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란 시몬센

알란 시몬센
Allan Rodenkam Simonsen
Allan Simonsen 20121027.JPG
인물 정보
출생 1952년 12월 15일 (71세)
덴마크 바일레
국적 덴마크
신체 165cm, 58kg
프로선수 경력
종목 축구
포지션 공격수[1]
소속팀 바일레 BK (1971~1972)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2~1979)
FC 바르셀로나 (1979~1982)
찰턴 애슬레틱 (1982~1983)
바일레 BK (1983~1989)
지도 바일레 BK (1991~1994)
페로 제도 (1994~2001)
룩셈부르크 (2001~2004)
프레데리카 (감독대행) (2013)

작지만 큰 덴마크인(El pequeño gran danés)

좋은 소악마(le bon petit diable)

클럽 경력[편집 | 원본 편집]

바일레 BK(1971-1972)[편집 | 원본 편집]

어린 나이에 고향 근처의 클럽인 바일레 BK에 입단해 그곳에서 1군 데뷔까지 하게 된다. 165c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공격수로 뛰면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덴마크 대표로 1972년 뮌헨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다. 비록 덴마크는 일찍 탈락했지만 좋은 활약을 보인 덕에 묀헨글라트바흐헤네스 바이스바일러 감독의 눈에 들어 서독으로 떠난다.[2]

묀헨글라트바흐(1972-1979)[편집 | 원본 편집]

당시 묀헨글라트바흐는 분데스리가를 넘어 유럽에서 손꼽히는 강팀이었고 시몬센의 커리어도 탄탄대로를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비록 1972년에 이적해서 같이 뛰진 못했지만 시몬센의 클럽 선배인 울리크 르 페브르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활약했었고, 역시 덴마크 출신인 헤닝 옌센1972년에 영입되었으니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팀의 주장 귄터 네처는 시몬센이 분데스리가에서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 전망했고, 실제로 이 작은 체구의 청년이 뛰기에 분데스리가는 너무나도 가혹한 곳이었다.

시몬센은 클럽에 적응하지 못했고 2시즌 동안 거의 벤치만 달구고 있어야했다. 이에 지친 시몬센은 이적 요청까지 했으나 바이스바일러는 이를 거부하고 팀에 잔류시켰다.[3] 결국 바이스바일러의 선택은 옳았다. 3년차인 1974/75시즌에 시몬센은 라이트윙으로 뛰면서 레프트윙 유프 하인케스, 센터포워드 옌센과 함께 분데스리가 역사에 길이 남을 삼각편대를 결성하여 리그 전경기에 출장해 18골을 기록하며 팀의 분데스리가 탈환을 이끌었고, UEFA컵 결승전에서 2골을 넣으며 더블을 달성한다.

1975/76시즌에는 바이스바일러 감독이 바르셀로나로 떠났음에도 우도 라텍의 지휘 아래 리그 2연패에 성공했으며 유러피언컵에서도 비록 레알 마드리드에게 원정골 규정으로 패했지만 이탈리아의 거함 유벤투스를 침몰시키며 8강까지 진출했다. 1976/77시즌에는 옌센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그 여파였는지 시몬센의 활약도 이전만 못했다. 특히 전반기가 끝나갈 무렵에 하인케스가 부상을 당하며 팀에 위기가 오는 듯 했다. 그러나 시몬센은 후반기에 부활하여 팀의 리그 3연패를 완성하고, 유러피언컵에서도 결승까지 오른다. 비록 리버풀에게 패하긴 하지만 시몬센의 이름을 유럽에 널리 알린 시즌이었다.[4]

1977/78시즌을 앞두고 유러피언컵 결승의 상대였던 리버풀의 에이스 케빈 키건함부르거 SV로 이적한다. 그러나 키건이 팀의 부진과 함께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는 동안 시몬센은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고, 이 덕분에 3점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키건을 제치고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다.[5] 다만 타이틀은 얻지 못했는데 리그에서는 전설의 보루시아 더비에도 불구하고 골득실 차이로 준우승에 머물렀고,[6] 유러피언컵에서는 4강에서 리버풀을 다시 만나 골득실로 패했다. 시몬센은 아쉽지만 유러피언컵 득점왕을 챙긴 것에 만족해야했다.

