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Bob-R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7월 1일 (수) 16:10 판

개요

서양의 미술 양식 중 하나로 예술사적으로는 로마네스크 양식 이후, 12세기 중반에 등장하여 15~16세기 르네상스 양식이 등장할 때까지 존재한 예술양식을 칭한다. 고딕양식은 주로 건축양식으로 표현되지만 조각과 회화, 예술 공예품 분야도 포괄하는 명칭이다.[1]

명칭

고딕양식이 사용되었던 시기에는 고딕이라는 표현은 사용되지 않았는데 당대의 건축 관계자들은 자신의 건축물(즉,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을 "최신 양식(opus modemum)"이라 불렀고, 13세기 독일 연대기 작가들은 "프랑스 양식(opus francigenum)이라고 불렀다.[2] 고딕이란 명칭은 1440년, 이탈리아의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가 '중세적인 글쓰기'를 설명하면서 gothicus라는 라틴어 형용사를 사용하는 것으로 처음 등장하였다.[3] 이후, 16세기에 바사리(Vasari)는 자신의 저서 『예술가열전』에서 중세시대 건축양식을 비판할 때[4], 중세시대의 모든 건축을 튜튼(독일)적(tedesco) 양식이라고 불렀는데 tedesco라는 이탈리아어 형용사를 1610년, 프랑스인 예수회 신부가 라틴어 gothicus로 변역하여 사용된 것이 '중세적'이란 의미의 형용사 고딕이 건축용어로 사용된 최초의 경우로 본다. 1619년에는 프랑스어 형용사 gothique가 처음으로 건축용어로 사용되었고 1708년 혹은 1716년에는 명사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참고로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고딕이란 용어는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19세기에 들어서야 부정적인 의미를 벗어나게 되었다.[5]

19세기 초반에 고딕양식은 로마제국과 르네상스 사이, 중세 전체의 건축과 예술을 지칭하는 단어였지만 로마네스크라는 용어가 사용된 이후, 오늘날의 의미인 1140~1240년경 사이에 형성되어 유럽 전체로 퍼져나간 건축양식과 예술기법을 지칭하게 되었다.[6]

특성

형태적 특성

고딕 성당의 각 부분 명칭

종탑(Tower)

교회 건물 꼭대기나 옆에 세워서 종을 매달아 치도록 만든 탑을 지칭한다. 건물 꼭대기에 세워진 것과 교회 옆에 독립하여 세워진 것이 존재하며 종을 울려 사람들을 교회에 모이게 하거나 교회의 권위를 상징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종탑은 로마네스크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인간의 신에 향한 의지를 수직성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고있다. 고딕양식에서 종탑은 서쪽으로 면하는 입면부 상단에 설치되었으며 주로 남북의 두 개의 탑을 두고 있지만 한 개의 탑을 두는 경우도 있다.[7]

중앙 첨탑(Spire)

내부공간에서 신랑(身廊, Nave)과 트란셉트(Transept, 교차랑/횡단량)이 교차되는 부분의 넓은 공간은 교차 볼트(Cross Vault, 교차궁륭)에 의해 극대화 되는데 교차되는 부분이 외관에서는 중앙 첨탑으로 나타난다. 중앙 첨탑은 이전의 로마네스크 양식에서는 없었던 고딕건축만의 특징이며 플라잉 버트레스에 의해 끝이 뾰족한 포인티드 아치형의 볼트에 생기는 볼트에 의해 횡력을 저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위로 향하는 방향에서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아 언제라도 위쪽으로 증축할 수 있었다.[8]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

