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데스리가

1 개요[편집]

푸스발-분데스리가(Fußball-Bundesliga)는 독일의 프로 축구리그이다. 직역하면 축구연방리그(축구Fußbal+연방Bundes+리그Liga)다. 군대스리가의 어원(...)이기도 하다. 14-15시즌 기준 한국인 선수가 가장 많이 진출한 리그라고 카더라.[1] 원래 분데스리가는 Bundes(연방)과 Liga(리그)의 합성어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여러 프로리그가 사용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독일의 축구리그를 의미하며 특히 1부리그를 지칭한다.[2] 우승팀은 마이스터(Meister)라고 부르며, 전반기 우승팀은 가을마이스터(Herbstmeister)라고 부른다. 우승트로피의 이름은 마이스터샬레(Meisterschale)로 생긴 게 접시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14-15시즌 UEFA 포인트에서 프리메라리가, EPL에 이어 3위를 기록중이며, 15/16시즌에는 EPL을 제치고 2위로 시작하게 된다.

2 특징[편집]

'빅리그'라는 범주로 묶이는 프리메라리가, EPL, 세리에 A 등은 20개 클럽으로 구성되지만 분데스리가는 18개 클럽이 참가한다. 이 때문에 38경기가 아닌 34경기를 소화하며, 약 한 달간의 겨울 휴식기간이 존재한다. 덕분에 체력을 아낀 분데스리가 클럽들이 UEFA 주관 클럽대항전에서 이득을 본다고 불공정하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경기수가 적다는 것은 클럽이 얻을 수 있는 수익도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니 일장일단이 있다. 그냥 자기들도 경기수 줄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탈리아의 세리에A가 18개팀으로 줄인다고 한다!

분데스리가를 상징하는 제도로 50+1 룰이 있다. 분데스리가 라이센스를 유지하려면 총회 의결권의 과반을 클럽과 서포터가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50+1이란 이름은 여기서 나왔으며, 이 규정 때문에 분데스리가의 클럽들은 타리그와는 달리 개인구단주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FM처럼 부자 구단주 그런 거 없다 축구를 공공재로 여기는 독일축구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제도이며, 일각에서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큰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3] 이 제도에도 예외는 있는데 기업 노동자들의 사내(社內)클럽으로 출발한 레버쿠젠볼프스부르크는 모기업이 존재하며, 호펜하임은 구단주가 존재한다.[4][5] 2015/16시즌 승격이 확정된 잉골슈타트 04 역시 아우디를 모기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논란이 예상되며 승격에 실패한 레드불RB 라이프치히는 승격을 위한 막대한 투자를 예고해 추후 문제가 될 전망이다.

용병에 대한 제한이 딱히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스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어린 선수를 많이 기용하는 편이다.[6] 열정적인 서포팅을 위해 경기장에서 입석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며, 티켓값도 상대적으로 타 빅리그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당연하지만 추가수익을 얻기 위해 팬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7] 인저리타임이 짧은 편이고, 특히 후반에는 아예 안 주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는데 2000/01시즌 추가시간에 우승팀이 뒤바뀐 사건 때문에 그렇다는 썰이 있다. 자세한 것은 4분 마이스터 참고.

다른 리그와 마찬가지로 우승횟수에 따라 유니폼에 다는 별의 갯수가 다르지만 그 기준이 조금 다르다. 독일어로는 마이스터슈테른(Meisterstern)이라고 하는데 10회 우승마다 늘어나는 게 아니라 3/5/10/20으로 일정하지 않다. 현재 바이언이 유일하게 4개를 달고 있고, 도르트문트묀헨글라트바흐가 2개, 브레멘함부르크, 슈투트가르트가 1개를 달고 있다. 포인트는 오직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의 우승만 쳐준다. 그래서 뉘른베르크샬케 같은 팀들은 우승 경력이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별이 없다. 지금은 하부리그에 있는 동독 클럽들도 마찬가지로 별이 없다.

