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낙안읍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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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사적]][[분류:한국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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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순천 낙안 읍성(樂安邑城)
*위치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 위치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축성시기 : [[1397년]]
* 축성시기 : [[1397년]]
*문화재 지정 : [[사적]] 제302호
* 문화재 지정 : [[사적]] 제302호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조선]]시대에 축성된 읍성.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본래는 흙으로 만든 [[토성]]이었지만, [[1424년]]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조선]]시대에 축성된 [[읍성]].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쌓은 성이다. 본래는 흙으로 만든 [[토성 (건축물)|토성]]이었지만, 전국의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라는 명이 내려진 [[1424년]](세종 6년)에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제원==
성둘레 약 1.4km의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읍성]]이며, 중간에 야트막한 야산을 끼고 축성이 되어서 평산성의 형태를 가지고 있음. 성문은 3개소로 현재 서문은 문루는 사라진 상태이나 남문과 동문은 평거식 성문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성문 앞의 옹성과 치, 그리고 약간의 여장이 존재하고 있으며 남문과 동문 사이 구간에 해자가 그대로 남아있다.
성둘레 : 약1.4km의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읍성이며, 중간에 야트막한 야산을 끼고 축성이 되어서 평산성의 형태를 가지고 있음. 성문은 3개소로 정문인 남문에는 옹성과 치(적대)가 존재하고 있다.


==특성==
==특성==
조선시대 읍성 가운데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는 하나이다. 여기에 낙안읍성 내부의 마을은 낙안민속마을이라고 하여서 전통마을의 형태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심지어 사람이 실제로 살고 있으면서 초가지붕은 매년 가을에 초가를 갈아주는 모습까지 나타난다.
조선시대 [[읍성]] 가운데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는 세 곳의 [[읍성]] 하나로(다른 곳으로는 [[해미읍성]]과 [[고창읍성]]이 있다) 다른 2개의 읍성과 달리 성 내부 마을이 그대로 남아서 기능하고 있으며, 낙안민속마을라는 전통마을의 형태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심지어 사람이 실제로 살고 있으면서 초가지붕은 매년 가을에 초가를 갈아주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찾아가는 법==
우리나라에너는 돌로 쌓은 성곽의 경우 토축을 먼저 한 뒤 성 바깥쪽만 돌을 두르는 내탁법을 주로 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 낙안읍성은 성벽 내부도 돌을 두른 협축법을 사용하여 쌓은 성곽이다.
*자동차 : [[네비게이션]]에서 낙안읍성이나 낙안민속마을을 찍으면 쉽게 갈 수 있다. 만일 네비가 없다면 순천에서 58번 국가지원지방도나 보성의 벌교읍에서 [[지방도 857호선]]을 타고 표지판을 잘 따라가도록 하자. {{ㅊ|정말로 내비가 없다면 티맵이나 올레내비라도 켜도록 하자}}
 
*대중교통 : [[순천역]]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1시간 남짓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외에도 [[보성군]] [[벌교읍]]에서 낙안으로 가는 버스가 있으므로 이를 이용하면 된다. 참고로 순천보다는 벌교가 거리가 훨씬 더 가깝고 버스도 많이 다닌다. {{ㅊ|애당초 벌교가 바로 낙안군의 관할구역이었지만 일제놈들이 낙안군을 폐군하는 병크를 저질러서 말이지...}}
==위치==
*자동차 : [[네비게이션]]에서 낙안읍성이나 낙안민속마을을 찍으면 쉽게 갈 수 있다. 만일 네비가 없다면 순천에서 [[58번 국가지원지방도|58번 국가지원지방도]]나 보성의 [[벌교읍]]에서 [[857번 지방도]]을 타고 표지판을 잘 따라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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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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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내에는 옛 [[낙안군]] 관아도 보존되어 있다. 참고로 조선시대만 하여도 낙안군은 순천과는 독립된 별개의 고을이었다. 하지만 [[1908년]], 일제는 벌교 지역에서 일어난 안규홍의 의병 활동에 대한 보복으로 '''낙안군을 폐군해 버리고''' 군을 쪼개서 각각 순천과 보성에 편입시켰다.(심지어 [[부군면 통폐합]] 이전의 일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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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의 성]]
[[분류: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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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0일 (수) 17:41 기준 최신판

순천 낙안읍성
낙안읍성.JPG
건축물 정보
주소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서·남내리 299-1번지
총면적 223,108 m2
문화재 정보
종목 사적 제302호
지정일 1983년 6월 14일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조선시대에 축성된 읍성.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쌓은 성이다. 본래는 흙으로 만든 토성이었지만, 전국의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라는 명이 내려진 1424년(세종 6년)에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성둘레 약 1.4km의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읍성이며, 중간에 야트막한 야산을 끼고 축성이 되어서 평산성의 형태를 가지고 있음. 성문은 3개소로 현재 서문은 문루는 사라진 상태이나 남문과 동문은 평거식 성문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성문 앞의 옹성과 치, 그리고 약간의 여장이 존재하고 있으며 남문과 동문 사이 구간에 해자가 그대로 남아있다.

특성[편집 | 원본 편집]

조선시대 읍성 가운데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는 세 곳의 읍성 중 하나로(다른 곳으로는 해미읍성고창읍성이 있다) 다른 2개의 읍성과 달리 성 내부 마을이 그대로 남아서 기능하고 있으며, 낙안민속마을라는 전통마을의 형태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심지어 사람이 실제로 살고 있으면서 초가지붕은 매년 가을에 초가를 갈아주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너는 돌로 쌓은 성곽의 경우 토축을 먼저 한 뒤 성 바깥쪽만 돌을 두르는 내탁법을 주로 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 낙안읍성은 성벽 내부도 돌을 두른 협축법을 사용하여 쌓은 성곽이다.

위치[편집 | 원본 편집]

  • 자동차 : 네비게이션에서 낙안읍성이나 낙안민속마을을 찍으면 쉽게 갈 수 있다. 만일 네비가 없다면 순천에서 58번 국가지원지방도나 보성의 벌교읍에서 857번 지방도을 타고 표지판을 잘 따라가도록 하자.
  • 대중교통 : 순천역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1시간 남짓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외에도 보성군 벌교읍에서 낙안으로 가는 보성교통 버스가 있으므로 이를 이용하면 된다. 참고로 순천보다는 벌교가 거리가 훨씬 더 가깝고 버스도 많이 다닌다.(심지어 길도 이쪽이 훨씬 더 편하다. 순천쪽은 꼬부랑 산길을 넘어야 하지만 벌교방면은 완전 평지길)

기타[편집 | 원본 편집]

폐군 직전 낙안군의 영역.
  • 성 내에는 옛 낙안군 관아도 보존되어 있다. 참고로 조선시대만 하여도 낙안군은 순천과는 독립된 별개의 고을이었다. 하지만 1908년, 일제는 벌교 지역에서 일어난 안규홍의 의병 활동에 대한 보복으로 낙안군을 폐군해 버리고 군을 쪼개서 각각 순천과 보성에 편입시켰다.(심지어 부군면 통폐합 이전의 일이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