻었다.

1995년에는 주로 패전조로 등판해 불펜으로써는 좋은 성적을 남겼다. 투수진이 없는 태평양에서는 희망의 빛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편집 | 원본 편집]

1996년에는 김재박 감독이 부임하고 나서는 불펜으로 활약하기로 발표했다.

68경기에 등판해서 불펜으로써는 좋은 활약을 해 창단 첫해 한국시리즈에 활약을 해줬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좋은 활약을 해줬는데 2차전에서 무사 2,3루를 무실점 경기와 2이닝 무실점으로 활약해서 우승에 큰 도움을 줬지만 팀은 준우승을 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는 경기수는 50경기를 넘지만 주로 원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해서 그런지 이닝수가 주로 60이닝을 넘지를 못했다.

2000년을 시작하기 전에 김시진 투수코치에 의해서 체인지업을 배웠다.

그래서 2000년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 선발 트리오에 뒷문을 지켜주는 든든한 불펜이 되었다.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 원본 편집]

2000년도 활약에 2001년에는 기대를 했으나 뜬금없이 조규제와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아무래도 이때부터 제정난이 심각해 트레이드를 할 수도 있다.

트레이드 속에서는 2001년에는 평균자책점이 5점대를 기록해서 프로 성적중에서는 커리어 로우를 기록했다.

2002년부터 불펜으로 부활을 알렸고 2003년에는 마무리로 활약해 30세이브를 기록해 구원왕에 등극했다.

그러나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심수창을 대신해 올림픽에 등판했지만 좋은 성적은 남기지는 못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노쇠화의 조짐이 보였다. 그렇다고 성적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고 그냥 어정쩡한 불펜으로서 활약했다.

참고로 2006년때 선발로 등판한 적이 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불펜으로써 정대현과 함께 불펜을 무실점으로 막는 대불펜이 완성됐다. 노장으로서 건재한 모습. 그러나 2008년에 어깨 부상을 당해 2009년에는 활약을 하지 못해 결국 2010년에 정경배와 함께 은퇴를 했다.

코치 시절[편집 | 원본 편집]

미국으로 건너가 코치 수업을 받고 SK의 불펜 코치로 활약했다.

평가는 대체로 좋은편인데 2014년부터는 평가가 하락됐다. 투수진의 혹사에 대해서 아무것도 안 했다는 등 까이기는 했다.

2015년에는 2군 투수 코치로 활약했다. 1군 투수코치는 김상진 코치. 김상진 코치가 2군으로 내려가자 1군 투수 코치로 활약했다.

시즌이 끝나고 뜬금없이 한화행이 확정됐다. 그러나 무리한 계약으로 인해 한화행은 무산되고, 두산행으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