3 역사[편집]

3.1 분데스리가의 탄생[편집]

1888년 잉글랜드에서 최초의 전국 축구리그가 열린 이래 유럽의 여러 국가들도 통합리그를 출범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에는 2차대전 이후까지도 전국 단위의 리그가 없었으며 여러 지역리그의 우승자들이 모여 토너먼트를 통해 최종 승자를 정했다.[8] 1955년에 최초의 유럽 클럽대항전인 유러피안컵이 탄생하고 유럽과 남미의 여러 축구선수들이 국가를 막론하고 활약하는 등 본격적인 클럽축구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에 서독의 축구인들은 독일축구가 도태되는 것을 우려해 전국 각지의 클럽들이 참여하는 프로리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쾰른의 회장 프란츠 크레머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DFB는 스포츠에 시장경제가 개입하는 것을 우려하여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1958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회의에서 안건이 기각되었다.[9] 그러나 1962 월드컵에서 서독이 유고슬라비아에게 8강전에서 패하자 여론이 바뀌어 결국 1962년 7월 도르트문트 회의에서 분데스리가 창설이 통과되었다.

당시 서독에는 오버리가라고 하는 5개의 지역리그가 존재했는데 서부와 남부에서 5팀, 북부에서 3팀, 남서부에서 2팀, 베를린에서 1팀을 뽑아 총 16개 팀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등록된 클럽의 수와 최근 성적들을 고려한 결과로 5개리그의 전체 74개 클럽 중 기한 내에 서류를 제출한 46개팀을 대상으로 심사에 들어갔다. 12년간의 성적을 계량화한 이른바 12년 랭킹이 만들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1도시 1클럽 정책을 적용하여 16개 팀이 선정됐으나 꼭 평가 순위대로 선정한 것은 아니었다. 프로화 이후 클럽들이 재정위기를 겪을 것을 우려하여 경제적 조건을 고려하였으며 클럽의 기반시설 역시 평가대상이었으나 정치적인 선택을 위한 명분 만들기라는 비판도 있었다.

1963년 1월쾰른, 도르트문트, 샬케, 브레멘, 프랑크푸르트, 뉘른베르크, 자르브뤼켄, 함부르크, 헤르타 이상 9개 클럽이 선정되었고 15개 클럽은 후보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 1도시 1클럽 정책에 따라 베를린의 두 클럽을 제외하고 20개 클럽이 남은 7자리를 두고 다투게 되었으며 1963년 5월에 최종적으로 결정된 멤버는 프로이센 뮌스터, 마이데리허 SV[10], 브라운슈바이크, 카이저슬라우턴, 1860 뮌헨, 슈투트가르트, 칼스루에였다. 탈락한 13개 클럽은 2부리그로 합류하게 됐으나 당연히 클럽 선정이 적절했는가를 두고 격렬한 논란이 있었다. 그럼에도 변경은 없었고 이대로 분데스리가의 막이 올랐다.

최초의 16개 클럽을 지역에 따라 분류한 다음 12년 랭킹 순위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3.2 초창기(1963-1968)[편집]

초창기는 분데스리가의 시작인 1963년부터 뉘른베르크가 우승한 1968년까지를 말하며 1967/68시즌까지 매시즌 우승팀이 바뀌고 팀들의 순위가 요동치던 시기다.[11] WM과 4-2-4 포메이션을 쓰는 팀들이 우승했던 시기와 4-3-3이 우승한 시기로 구별할 수도 있다. 혹자들은 1971년까지 초창기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1971년승부조작이 있었고, UEFA 유로 1972에서 서독이 우승하면서 독일축구의 전성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우승은 일찌감치 프로화를 추진했던 서부의 강호 쾰른이 차지했으며 특혜 논란이 있던 자르브뤼켄이 최초의 꼴찌팀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12] 그러나 오버리가에서의 실적이 그대로 성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는데 역시 논란이 있던 마이데리허 SV는 첫 준우승팀이 되었다. 또 북독일의 제왕 함부르크[13]가 지지부진하는 동안 북부리그의 2인자였던 브레멘이 2번째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으며 남서부리그 마지막 챔피언이자 최고의 명문이던 카이저슬라우턴이 강등권을 전전하기도 했다.

1965/66시즌에는 헤르타가 부정계약으로 인해 강등당했고 18개 팀으로 리그가 확장됐다.[14] 이때 승격한 세 클럽은 모두 분데스리가 역사에 한 획을 그었는데 바이언글라트바흐는 70년대 유럽 최고의 팀으로 성장했고, 베를린에 분데스리가 팀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승격된 타스마니아 베를린은 역대 최악의 클럽으로 이름을 남겼다.좋은 쪽으로 이름을 남겼다고는 안 했다?

