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아일랜드(아일랜드어: Éire 에이레, 영어: Ireland)는 서유럽의 섬나라이다. 영국 바로 서쪽에 있는 아일랜드 섬과 그 부속 도서를 헌법상의 영토로 하며, 북동부에 있는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 여섯 개 주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실효 지배하고 있다. 수도는 더블린이다.

1 역사[편집]

12세기에 영국의 침공을 받은 이래 800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1650년 올리버 크롬웰에 의해 공식적으로 영국에 합병된 이후 영국의 동군연합으로 편입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토지는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 민중들로부터 강탈당해 개신교를 믿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대지주들 몫이 되었다. 땅을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한 아일랜드 민중들은 땅을 강탈해 간 영국인 대지주들에 맞서 조직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1798년에는 유나이티드 아이리시멘(United Irishmen)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대규모 독립전쟁이 일어났다. 이는 동군연합을 깨고 미국처럼 공화국으로 독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 독립 혁명에서 모티프를 얻긴 했으나 위의 두 혁명처럼 이신론 내지는 무신론에 기반한 계몽주의자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가톨릭과 개신교가 연합하여 독립 전쟁을 주도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독립군은 한때 승승장구하며 아일랜드 남부를 거의 장악하였으나, 비네거 힐에서 참패하고 지휘부가 무너지면서 유나이티드 아이리시멘의 독립 전쟁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피니언 당(Fenian)을 비롯한 각종 독립운동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게 된다. 이들은 19세기 내내 치열한 독립투쟁을 전개한 끝에 1916년 부활절 봉기를 통해 영국을 향한 광복 의지를 제대로 보여 주었고, 1919년부터 1921년까지 대대적인 독립전쟁을 벌여 마침내 영연방 내의 한 멤버인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독립한다는 영국-아일랜드 조약에 따라 광복을 맞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친영파 인구가 압도적인 동북부의 여섯 개 주가 영국령으로 잔류하기를 선택하였고, 영국-아일랜드 조약의 내용이 완전한 독립국가를 보장하지 못한 관계로 조약 찬성파와 반대파 사이에서 1922년부터 23년까지 피 튀기는 내전이 벌어졌다. 내전 결과 조약 찬성파가 승리하면서 아일랜드는 남북으로 쪼개졌다. 1937년 영연방 탈퇴를 선언한 아일랜드는 1949년에 공식적으로 아일랜드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영연방과 상관없는 독립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북아일랜드의 여섯 개 주는 영국령으로 잔류하기를 고수함에 따라 현재까지 아일랜드 섬은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로 분단된 상태이다. 아일랜드 공화국 헌법상 아일랜드 섬 전체와 그 부속 도서가 아일랜드 공화국의 영토인 관계로, 북아일랜드 자치 정부는 아일랜드 섬 북동부의 여섯 개 주를 무단으로 점거 중인 반국가 단체에 해당된다. 북아일랜드의 반영파 주민들은 영국에 맞서서 1969년부터 1998년까지 무장투쟁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으며, 현재도 비폭력 노선을 통해 남북 아일랜드 통일을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친영파의 인구와 사회적 지위가 하도 막강한 관계로 남북 아일랜드 통일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남아 있다.

2 한국과의 공통점[편집]

섬뜩할 정도로 한국과 싱크로율이 높다. 6.25 때 미군의 자료에서 공식적으로 말하기를 한국인은 동양 아이리시라 할 정도이다. 대충 다음과 같은 역사적, 문화적 유사점을 갖고 있다.

  • 바로 옆에 있는 강대국으로부터 지속적인 침략과 수탈, 식민지배를 당했다. 우연이겠지만 강대국 측은 둘 다 섬나라이며 역사가 오래된 입헌군주국이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동쪽에 자리하는 점도 같다.
  •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가며 식민지배에 맞서 싸웠다.
  • 우여곡절 끝에 국제정세에 따라 독립을 얻긴 했지만 나라가 둘로 쪼개졌다.
  • 쪼개진 나라의 북쪽은 이고, 남쪽은 공화국이다.
  • 광복 직후 피 터지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었다.
  • 지금도 옆에 있는 그 강대국이라면 이를 빠드득빠드득 간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옆나라 언어의 능통자가 많다.[1]
  • 그렇게 오랫동안 침략, 수탈, 식민지배를 했던 옆 나라와 섬 하나를 놓고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 국민들이 음주가무를 좋아한다.
  • 북쪽은 특정 종교 광신도가 우글거리고, 남쪽은 물신숭배와 부동산 투기가 만연해 있다(...)
  • 남쪽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다.
  • 남쪽의 종교인들이 온갖 범죄 행각을 일삼으며 지탄을 받고 있다.