그러나 묀헨글라트바흐의 전성기는 끝을 보이고 있었다. 작은 홈구장 때문에 재정문제로 꾸준히 선수들을 잃어야했고, 이미 1977년울리 슈틸리케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며, 1978년에는 라이너 본호프FC 발렌시아로 이적했다. 여기에 노장 하인케스와 헤어베르트 비머, 한스-위르겐 비트캄프도 팀을 떠나버렸으며[7] 주장 베르티 포크츠는 노쇠와 부상으로 경기를 거의 뛰지 못했다. 선수유출과 부상을 합쳐 베스트11의 절반 이상이 물갈이되었으니 팀이 멀쩡히 굴러갈리가 없었고 묀헨글라트바흐는 10위라는 실로 낯선 성적표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러나 UEFA컵에서는 득점왕을 차지한 시몬센의 맹활약으로 2번째 우승을 거머쥐었고, 계약이 끝난 시몬센은 클럽에 마지막 우승을 남기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떠난다.[8]

바르셀로나(1979-1982)[편집 | 원본 편집]

지금으로선 상상이 잘 안 가는 일이지만 당시의 바르셀로나는 프리메라리가 대권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클럽이었다. 정확히는 왕좌를 다투던 클럽이었으나 요한 크라위프의 이적 이후 힘이 빠진 상태였다. 3시즌 동안 좋은 활약을 하긴 했지만 끝내 리그 타이틀은 얻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바르셀로나가 우승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80/81시즌에는 리그 종료 2개월 전까지 리그 2위였으나 팀의 주포 키니가 납치당하면서 5위에 그쳤고,[9][10] 1981/82시즌에는 5경기를 남겨놓고 5점차 1위였음에도 역전당해 준우승에 그쳤다.[11] 대신 UEFA 컵 위너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3개의 유럽 대항전 결승에서 모두 골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시몬센의 스페인 생활은 바르셀로나가 디에고 마라도나를 영입하면서 끝이 났다. 당시 라리가는 외국인이 2명만 출전할 수 있었는데 바르셀로나에는 시몬센 외에도 독일 출신의 베른트 슈스터가 있었고, 결국 경쟁을 원하지 않은 시몬센이 떠난 것.

찰턴(1982-1983)[편집 | 원본 편집]

시몬센을 영입한 클럽은 놀랍게도 잉글랜드 2부리그의 찰턴이었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일이었는데 시몬센이 무관심 속에 이적한 것이 아니라 스페인의 제왕 레알 마드리드와 잉글랜드의 강호 토트넘의 제의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유서깊은 거절햄의 전통 당시 시몬센은 이미 서른의 나이였고 치열한 격전을 치르기보다는 평온히 커리어를 마무리하길 원했고 2부리그행을 받아들인 것. 그러나 시몬센의 몸값 문제로 짧은 영국 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바일레 BK(1983-1989)[편집 | 원본 편집]

시몬센은 고향으로 돌아오자마자 화려한 불꽃을 태우는데 덴마크에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1983년 발롱도르 3위에 오른다.[12][13] 비록 1984년에 당한 심각한 부상을 당해 기량을 잃었지만 덴마크리그의 수준이 높지 않았던지라 큰 어려움 없이 오래도록 선수생활을 즐기다가 은퇴했다.

국가대표 경력[편집 | 원본 편집]

1972년에 데뷔한 직후 올림픽 대표로 뽑혀 두각을 나타냈고, 이후 꾸준히 덴마크 대표팀의 간판스타로 뛰었다. 그러나 국제대회와는 인연이 없는데 전성기를 보낸 70년대에는 덴마크가 특별한 강팀이 아니었고, 덴마크의 전성기가 시작된 80년대 중반에는 불운과 노쇠가 겹쳤다. 1983년 잉글랜드의 홈구장 웸블리에서 펼쳐진 유로 예선에서 팀을 승리로 이끈 페널티킥을 성공시켰고 이 승리 덕에 덴마크는 이후 헝가리에게 패하고도 잉글랜드를 따돌리며 유로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20년 만의 유로 본선 진출이자 12년 만의 국제대회 본선 진출이었지만 시몬센은 프랑스와의 개막전에서 다리가 부러져서 후배들이 4강진출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고, 1986 FIFA 월드컵 역시 1경기 출장에 그쳤다.

감독 경력[편집 | 원본 편집]

화려한 선수생활과는 달리 감독으로선 성공하지 못했는데 고향팀 바일레 BK의 감독으로 있을 때는 팀이 강등당했고, 이후 감독을 맡은 페로제도와 룩셈부르크는 약소국이라 특별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덴마크 2부리그의 프레데리카에서 단장을 하다 임시감독을 하기도 했지만 시즌이 끝나고 완전히 물러났다.