분데스리가의 출범 이후 독일축구는 목표였던 경쟁력 강화에 성공했는데 서독 국가대표팀은 1966 월드컵에서 결승전까지 진출했다.[15] 클럽무대에서는 1966년 도르트문트가 독일 클럽 최초로 유럽 클럽대항전인 UEFA 컵 위너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듬해에는 바이언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3.3 거인의 시대(1969-1978)[편집]

1969년부터 1978년까지 9시즌 동안 분데스리가의 헤게모니는 두 거인이 장악했다. 1968/69시즌 바이언이 첫 우승을 가져가자 보란듯이 글라트바흐가 분데스리가 최초의 2연패를 달성했고, 바이언은 질 수 없다는 듯이 분데스리가 3연패를 이룩했다. 글라트바흐도 뒤따라 3연패에 성공했으며, 이 두 팀의 우승독식은 1977/78시즌에 쾰른마이스터샬레를 차지하면서 겨우 끝났다.[16] 고만해, 미친놈들아!

이 두 팀은 단순히 리그 우승을 많이 차지하는데 그치지 않고 유럽 클럽대항전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바이언레알 마드리드, 아약스에 이어 3번째로 유러피언컵 3연패를 달성했으며[17], 글라트바흐유러피언컵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으나 준우승을 거두고 UEFA컵에서는 4차례나 결승에 올라[18] 당대 축구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강호로 자리매김했다.[19][20] 이런 활약 덕분에 1976년에 분데스리가는 최초로 UEFA 리그랭킹에서 1위에 올랐는데 그렇다고 바이언글라트바흐만 강한 건 아니어서 1976/77시즌에 함부르크UEFA 컵 위너스컵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스타플레이어도 여럿 등장했는데 게르트 뮐러1970년 독일인 최초로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으며[21], 프란츠 베켄바우어요한 크라위프와 함께 유럽축구계를 양분하는 슈퍼스타였다. 국가대표팀유로 19721974 월드컵에서의 연이은 우승을 차지하며 황금기를 보내고 있었고, 1976년 쾰른이 벨기에 국가대표 선수 로저 판 훌을 거액으로 영입하면서 선수들의 이적료와 연봉도 급증하기 시작해 뛰어난 선수들이 계속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1977년함부르크가 영입한 케빈 키건이 있는데 당시 잉글랜드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고, 분데스리가에서의 3시즌동안 발롱도르 2위-1위-1위를 기록했다.[22]

이런 황금기는 자연스레 찾아온 게 아니라 위기를 극복한 결과였다.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관중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었는데 축구팬들은 낙후된 경기장을 찾아가는 것보다 TV를 통해 시청하는 것을 선호했다. 여기에 1971년에 터진 승부조작은 분데스리가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630만명에 이르렀던 총 관중수는 500만명 수준으로 추락했고 독일축구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국가대표팀의 선전, 특히 1974 월드컵의 우승은 축구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불러일으켰고,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개선된 인프라와 뛰어난 선수들이 펼치는 높은 수준의 경기들은 이런 바람에 부응했다. 상승세는 꾸준히 이어졌으며 특히 UEFA컵에서의 활약과 맞물려 8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이어갔다.

3.4 함부르크의 귀환(1979-1983)[편집]

1970년대를 풍미했던 글라트바흐는 작은 홈구장 탓에 재정적 한계가 있었고, 지속적으로 선수들을 잃으면서 독보적인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와야만 했다.[23]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오랜기간 잠들어 있던 북독의 거인 함부르크였는데 4-3-3이 지배하던 분데스리가에 4-4-2를 꺼내들고 부진하던 케빈 키건이 적응을 마치면서 단숨에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강호로 자리잡았다.[24]

