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버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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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의 보수주의는 18세기 [[계몽주의]]의 과도한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로 출발했다. 그는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농축된 인간 경험인 관행(관습), 전통, 편견이 한 세대나 한 개인의 추상적 이성보다 훨씬 깊은 지혜와 통찰력을 가진다고 믿었다. 게다가 그는 《숭고와 미의 근원을 찾아서》이라는 책을 쓰면서 미학을 다뤘다.
버크의 보수주의는 18세기 [[계몽주의]]의 과도한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로 출발했다. 그는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농축된 인간 경험인 관행(관습), 전통, 편견이 한 세대나 한 개인의 추상적 이성보다 훨씬 깊은 지혜와 통찰력을 가진다고 믿었다. 게다가 그는 《숭고와 미의 근원을 찾아서》이라는 책을 쓰면서 미학을 다뤘다.


== 저서 =
== 저서 ==
*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 《숭고와 미의 근원을 찾아서》
* 《숭고와 미의 근원을 찾아서》

2018년 12월 11일 (화) 05:03 판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년 1월 12일~1797년 7월 9일)는 아일랜드 출신의 보수주의 사상가로 영국에서 활동한 문필가이자 정치가다.

생애

버크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한 후 법을 공부하기를 희망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1750년 런던으로 이주했지만 유럽 대륙을 여행하기 위해 공부를 그만두었다. 그러던 가운데 1756년 《자연적 사회의 옹호론》에서 정치에 대한 추상적 이론을 비판했다.

1765년 의회 내 자유주의자를 중심으로 한 휘그당의 지도자 로킹엄의 비서로 정계에 진출하여 1766년에 하원의원이 되었다. 그는 영국왕 조지 3세의 독재와 미국 식민지에 대한 과세를 반대하고 미국 혁명을 지원했지만 1790년에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이라는 책을 써서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비판했다. 이유는 혁명 세력이 인민주권이라고 하는 '추상적 권리'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버크의 보수주의는 18세기 계몽주의의 과도한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로 출발했다. 그는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농축된 인간 경험인 관행(관습), 전통, 편견이 한 세대나 한 개인의 추상적 이성보다 훨씬 깊은 지혜와 통찰력을 가진다고 믿었다. 게다가 그는 《숭고와 미의 근원을 찾아서》이라는 책을 쓰면서 미학을 다뤘다.

저서

  •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 《숭고와 미의 근원을 찾아서》
  • 《희소성의 고찰》
  • 《자연적 사회의 옹호론》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