아일랜드 역시 우리나라와 일본이 겪는 독도 분쟁과 유사한 분쟁을 겪고 있는데, 로콜(Rockall)이라고 하는 작은 바위섬을 놓고 영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중이다. 심지어 1970년대에는 울프 톤스(The Wolfe Tones)라는 정치색 강한 아이리시 포크 그룹이 'Rock on Rockall'이라는 노래를 내놓기도 했는데, 이건 빼도 박도 못 하고 로콜은 우리땅이다.

3 국가[편집]

Sinne Fianna Fáil
A tá fé gheall ag Éirinn,
buion dár slua
Thar toinn do ráinig chugainn,
Fé mhóid bheith saor.
Sean tír ár sinsir feasta
Ní fhagfar fé'n tiorán ná fé'n tráil
Anocht a théam sa bhearna bhaoil,
Le gean ar Ghaeil chun báis nó saoil
Le guna screach fé lámhach na bpiléar
Seo libh canaídh Amhrán na bhFiann.

우리는 군인이다.
우리의 생명은 아일랜드에 저당 잡혔지.
누군가는 찾아왔구나,
파도 너머 저 멀리로부터.
해방을 맹세하였으니
우리 옛 조국의 땅은
억압자도, 굴종하는 자도 용납하지 않으리라.
오늘 밤 우리는 위험의 골짜기를 넘을 것이니,
아일랜드를 위하여, 비통해하는 이든 맞아서 부어오른 이든 어서 오라.
중위대의 대포가 으르렁거리고, 라이플이 울리네,
우리는 군인의 노래를 부르리라.

4 언어[편집]

아일랜드 게일어와 영어를 모두 공용어로 사용한다. 따라서 모든 공문서와 공공기관의 안내판에는 아일랜드 게일어와 영어를 병용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아일랜드 게일어 사용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아일랜드 게일어를 교육과정에서 마치 우리나라 한문 배우듯 배우긴 하지만, 시험 치고 나면 다 까먹는다(...) 어느 정도냐 하면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이 영어밖에 몰라서 자기네 나라 국가를 못 부른다! [2] 게일어가 보존된 서부 코노트 지방의 몇몇 도시에서 게일타르트라 하여 게일어만 사용하도록 지정된 지역이 있지만, 이 지역 주민들도 영어를 구사할 수는 있다. 즉 실질적으로 아일랜드의 메인 공용어는 영어이다.

아일랜드 영어는 영국 영어와 비교했을 때 미국 영어에 훨씬 가깝다. 미국 영어의 가장 큰 특성인 모음 뒤의 r발음은 항상 빼놓지 않고 하며, 단모음 o도 미국식 발음에 가깝게 발음한다. 물론 미국 영어에서 모음 사이에 오는 t를 r이나 l처럼 발음하는 현상은 지역 차이가 있지만 덜한 편이다. 말하는 속도는 영국 영어나 미국 영어보다는 빠른 편이다.

5 종교[편집]