이어 오랫동안 리그 우승에 목말랐던 바이언이 재정비를 마치고 함부르크와 분데스리가의 패권을 두고 다퉜으며 슈투트가르트쾰른, 여기에 강등당했던 브레멘이 가세하고 글라트바흐가 도전자의 입장으로 합류하여 더욱 치열한 우승경쟁이 벌어졌다. 1979/80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에 함부르크가 오르고 UEFA컵 4강이 모두 서독 클럽으로 채워진 것은 분데스리가의 강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었다.[25][26] 1980년대 초반에 분데스리가 클럽들은 유럽 클럽대항전에서 꾸준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유로 1980의 우승과 1982 월드컵의 우승 등 서독 선수들의 활약도 이어졌다. 1982/83시즌 함부르크가 이탈리아의 거함 유벤투스를 꺾고 유러피언컵에서 우승한 것은 그 절정이었다.[27]

그러나 유럽 클럽대항전에서 거둔 호성적과 별개로 분데스리가의 지위는 흔들리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세리에 A가 막대한 자금을 앞세워 세계 각지의 스타플레이어들을 영입하고 있었고, 자금력이 뒤처지는 분데스리가로선 이적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려웠다. 파우캉, 미셸 플라티니, 지쿠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이탈리아로 향했으며 스타플레이어들을 향한 이탈리아 클럽들의 구애는 계속되었다. 사실 함부르크의 승리는 황금기에 작별을 고하는 마지막 무대이기도 했다.

3.5 전성기의 끝(1984-1990)[편집]

1984년, 서독의 아이콘이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라우턴의 간판스타 한스-페터 브리겔이 이탈리아로 떠났다.[28] 1983/84시즌 분데스리가는 UEFA 리그포인트에서 17위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고 이 여파로 마침내 1985년에 UEFA 리그 랭킹 1위에서 밀려났다. 이후에도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이탈이 계속되었는데 월드컵 국가대표팀 명단을 보면 해외파의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남을 알 수 있다.[29] 네오나치의 득세와 강성 훌리건들에게 지친 독일인들이 축구장을 떠나기 시작해 관중수도 급감했다.[30]

리그 내의 판도는 여전히 남부와 북부 팀이 우승을 가져가고 서부 팀들이 우승경쟁의 들러리로 머무르는 모양새였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바이언의 전력이 두드러졌다. 다만 이전의 강팀들과는 달리 끝내 클럽대항전 우승은 하지 못하고 결승에 주저앉고 말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중위권이었던 레버쿠젠UEFA컵 트로피를 차지한 게 유일한 우승이었다.[31]

이처럼 리그가 침체되어 있던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분데스리가가 완전히 도태된 것은 아니었다. 1990년에 잠시나마 정상을 탈환하기도 했으며 엄밀히 말해 1983/84시즌에 겪은 이례적인 부진만 아니었다면 1위 자리를 더 지킬 수도 있었다. 즉 최고의 리그에서 내려온 것이지 아직 빅리그의 자리까지 내준 것은 아니었다.

3.6 격동의 시대(1991-1999)[편집]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1990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다시 축구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1991년에는 독일의 통일로 인해 동독의 오버리가와 통합되어 동부지방의 클럽들이 리그에 참여하기도 했으며,[32] 프리미어[33]에서 중계를 시작하고 이듬해에는 Sat.1도 합류했다. 유례없는 혼전의 시기로 특정 클럽의 독주 없이 여러 팀들이 번갈아 우승을 차지했으며, 도르트문트가 이탈리아에서 뛰던 국가대표 선수들을 불러들여 강호로 급부상했다. 비록 리그 순위는 3위권으로 밀려났지만 꾸준히 클럽대항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도르트문트UEFA 챔피언스 리그를, 브레멘UEFA 컵 위너스컵에서, 바이언샬케UEFA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여전히 예전의 위치를 되찾지는 못했으며 오히려 일시적으로 리그랭킹 4위로 내려앉기도 했다.

한편 새로운 클럽들이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했는데 프라이부르크는 승격 후 2번째 시즌만에 3위에 오르며 축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반면 전통의 명문들이 강등의 수모를 겪었으며 특히 초대 우승팀 쾰른마저 강등을 당하며 함부르크만이 지금까지 유일한 개근 클럽으로 남아 있다. 흥미로운 기록 하나로는 카이저슬라우턴의 1997/98시즌 우승이 있는데 클럽 역사상 최초의 강등을 당하자마자 2부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승격하자마자 다시 1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34]

3.7 밀레니엄과 암흑기(2000-2009)[편집]

2000년대 들어 분데스리가는 심각한 수렁에 빠지게 됐다. 미디어그룹 키르히의 파산은 TV 중계권료의 성장을 가로막았으며, 재정의 제약으로 인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타 국가의 리그들과 비교하면 분데스리가는 뒤처지고 있었다. 리그 내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바이언의 독주가 계속됐으며,[35] 클럽 대항전에서는 독일 클럽들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독일 국가대표팀에게 역대 최악이라는 혹평이 쏟아지는 등 독일 선수들의 발굴도 요원했다.

