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

Jks84562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7월 17일 (금) 18:37 판

영어 : (South) Korean Won [1]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통화로 한국 원이라고도 한다. ISO 4217코드는 KRW, 기호는 ₩이다. 보조단위로 전(Jeon)이 설정되어 있으나 환율계산과 같은 상황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은 1.6%(2014년 7월 추정)이다.

2기

2기 시리즈의 "원" 단위의 모든 화폐는 지금도 쓸 수 있으며, 공식적으로 한국은행 및 시중은행에서 현행권과 교환이 가능하다. (단, 전(Jeon)은 안 된다.) 사용시에는 액면가 그대로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초창기 발행 권종들은 수집가 등에게 팔면 몇십배 내지는 몇천배~몇만배까지도 받을 수 있어서 사용하는 게 손해라는 것이 포인트이다. 몰론... 보기에 좋은것만 그러니 너무 기대하지는 말 것.

이하 분류는 사용 시대순으로 분류한 것으로, 한국은행에서는 권종별로 가나다순을 붙여서 분류하고 있다. 예로 현행권은 가 오만원, 바 만원, 마 오천원, 다 천원. 이 방식은 1993년에 채택한 방식으로 이전에는 갑을병정 순으로 붙였다.

5차 (2006 ~ 현재)

Hanguk Won 5th Series
모습 분류 액면 인물 앞면 뒷면
1,000원 퇴계이황 명륜당(성균관), 매화 계상정거도
5,000원 이이율곡 오죽헌 몽룡실 초충도 2점 (신사임당 작품)
10,000원 세종대왕 일월오봉도, 용비어천가 혼천의, 천상열차분야지도, 보현산 천문대망원경
50,000원 신사임당 묵포도도, 초충도수병 월매도, 풍죽도

4차 (1983 ~ 2007)

Hanguk Won 4th Series
모습 분류 액면 인물 앞면 뒷면
1,000원 퇴계이황 투호, 사슴 도산서원
다, 라 5,000원 이이율곡 벼루, 학 오죽헌
다, 라, 마 10,000원 세종대왕 물시계, 용 경회루

2차 & 3차 (1962 ~ 1982)

이 시대는 원화의 혼돈기라 볼 수 있다. 2차와 3차는 몰론, 1차 권종까지 혼합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구분이 어려운 편. 2차는 대략 선행판, 3차는 1970년대를 주름잡는 통화라 보면 된다. 특히 1966년 한국조폐공사에서 처음 원화 동전(1원, 5원, 10원)을 생산해내면서 1차 저액 지폐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전량 국내생산이지만 5천원권은 영국 데라루의 원판을, 1만원권은 일본 조폐국의 원판을 사용하여 찍어냈다. 그나마 같은 동양인이라 그런지 세종대왕님은 은근히 작화보정(...)지금의 인자한 모습과 달리 위엄 날리는 모습이었다.을 받았지만 율곡 이이는... 망했어요급이었다. KBS 스펀지에서도 이 때의 율곡이이가 소재로 다뤄진 적이 있다.

Hanguk Won 2nd Series
모습 분류 액면 앞면 뒷면 발행
10원 첨성대 거북선 1962년 9월
50원 파고다공원의 팔각정 봉화, 무궁화 1969년 3월
100원 독립문 경회루 1962년 11월
500원 숭례문 거북선 1966년 8월
5,000원 율곡이이, 봉화 한국은행 본관 1972년 7월
10,000원 세종대왕, 무궁화 근정전 (경복궁) 1973년 6월
  • 1만원권 발행계획 당시 디자인은 앞면에 석굴암의 본존불상, 뒷면에 불국사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원판이 완성되고 시제품을 찍어내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의 재가를 받고 친필서명까지 받아낸 다음 공표하였는데, 그걸 본 두 메이저 종교단체가 합심하여 반발해 무산되었다. 기독교계는 왜 불교만 편애하냐!!는 식의 병크를, 불교계는 신성한 불상을 세속의 상징인 돈따위에 올릴 수 없다!!!는 식의 병크를. 결국 처음부터 다시 만드느라 1년 늦게 나왔다. 하지만 이미 주문한 용지까지 폐기할 자금의 여유따윈 없었기 때문에 그냥 인쇄해버렸다. 덕분에 가 만원권 왼쪽 은화의 석굴암 본존불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후 나 만원권이 발행될 때 석굴암 불상이 삭제되었다.
Hanguk Won 3rd Series
모습 분류 액면 앞면 뒷면 발행
100원 세종대왕 한국은행 본관 1965년 8월
500원 이순신, 거북선 현충사 1966년 8월
1,000원 퇴계이황, 무궁화 도산서원 1975년 8월
5,000원 율곡이이 오죽헌 1977년 6월
10,000원 세종대왕 경회루 (경복궁) 1979년 6월
  • 50원 주화(1972년 12월 1일), 100원 주화 (1970년 11월 30일)가 연달아 발행되면서 지폐가 점차 탈락하였다.

1차 (1962 ~ 1969)

1962년 6월 10일, 경재개발 5개년 계획에 발맞춰 "원"화의 복귀에 의의를 두어 제 3차 긴급통화 금융조치로 내놓은 권종다. 1기의 "원"화와의 차이점은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대한민국 환과의 교환비율은 10환 = 1원이고 지폐는 최대 신권 500원(=5,000환) 교환 한도라는 무리수를 두어서 반발과 논란이 심했다.북한의 5차 화폐개혁 못지 않은 실패작이라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개혁 이후에도 한동안 물가가 잡힐 생각을 안했으니... 따라서 1기 원화와의 비는 1000:1이 된다. 이 조치 이후로 기존의 환을 전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으나, 사용량이 폭주하는 소액권 보급에 차질이 생김에 따라(이 당시엔 원화 동전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50환과 10환 동전의 통용을 1975년 3월 21일까지 허용하였다.

비공식 별칭은 영제(英製) 시리즈. 전량을 영국의 데라루(De La Rue)사에서 인쇄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 한글폰트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어색해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디자인부터 인쇄까지 죄다 영국에서 했으니. (몰론 감수는 한국은행이 했다.) 종류는 1원부터 500원까지 6종이 발행되었는데, 1원 미만(옛 1환단위)의 소액을 처리하기 위해 10전과 50전짜리 지폐를 추가로 도입하여 모두 8종이 되었다.[2]

한국은행권 중에선 가장 비싼 값으로 수집가들에게 거래되는 시리즈이며, 가장 비싼 것은 총석정 50원이다.[3]그러니 집안을 샅샅이 뒤져보자

Hanguk Won 1st Series (Low)
10전 50전 1원 5원 10원
Hanguk Won 1st Series (High)
모습 분류 액면 앞면
50원 총석정
100원 독립문
500원

1기

0기 (한국은행 설립 전)

각주

  1. 회화에선 그냥 '코리안 원'이라 하지만 문서 등에선 South를 안 붙이면 북한 원과 혼동할 수 있으며, 이런 혼동을 피하고자 사전이나 카탈로그 등에서는 분단 이전의 원화(1945~1948. 1948년에 남한 정부가 수립되었기 때문.)만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2. 하지만 별로 인기가 없어서 얼마 안 가 사장되었다. 옛날돈을 취급하는 회현지하상가에 가보면 이게 다발로 쌓여있다.
  3. 걸레짝도 수만원 가량은 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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