종교는 원래 가톨릭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이는 영국 제국이 자기네들의 정체성을 주입시키고 아일랜드인들의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고자 개신교를 믿을 것을 강요함에 따라, 아일랜드인들이 가톨릭을 믿는 것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여기고 가톨릭을 열심히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가톨릭이란 종교 자체와 아일랜드 독립운동 사이에는 직접적 연관 관계는 없다. 이렇듯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들은 가톨릭에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부여하여 영국에 대한 저항의 아이콘으로 여겼지만 정작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간 애국지사들 가운데는 상당수가 개신교인이었다. 오히려 가톨릭은 공식적으로는 독립운동에 부정적인 가운데 신부와 신자들이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 이렇듯 개신교인이면서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가담한 애국지사들을 '개신교 공화주의자'(Protestant republican)이라고 한다. 1798년도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이끈 유나이티드 아이리시멘(United Irishmen)은 기본적으로 초교파를 표방했으나 수장인 울프 톤을 비롯하여 주도권은 개신교인들이 쥐고 있었다. 독립전쟁 당시 지휘관 4명 가운데 2명은 성공회(울프 톤,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1명은 장로교회(헨리 조이 매크래켄) 교인이었으며 나머지 1명(존 머피)만이 가톨릭 신부였다. 이들 말고도 윌리엄 오어, 토머스 러셀, 새뮤얼 닐슨, 토머스 오스본 데이비스 등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를 믿었다. 가톨릭 신자들이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부터이다. 즉 아일랜드 개신교=친영 매국노는 절대로 아니다! 이렇듯 개신교 공화주의자들은 독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현재 아일랜드 공화국의 개신교 교인들은 영국을 지지하는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교인들과는 달리 거의 대부분이 개신교 공화주의 노선을 따른다. 그도 그럴 것이 엄연한 독립 공화국인 아일랜드 공화국 국민으로써 아일랜드 섬 북쪽의 여섯 개 주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반국가 단체추종한다는 것은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써 코렁탕 먹어도 백 그릇은 먹을 일이니...

다만 현재는 아일랜드 공화국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가톨릭 인구 비율이 급감하는 추세인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아일랜드 신부들이 자신들이 교목으로 있는 미션스쿨의 남학생들을 장기간에 걸쳐 집단적으로 성추행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기 때문. 아일랜드는 대부분의 학교가 미션스쿨이고, 종교에 따라서 가톨릭 학교나 개신교 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이 가운데 가톨릭을 믿는 서민층의 교육은 아일랜드 신부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크리스천 브라더스(Christian Brothers)라는 기관에서 세운 학교들이 주로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 크리스천 브라더스의 신부들이 자기네들이 가르치는 학교의 남학생들을 장기간에 걸쳐서 성추행한 사실이 2002년도에 폭로가 되었다. 이것 말고도 아일랜드 신부들이 저지른 온갖 섹스 스캔들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서, 아일랜드 가톨릭의 사회적 신뢰도는 동양의 그 어떤 나라에서 정확히 그 반대쪽 종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폭락을 하게 되었고, 젊은 층들은 급속도로 가톨릭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

골 때리는 것은, 그 반대로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성공회 교인은 증가하고 있다는 것(…). 가톨릭 신부들의 막장짓거리에 분노한 신자들이 가톨릭을 버리고 성공회로 가는 것이다. 동양의 그 어떤 나라하고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일한 차이점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 바뀌었을 뿐. 아일랜드에서 신부는 특별한 종교적 권위를 가진다는 인식을 대다수의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데, 신부들이 이를 악용하여 성추행을 저지른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그 대상이 성인 여성이 아니라 남자 어린이였다는 것이다. 더블리너스 멤버인 에이몬 캠벨도 자신이 성추행 피해자였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크리스천 브라더스의 아동 성추행은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런 천하의 개쌍놈들…

아무튼 그 결과 현재 아일랜드 사람들이 가톨릭 신앙심이 독실하다는 건 50대 이상 나이 많은 사람들 한정이고, 젊은 사람들은 해당사항 없다. 더블린에서 20대의 주일미사 참례율은 20%도 되지 않으며, 빠른 속도로 무교와 개신교의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여기서 무교란 무신론, 불가지론, 그냥 종교에 관심없음 등등을 다 포괄하는 개념. 젊은 층의 경우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스펙경쟁 때문에 종교에 신경 쓸 틈이 없는 이유도 있고, 또 막장스러운 짓거리로 사회를 충공깽에 빠트린 가톨릭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종교에 아예 등을 돌려 버린 이유도 있다. 또한 앞서 말했듯 성공회 교인 수도 빠른 속도로 증가 추세이다.

아일랜드 개신교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교회들을 같은 교단에서 관할한다. 하지만 북아일랜드의 친영파 개신교에 대한 반감 때문에 아일랜드 공화국에 있는 개신교 교회들은 성공회 교회를 제외하면 50% 이상이 교단에 소속되지 않고 IBI(아일랜드 성경 학원)라는 초교파 신학교에서 신학 과정을 이수한 다음 목사안수를 받은 목사들이 목회하는 초교파 독립교회이다.