물론 밀레니엄 직후만 하더라도 분데스리가의 전망이 나쁘지는 않아보였다. 바이언레버쿠젠이 연달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올랐으며, 사상 최악의 전력이라던 2002 월드컵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데스리가가 경쟁력을 잃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었고, 각종 악재가 터지면서 리그의 쇠락은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특히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클럽이던 도르트문트의 몰락은 분데스리가의 현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었으며 한때 분데스리가는 '빅3'에서 밀려나다 못해 6위까지 추락할 뻔했다.[36]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DFB는 미래를 준비하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고, 2006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독일축구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수 년에 걸친 투자의 결실은 국가대표팀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고, 2000년대 후반에는 분데스리가 클럽들의 성장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3.8 새로운 전성기(2010-)[편집]

2010년대에 들어서 분데스리가는 '빅3'로의 복귀에 성공했으며, '황금세대'로 불리는 젊은 선수들이 대거 출현해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바이언도르트문트 두 독일 클럽들의 결승이 이뤄지고, 2014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독일축구의 새로운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선두에는 바이언이 있는데 2012/13시즌 독일 클럽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하는 등 모처럼 독일의 맹주다운 모습을 과시하며 유럽 최강클럽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2015/16시즌에는 리그랭킹 2위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는 1998년 이후 17년 만의 일이다.

4 기록[편집]

4.1 역대 우승팀[편집]