우승 경력[편집 | 원본 편집]

선수[편집 | 원본 편집]

바일레 BK

  • 덴마크 1부리그 : 1971, 1972, 1984
  • DBU 포칼렌 : 1972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FC 바르셀로나

수상 경력[편집 | 원본 편집]

선수[편집 | 원본 편집]

통산 기록[편집 | 원본 편집]

시즌 클럽 리그 대륙 총계 비고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1971 바일레 BK 20 6 ? ? - - ? ? 덴마크
1972 바일레 BK 22 10 ? ? 2 0 ? ? 덴마크
1972-73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8 0 2 0 2 0 12 0 분데스
1973-74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9 2 2 0 3 3 14 5 분데스
1974-75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34 18 2 1 12 10 48 29 분데스
1975-76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34 16 4 1 6 4 44 21 분데스
1976-77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34 12 1 0 9 2 44 14 분데스
1977-78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31 17 5 3 7[14] 5 43 25 분데스
1978-79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28 11 3 3 10 9 41 23 분데스
1979-80 FC 바르셀로나 32 10 2 0 7[15] 4 41 17 라리가
1980-81 FC 바르셀로나 33 10 9 3 2 0 44 13 라리가
1981-82 FC 바르셀로나 33 11 2 0 9 5 44 16 라리가
1982-83 찰턴 애슬레틱 16 9 ? ? - - ? ? 잉글 2부
1983 바일레 BK 28 13 ? ? - - ? ? 덴마크
1984 바일레 BK 13 6 ? ? - - ? ? 덴마크
1985 바일레 BK 30 16 ? ? 2 1 ? ? 덴마크
1986 바일레 BK 24 13 ? ? - - ? ? 덴마크
1987 바일레 BK 25 13 ? ? - - ? ? 덴마크
1988 바일레 BK 23 4 ? ? - - ? ? 덴마크
1989 바일레 BK 23 5 ? ? - - ? ? 덴마크
종합 덴마크 208 86 ? ? 4 1 ? ?
종합 독일 178 76 19 8 49[16] 33 246 107
종합 스페인 98 31 13 3 18[17] 9 129 43
종합 잉글랜드 16 9 ? ? - - ? ? 2부리그

각주

  1. 위키백과에는 스트라이커로 되어 있는데 사실 전성기는 라이트윙으로 뛰었다. 예전 선수들의 포지션을 괜히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로 단순하게 구별하는 게 아니다.
  2. 올림픽 이전에 독일에서 열렸던 친선대회에서 시몬센이 활약해서 이미 눈독들이고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3. 이건 덴마크쪽 얘기고 독일쪽에서는 시몬센이 팀에 잔류하기를 원했다고. 누구 말이 맞는 거야
  4. 묀헨글라트바흐와 리버풀은 70년대 유럽대회에서 3번 만나서 3번 다 리버풀이 이겼다. 하지만 두 팀간의 사이는 좋아서 지금까지도 서로 친선교류를 할 정도.
  5. 당시 잉글랜드 기자인 BBC의 맥스 마퀴가 시몬센을 3위로 뽑으면서 키건은 아예 뽑지 않았는데 이 덕분에 시몬센이 수상자가 되어 화제였다.
  6. 마지막 1경기만 남겨놓고 1. FC 쾰른은 묀헨글라트바흐와 승점 동률이지만 골득실에서 10골이나 앞서있었고 강등이 확정된 꼴찌 FC 장크트 파울리를 상대하기 때문에 우승이 확실시되었다. 그러나 묀헨글라트바흐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12:0이라는 압승을 거두는 괴력을 선보였고, 쾰른은 3골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우승을 차지했다.
  7. 하인케스는 은퇴, 비머는 고향의 아마추어팀에서 뛰려했으나 부상으로 은퇴, 비트캄프도 아마추어팀으로 갔다.
  8. 1년 전에 이미 바르셀로나의 오퍼가 있었지만 클럽이 거부했고, 결국 1년 뒤에 팀을 떠난 것. 함부르크와 유벤투스도 제의를 했었다는데 둘 중 한 팀으로 갔으면 훨씬 많은 트로피를 얻었을 것이다.
  9. 키니는 25일만에 풀려났지만 그동안 팀은 1무 3패에 그쳤으며 특히 리그 1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진 경기는 치명적이었다.
  10. 충격적인 일에도 불구하고 키니는 득점왕을 차지했고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을 우승시켰다.
  11. 당시에는 1승의 승점이 2점이었고 승자승 어드밴티지를 바르셀로나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2승 1무 2패만 해도 우승할 수 있었으나 2무 3패에 그쳤다.
  12. 그러나 1983년미셸 플라티니가 군계일학이었던 때라 시몬센이 정말 유럽에서 손꼽히는 선수였다기보다는 1위 외의 자리가 무주공산일 때 기존의 유명세 덕에 반사이익을 얻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13. 여기에 후술할 잉글랜드전의 영향도 있다.
  14. 인터콘티넨털컵 포함
  15. UEFA 슈퍼컵 포함
  16. 인터콘티넨털컵 포함
  17. UEFA 슈퍼컵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