6 경제[편집]

광복 후 아일랜드 자유국 정부는 대다수의 기간 산업을 국유화했는데, 이건 스탈린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나라 상황이 문자 그대로 막장 오브 막장이라서 민영화해 가지고는 답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일랜드는 유럽 최빈국이었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농촌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변변한 제조업 하나 없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돈 벌러 영국 가고 미국 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2차대전 직후에는 '매칼파인의 사수들'이라 하여 단체로 영국에 돈 벌러 가기도 했다. 한국에서 박정희 군사독재 시대에 돈 벌러 중동 가고 독일 갔던 것처럼 말이다. 서유럽 선진국들이 자랑하는 사회보장 제도? 그거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 [3]

그래도 어느 정도 느리게나마 경제 성장을 달성한 상황 속에서 1979년에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아일랜드는 문자 그대로 헬게이트가 열렸다. 그나마 키워 놓은 게 다 와장창 무너진 거다. 수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영국과 미국으로 빠져나갔는데,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대졸, 최소한 고졸) 지식인들이 무더기로 탈출했다 하여 1798년에 백작 타이틀을 단 귀족들이 무더기로 스페인으로 탈출한 사건에 빗대 이런 현상을 '백작들의 탈출'이라 한다.

이런 경제위기를 겪은 후 아일랜드 정부는 옆동네 대처 정권이나 바다 건너 레이건 정권을 따라서 일관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게 된다. 아일랜드는 한국처럼 보수 양당이 번갈아 집권하고 있는데, 보수 양당이 서로 합의를 보기를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기로 했다. 적극적인 투자 유치를 위해 친기업, 친자본 정책을 일관되게 밀어붙이고 법인약국 도입을 비롯하여 민영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강행하면서 아일랜드는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국가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나라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치한다는 명분으로 아일랜드 정부는 IT 분야를 집중적으로 밀어 주었다. 지하자원은커녕 자기네들 먹을 감자와 밀가루도 자급자족을 못 하는 나라고 변변한 공단 시설도 없다 보니까 IT에 투자하는 게 가장 믿을 만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한국과의 공통점이 대체 몇 개냐 이거 물론 IT에 투자하는 것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경제를 살린다면서 신자유주의 기조를 일관되게 추진한 결과 초특급 병크를 터트렸는데... 다름 아닌 부동산 투기를 장려했다! 부동산 투기를 장려하면서 아일랜드 땅에 투자하면 대박을 터트린다는 확신을 가진 투자자들이 무더기로 땅 투기를 저질렀고, 부동산 거품은 미친 듯 부풀어올랐다. 그리고 이 부동산 거품이 상을 차리고 IT가 숟가락을 올린 결과 통계 수치상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달성하여 '셀틱 타이거'(Celtic tiger)라는 소리까지 들다. 한때는. 이쯤 되면 한국하고 평행이론이라도 있는 거 아냐

하지만 이 부동산 거품은 2008년 리먼 파산을 필두로 한 글로벌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문자 그대로 와장창이 되어 버렸다. 부동산 거품에 의존하여 신자유주의 정책을 일관되게 밀어붙였으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이 모든 것들이 한여름 밤의 꿈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1980년대 초의 '백작들의 탈출'이 시즌 2를 찍었고 우리나라 IMF는 저리가라 할 만한 극심한 경제위기로 아일랜드 전역에 헬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2011년에는 마침내 좌파 정당이 제1야당과 연립정권을 형성하면서 현재 그리스의 시리자 내각처럼 좌우 연립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물론 주도권은 후자가 쥐고 있지만...

그래도 아일랜드는 똑같이 땅투기 하다가 망한 스페인이나 땅투기+극심한 부정부패 때문에 나라 자체가 지금 난장판인 그리스처럼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는 건 아니었고 나라 자체는 굉장히 청렴했기 때문에 그리스처럼 헬게이트가 열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관되게 밀어 온 신자유주의 정책, 부동산 투기 장려 정책이 결국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건 명백한 사실. 때문에 현재 아일랜드에서는 공동 여당이 좌파 정당이고,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주도했으나 광복 이후에는 군소정당으로 머물러 온 좌파 성향의 신페인당이 그리스의 시리자나 스페인의 포데모스처럼 지지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자원은 전무하고 변변한 기간 산업도 없어서 유럽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부동산 거품과 IT 버프로 빠르게 경제성장을 해서 주목을 받았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망했어요가 되고 말았는데 다행히 나라 자체는 청렴해 가지고 그리스처럼 헬게이트가 열리지는 않았다고 요약할 수 있다.