시즌 우승팀 준우승팀 3위팀
1963/64 Koeln.png 1. FC 쾰른 Msv duisburg(neu).svg 마이데리허 SV Eintracht Frankfurt Logo.svg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64/65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Koeln.png 1. FC 쾰른 Borussia Dortmund logo.sv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65/66 TSV 1860 München.svg TSV 1860 뮌헨 Borussia Dortmund logo.sv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1966/67 Eintracht Braunschweig.png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TSV 1860 München.svg TSV 1860 뮌헨 Borussia Dortmund logo.sv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67/68 1. FC Nürnberg logo.svg 1. FC 뉘른베르크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Borussia Mönchengladbach logo.svg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68/69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Alemannia Aachen 2010.svg 알레마니아 아헨 Borussia Mönchengladbach logo.svg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69/70 Borussia Mönchengladbach logo.svg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Hertha BSC Logo 2012.svg 헤르타 BSC
1970/71 Borussia Mönchengladbach logo.svg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Hertha BSC Logo 2012.svg 헤르타 BSC
1971/72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Schalke 04.svg FC 샬케 04 Borussia Mönchengladbach logo.svg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2/73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Koeln.png 1. FC 쾰른 Fortuna Düsseldorf.svg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73/74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Borussia Mönchengladbach logo.svg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Fortuna Düsseldorf.svg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74/75 Borussia Mönchengladbach logo.svg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Hertha BSC Logo 2012.svg 헤르타 BSC Eintracht Frankfurt Logo.svg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75/76 Borussia Mönchengladbach logo.svg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HSV-Logo.svg 함부르거 SV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1976/77 Borussia Mönchengladbach logo.svg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Schalke 04.svg FC 샬케 04 Eintracht Braunschweig.png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1977/78 Koeln.png 1. FC 쾰른 Borussia Mönchengladbach logo.svg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Hertha BSC Logo 2012.svg 헤르타 BSC
1978/79 HSV-Logo.svg 함부르거 SV VfB Stuttgart Logo.svg VfB 슈투트가르트 Logo 1 FC Kaiserslautern.svg 1. FC 카이저슬라우턴
1979/80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HSV-Logo.svg 함부르거 SV Logo 1 FC Kaiserslautern.svg 1. FC 카이저슬라우턴
VfB Stuttgart Logo.svg VfB 슈투트가르트
1980/81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HSV-Logo.svg 함부르거 SV VfB Stuttgart Logo.svg VfB 슈투트가르트
1981/82 HSV-Logo.svg 함부르거 SV Koeln.png 1. FC 쾰른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1982/83 HSV-Logo.svg 함부르거 SV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VfB Stuttgart Logo.svg VfB 슈투트가르트
1983/84 VfB Stuttgart Logo.svg VfB 슈투트가르트 HSV-Logo.svg 함부르거 SV Borussia Mönchengladbach logo.svg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84/85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Koeln.png 1. FC 쾰른
1985/86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Kfc 05 uerdingen.svg FC 바이어 05 위어딩겐
1986/87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HSV-Logo.svg 함부르거 SV Borussia Mönchengladbach logo.svg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87/88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Koeln.png 1. FC 쾰른
1988/89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Koeln.png 1. FC 쾰른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1989/90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Koeln.png 1. FC 쾰른 Eintracht Frankfurt Logo.svg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90/91 Logo 1 FC Kaiserslautern.svg 1. FC 카이저슬라우턴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1991/92 VfB Stuttgart Logo.svg VfB 슈투트가르트 Borussia Dortmund logo.sv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Eintracht Frankfurt Logo.svg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92/93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Eintracht Frankfurt Logo.svg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93/94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Logo 1 FC Kaiserslautern.svg 1. FC 카이저슬라우턴 Bayer 04 Leverkusen Logo.svg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4/95 Borussia Dortmund logo.sv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SC-Freiburg Logo-neu.svg SC 프라이부르크
1995/96 Borussia Dortmund logo.sv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Schalke 04.svg FC 샬케 04
1996/97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Bayer 04 Leverkusen Logo.svg 바이어 04 레버쿠젠 Borussia Dortmund logo.sv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7/98 Logo 1 FC Kaiserslautern.svg 1. FC 카이저슬라우턴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Bayer 04 Leverkusen Logo.svg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8/99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Bayer 04 Leverkusen Logo.svg 바이어 04 레버쿠젠 Hertha BSC Logo 2012.svg 헤르타 BSC
1999/00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Bayer 04 Leverkusen Logo.svg 바이어 04 레버쿠젠 Schalke 04.svg FC 샬케 04
2000/01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Schalke 04.svg FC 샬케 04 Borussia Dortmund logo.sv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1/02 Borussia Dortmund logo.sv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Bayer 04 Leverkusen Logo.svg 바이어 04 레버쿠젠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2002/03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VfB Stuttgart Logo.svg VfB 슈투트가르트 Borussia Dortmund logo.sv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3/04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Bayer 04 Leverkusen Logo.svg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4/05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Schalke 04.svg FC 샬케 04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2005/06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HSV-Logo.svg 함부르거 SV
2006/07 VfB Stuttgart Logo.svg VfB 슈투트가르트 Schalke 04.svg FC 샬케 04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2007/08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Schalke 04.svg FC 샬케 04
2008/09 Vfl wolfsburg.png VfL 볼프스부르크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VfB Stuttgart Logo.svg VfB 슈투트가르트
2009/10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Schalke 04.svg FC 샬케 04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2010/11 Borussia Dortmund logo.sv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Bayer 04 Leverkusen Logo.svg 바이어 04 레버쿠젠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2011/12 Borussia Dortmund logo.sv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Schalke 04.svg FC 샬케 04
2012/13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Borussia Dortmund logo.sv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Bayer 04 Leverkusen Logo.svg 바이어 04 레버쿠젠
2013/14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Borussia Dortmund logo.sv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Schalke 04.svg FC 샬케 04
2014/15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Vfl wolfsburg.png VfL 볼프스부르크 Borussia Mönchengladbach logo.svg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

4.2 역대 우승 순위[편집]

팀명 우승 준우승 3위
Logo FC Bayern München.png FC 바이에른 뮌헨 24 10 5
Borussia Dortmund logo.sv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5 4 5
Borussia Mönchengladbach logo.svg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 5 2 6
SV-Werder-Bremen-Logo.svg 베르더 브레멘 4 7 5
HSV-Logo.svg 함부르거 SV 3 5 2
VfB Stuttgart Logo.svg VfB 슈투트가르트 3 2 3
Koeln.png 1. FC 쾰른 2 5 2
Logo 1 FC Kaiserslautern.svg 1. FC 카이저슬라우턴 2 1 2
TSV 1860 München.svg TSV 1860 뮌헨 1 1 0
Vfl wolfsburg.png VfL 볼프스부르크 1 1 0
Eintracht Braunschweig.png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1 0 1
1. FC Nürnberg logo.svg 1. FC 뉘른베르크 1 0 0

