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원

김백원(金百源 또는 金白源, 1859년 6월 29일~1935년 1월 29일)은 대한민국독립운동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59년 6월 29일 경성부 안국동 15번지에서 출생했다. 그는 1919년 당시 안국동 교회 목사를 맡았고, 경서에서 발발한 3.1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던 1919년 3월 12일 서린동 영흥관에서 문일평, 백관형, 조형균, 문성호, 김극선 등과 함께 조선13개도대표자회의를 구성한 뒤,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애원서(哀願書) 2통을 작성하여, 1통은 조선총독에게 보내고 1통은 종로 네 거리의 보신각에 시위군중을 모아 그곳에서 낭독하기로 하였다.

애원서가 작성되자 차상진과 문성호가 그 중 1통을 조선총독에게 보내는 것을 담당하고, 그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보신각으로 나아갔다. 수백명의 모인 보신각 앞에서 문일평이 대표로 이를 낭독하고, 이어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미결구류일수 120일 본형에 산입) 판결을 받았다.[1] 이에 불복하여 공소하였으나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2] 이후 경기도 양평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5년 1월 2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김백원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으며, 2007년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108실 152호에 안장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