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탄광선

단양탄광선(丹陽炭鑛線) 1948년에 계획되었으나 완공에 이르지 못한 중앙선협궤 철도이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단양탄광선은 1948년에 단양군 단양읍, 가곡면 일대의 단양탄전을 개발하기 위해 중앙선 도담역에서 사평간에 계획된 11.7km의 지선 철도이다. 당시 연료 수급의 긴급사정에 의해서 영암선 영월선과 함께 건설에 착수하였으나, 한국전쟁 발발 등으로 인해서 완공을 보지 못한 철도이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본래 단양탄광선은 일제 말기에 단양석탄공업(주)에 의해 탄광개발 목적으로 면허가 발급된 8.1km의 전용철도였다. 그러나, 결국 완공을 보지 못한 채로 종전을 맞이하여 방치된 철도였다.[1]

해방 이후 석탄 수급에 있어 상당한 애로를 겪던 당시 대한민국은 강원도 일대의 무연탄 개발을 목적으로 철도건설을 모색하였다. 이에 따라 1948년에 영암선, 영월선과 함께 착수되어 어렵사리 비포장도로를 통해 트럭 운송하던 단양탄광의 수송을 철도로 전환하고자 포기되었던 단양석탄공업의 공사선[2] 을 활용하여 건설을 하기로 계획하였다.

계획상 궤간은 762mm의 협궤를 사용하였으며, 도담역의 북서쪽 방향에서 분기하여 루프 터널을 그리면서 중앙선 본선의 하부를 통과, 이후 도담삼봉 북쪽을 통과하여 가곡면 사평리에 이르는 계획이었다. 선로의 규격은 구배 25퍼밀, 교량은 남한강에 270m 규모의 교랑 등 총 320m, 최소곡선반경은 R=100미터로 계획되었었다. 계획노선 상에는 터널 2개소와 교량은 3개소가 예정되어 있었다. 극히 단거리 노선인 만큼 여객수송에는 유리하지 못할 것으로 보았으며, 석탄 위주의 수송이 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협궤인 만큼 계획 공기는 11개월의 단기간이었다. [3]

말로[편집 | 원본 편집]

그러나, 계획안을 제출하기는 하였으나 착공은 계속 지연되었는데, 보도로는 1949년 4월에 착수가 될 예정이었다.[4] 그러나 공사는 전적으로 ECA(미국 경제협조처)의 물자원조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그리 빠르게 진척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기록은 불명확한데, 한국전쟁에 의해서 사업이 전면 중단된 이후 딱히 재개되지 못하고 포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묻혀있다가 1960년대에 제2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에 따른 장래계획선 사평선으로 이름이 다시 거론되었으나[5] 건설에 이르지 못한 검토안 수준으로 종결된다.

각주

  1. 센코카이(2020). "조선교통사", 제4권. BG북갤러리. pp.322.
  2. 철도건설계획 문서에서는 도담에서 고수리간 8km 구간 중 80% 정도가 진척되었다고 한다.
  3. 교통부(1948). '철도건설계획'. 국무회의기록.
  4. '교통부서 일부착공 팔오억원예산으로'. 경향신문, 1949년 4월 7일 보도.
  5. 철도건설국(1969)."철도건설사". pp. 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