4.3 역대 누적 승점 순위[편집]

4.4 역대 최다 출장 선수[편집]

순위 이름 경기
1 카를-하인츠 쾨벨 602
2 만프레트 칼츠 581
3 올리버 칸 557
4 클라우스 피히텔 552
5 미로슬라프 보타바 546
6 클라우스 피셔 535
7 아이크 이멜 534
8 빌리 노이베르거 520
9 미하엘 라메크 518
10 울리 슈타인 512

4.5 역대 최다 득점 선수[편집]

순위 이름 득점
1 게르트 뮐러 365
2 클라우스 피셔 268
3 유프 하인케스 220
4 만프레트 부르크스뮐러 213
5 울프 키어스텐 182
6 슈테판 쿤츠 179
7 클라우스 알로프스 177
7 디터 뮐러 177
9 클라우디오 피사로 176
10 하네스 뢰어 166

4.6 그밖의 기록[편집]

5 소속 클럽[편집]

추가바람

6 기타[편집]

한국에서는 군대 + 분데스리가를 합쳐서 '군대스리가'라고 부르곤 한다. 원래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쓰이던 군대 축구를 일컫는 별명 중 하나였는데, 국방부에서 2008년 축구 축제를 개최하면서 정식 명칭으로 정말 군대스리가를 썼다. #