7 문화[편집]

7.1 음식[편집]

옆동네 음식이 맛 없기로 악명 높은 것과는 달리 여기는 그나마 사람이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 낸다. 물론 무지하게 맛있다거나 이런 건 아니고, 특별히 맛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먹을 만하다 수준. 옆동네 영국이 피시 앤 칩스를 제외하면 해산물을 잘 먹지 않는 반면 여기는 대구, 연어, 새우, 굴 등등 생선과 해산물을 정말 좋아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하도 먹을 것 자체가 없는 나라다 보니까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어야 했거든. 심지어 미역도 먹는다. 대표적인 음식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콜카논 - 감자를 으깨서 버터, 소금, 후추로 양념하고 마늘, 양파, 파, 부추, 양배추, 케일 등등의 야채를 넣고 푹 끓인 요리. 베이컨이나 닭고기 찢은 것을 토핑으로 얹은 다음 버터를 끼얹어 먹는다.
    • 콜카논 케이크 - 콜카논을 갖다가 반죽해서 동그랑땡 형태로 빚어 가지고 프라이팬에 구워 낸 요리. 비주얼만 보면 한국 동그랑땡을 닮았다.
  • 박스티 - 감자를 갈아서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전을 부친 다음에 사워크림과 파 썬 것을 얹어 먹는다.
  • 아이리시 스튜 - 감자를 주재료로 하여 육류와 당근, 양파, 그 밖에 각종 야채와 향신료를 넣고 끊여서 만든다. 중간에 감자를 뭉개서 국물을 걸쭉하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
  • 블랙 푸딩 - 한국의 순대처럼 오트밀과 돼지 피를 이용하여 만드는 소시지이다. 카운티 코크의 티몰로그에서 생산되는 티몰로그 브라운 푸딩은 지리적 표시 보호 적용대상.
  • 이모킬리 레가토 - 카운티 코크의 모질리에서 생산되는 아일랜드 고유의 치즈. 역시 원산지 명칭 보호대상이다.

클레어 섬의 연어와 커네마라 지역의 양고기는 지리적 표시 대상으로 등록되어 있다.

국민들이 술을 좋아해서 한국과의 공통점 또 추가 술 양조업도 발달하였다. 기네스 맥주와 제임슨 위스키가 유명하다. 기네스 맥주의 경우는 볶은 보리를 사용하여 특유의 흑색을 내며, 거품층을 형성하기 위해 캔 안에 별도의 볼을 집어넣어서 따면 거품층이 형성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맛은 일반 맥주에 비해 약간 쓰고 떫은 편이다. 제임슨 위스키는 한국에 들어와 있는 유일한 아일랜드산 위스키인데, 도수는 보통이고 특유의 진한 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전 국민이 옆동네 영국과 터키를 제치고 세계 최강의 홍차 덕후인 관계로, 그 작은 나라가 1인당 홍차 소비량 1위를 찍었다.

7.2 음악[편집]

전통 음악이 굉장히 발달하였다. 아일랜드 포크 음악 항목 참조. 또한 현대 음악에서도 U2, 크랜베리스, 코어스를 비롯하여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한국과의 공통점 또 하나 추가요!

8 각주

  1. 차이점이라면 아일랜드는 잔존한 영어가 게일어를 거의 잡아먹은 상태고, 한국은 잔존한 일본어를 청산하려 애쓴다. 대신 영어가 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 아일랜드 축구선수들 대부분은 유소년 때부터 바로 옆에 있는 잉글랜드 리그 팀에 입단하여 유소년 테크트리를 밟고 성인이 되면 1군으로 올라간다. 때문에 초등학교부터 잉글랜드에서 다닌 선수라면 게일어를 몰라서 국가를 못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3. 실제로 아일랜드는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도 일관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탓에 현재 서유럽에서 가장 복지예산 비중이 낮은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