7 각주

  1. 예전부터 차범근의 영향으로 일찍이 수많은 선수들이 도전했던 무대다. 대부분 망했지만(...)
  2. 2부리그의 명칭이 2. 분데스리가이며, 유소년 분데스리가도 존재한다.
  3. 2009년 있었던 총회에서 폐지 안건이 상정됐으나 부결됐다.
  4. SAP의 공동창립자인 디트마르 홉이 호펜하임의 실질적 구단주이지만 후원자 신분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5. 우리나라에서는 자수성가한 거부가 금의환향해 어렸을 적에 몸담았던 고향클럽을 키워준다는 스토리 때문에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현지에서는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시선이 곱지 않다. 이런 비판은 명분이 있는 레버쿠젠과 볼프스부르크도 예외는 아니다.
  6. 2000년대 초반에 독일의 국제대회 성적이 나빠지자 DFB에서 분데스리가 클럽들에게 의무적으로 유스 아카데미를 설치하게 하는 등 유스 정책을 갈아엎은 결과다.
  7. 실제로 도르트문트의 CEO 바츠케는 입석을 좌석으로 바꾸면 500만 유로의 수익을 얻겠지만 논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8. 이 분데스리가 이전 우승팀들은 '독일축구 챔피언'으로는 인정하나 '분데스리가 챔피언'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뉘른베르크샬케가 유니폼에 별을 달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심지어 샬케는 우승 못하는 팀이라고 까이기까지 한다...
  9. 사실 세미프로리그를 운영하고 있다고 서독축구가 위기를 맞고 있는 건 아니었다. 1954 월드컵 우승에 이어 1958 월드컵 4위였고, 유러피언컵에서도 8강팀까지는 배출하는 중이었다. 이후 1959/60시즌에 프랑크푸르트가 결승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10. 現 MSV 뒤스부르크. 안정환이 뛰었던 그 팀이다.
  11. 뉘른베르크는 10위에서 반등해 우승팀이 되었고, 그 다음시즌에는 17위로 강등당했다!
  12. 훗날 DFB의 회장이 되는 실력자 헤르만 노이베르거가 자를란트 출신이라 주도(州都)를 연고지로 하는 자르브뤼켄에게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있었다. 12년 랭킹에서 2등이었는데 안 뽑으면 역차별 아닌가?
  13. 북부리그 전체 16시즌 중 15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14. DFB는 시장경제가 스포츠를 좌우하는 것을 우려해 재정규제를 두었지만 당시 정치적인 문제로 선수들이 베를린에서 뛰는 것을 꺼리자 헤르타가 규정을 어기고 많은 급료를 지불하다 강등당했다. 그러자 원래 강등당했어야 할 샬케칼스루에가 잔류를 주장했고, 결국 강등 없이 승격만 이루어져 참가팀이 18개 팀으로 늘어나게 됐다. 한편 당시 급료 제한을 어기는 팀이 많았고 헤르타가 희생양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15. 연장전에서 서독이 허용한 결승골은 월드컵 역대 최악의 오심 중 하나로 꼽힌다. 훗날 2010 월드컵 16강전에서는 반대로 실점이 무효처리되어 이득을 봤다.
  16. 그러나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는 않았는데 마지막 3경기 동안 글라트바흐와 승점이 같았으며 골득실 3점 차이로 결정난 아슬아슬한 우승이었다. 특히 글라트바흐는 마지막 경기에서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12:0이라는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는 괴력을 선보였다.
  17. 아이러니하게도 첫 우승 이후 바이언은 리그에서 부진에 빠졌고, 팀에 영광을 안겨다준 명장 우도 라텍을 경질시키기까지 했다.
  18. 정확히는 이 시기에 1회 우승과 1회 준우승을 차지했고, 1978/79시즌과 1979/80시즌에 연거푸 결승에 올랐다.
  19. 글라트바흐는 1971/72시즌 유러피언컵 16강에서 이탈리아의 인테르를 상대로 홈에서 7:1의 승리를 거두고 전설적인 명장 맷 버스비에게서 완벽한 팀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 경기는 관중의 물건투척으로 무효처리되었고 인테르는 재경기를 통해 진출해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20. 글라트바흐는 잉글랜드의 리버풀과 3차례 맞붙어 모두 패했지만 이때의 인연으로 최근까지도 두 팀은 친선경기와 서포터 방문 등의 행사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1. 최종 3위 안에 뽑힌 건 1958년에 2위였던 헬무트 란이 최초였고 이후 우베 젤러, 카를-하인츠 슈넬링거,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2. 사실 이적 직후에는 적응에 실패해 부진하느라 2위에 그쳤던 거고 그것만 아니었으면 발롱도르 3연패도 가능했다.
  23. 귄터 네처, 라이너 본호프, 울리 슈틸리케, 알란 시몬센, 그리고 조금 뒤지만 로타 마테우스까지.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지?
  24.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3-5-2로 전술을 바꿨고, 이후 분데스리가는 3-5-2가 주류가 되었다.
  25. 유럽 클럽대항전 4강이 같은 국가로 채워진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26. 그러나 함부르크는 결승에서 잉글랜드의 노팅엄 포레스트에게 패했다.
  27. 당시 유벤투스1982 월드컵 우승멤버를 6명이나 보유하고 있었고, 2명의 외국인은 당시 최고의 선수로 떠오르던 미셸 플라티니와 폴란드를 월드컵 4강으로 이끈 즈비그니에브 보니에크였다.
  28. 디에고 마라도나도 이때 이탈리아로 와서 1982 월드컵이 열릴 때 세계 최고의 선수로 여겨지던 3 1시즌뿐이지만 같은 리그에서 뛰었다.
  29. 1982 월드컵1986 월드컵 명단에는 각각 1명과 2명의 해외파만 있었지만, 1990 월드컵에선 5명, 1994 월드컵 때는 6명까지 늘어났다.
  30. 여기에는 축구 외적인 문제도 있었는데, 보리스 베커와 슈테피 그라프라는 테니스 스타의 출현으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축구로부터 멀어진 영향도 있다.
  31. 그렇다 차범근이 바로 이 우승의 주인공이다.
  32. 동독의 두 클럽이 합류하면서 1991/92시즌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0개클럽 체제로 진행됐다.
  33. 現 Sky Germany
  34. 당연히 지금까지도 분데스리가에서 승격팀이 우승한 유일한 사례다.
  35. 밀레니엄을 전후한 3연패는 정말 아슬아슬한 우승이었지만 이후에는 일방적인 우승이 잦아졌다.
  36. 지금이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 분데스리가 팬들은 루마니아에게 추월당할까봐 전전긍긍할 정도였다.
  37. 2014/15시즌에 강등당했다.
  38. 2014/15시즌에 강등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