플라잉 버트레스

플라잉 버트레스는 벽이 없이 얹혀있는 무거운 지붕으로부터 아래지면까지 간접적인 힘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리브 볼트의 출현으로 불트 구조의 하중은 전부 리브가 받게 되었고 이를 한곳에 모여서 주형을 만들게 되어 이부분에 작용하는 횡력을 매우 크게 되었다. 고딕양식 초기에는 6분 볼트와 정방형의 2중 베이 체계를 보였는데 이는 볼트의 횡력을 외부에서 지지할 수 있게 된 4분 볼트 체계와 플라잉 버트레스의 출현 계기가 되었다. 신랑(身廊)과 아일이라고 불리는 통로 사이와 같이 벽체 하부의 아치를 지지한 곳에 플라잉 버트레스 구조법을 사용하여 횡력을 바깥쪽의 버트레스에 전달시켰다. 플라잉 버트레스 구조는 통로의 지붕보다 높게 통로 바깥에다 버트레스를 만들고 통로의 지붕 상부 공간에다 신랑(身廊)의 볼트가 집중하는 곳에서부터 바깥쪽 버트레스로 궁형의 아치를 구축하여 신랑(身廊)의 볼트로 부터 오는 횡력을 바깥쪽의 버트레스에 전하게 하여 그 횡력을 지지하도록 하는 구조이다. 플라잉 버트레스 구조는 고딕양식에서 보이는 독특한 수법으로 버트레스 상부에는 소 첨탑을 붙여 외관을 형성하도록 하였다. 플라잉 버트레스의 완성으로 볼트에 작용하는 하중은 플라잉 버트레스에 의해 지지하게 되어 신랑(身廊) 외벽에 넓은 창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벽면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로 인해 건물 입면에 대한 장식적 수법은 창에 집중되어 고딕적인 특징을 보이는 장식 격자(裝飾格子, Tracery)가 등장하였고 창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용하게 되었다.[9]

소 첨탑(Pinnacle)

플라잉 버트레스를 지지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부축벽 상부에 부축벽의 무게를 증가시켜 버트레스가 받는 횡압력에 대한 저항력을 증가시키면서, 장식적인 요소로 사용되었다.[10]

첨두아치(Pointed arch)

반원아치에 비해 높이의 자유로운 조절이 가능하고 횡압이 줄어들기 때문에 어떤 높이의 천정에서도 쓸 수 있다. 첨두아치는 천정뿐만 아니라 창이나 출입구 같은 개구부, 아케이드(Arcade)나 가구의 문양, 일반장식에 이르는 넓은 곳에서 사용되었다. 첨두아치는 오리엔트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사용되었으며 로마네스크 시대에도 가벼운 첨두아치가 사용되었으며 고딕 시대에는 건축 구조뿐만 아니라 장식에까지 첨두아치가 사용되었다.[11]

기념 삼문

팀파늄(Tympanum)이라는 출입문 위에 인방과 아치에 의해 둘러싸여진 공간이나 페디먼트(Pediment)에서 후퇴된 정면부분으 팀파늄에는 성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여러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이런 조각들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신자들이 성서 내용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 졌다. 팀파늄이 새겨진 정면의 세 문을 기념 삼문이라 지칭한다.[12]

클리어스토리(Clearstory)

성당의 신랑(身廊)에 존재하며 피어(Fier, 기둥) 사이에 두어지는 가로로 길게 뚫린 창을 말한다. 클리어스토리 창은 기둥과 기둥 사이의 전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창문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채워진다.[13]

각주

  1. 박민수, 「중세 한자도시의 건축과 예술」, 『독일언어문학』, 제52집, 2011, p.210
  2. 이은주, 「고딕양식의 탄생과 사상적 배경 : 생 드니 성당을 중심으로」, 『프랑스문화예연구 = Etudes de la culture françecise et des arts en France』, 제37집, 2011, p.389
  3. 송기형, 「로마네스크양식과 고딕양식의 연속성(1) : 초기 기독교의 교회당 건축」, 『프랑스학 연구』, 통권 제33호, 2005, pp.398-399
  4. 이은주, op.cit., p.390
  5. 송기형, op.cit., p.399
  6. Ibid., p.399
  7. 신현숙, 「근·현대 건축에 나타나는 고딕건축의 영향에 관한 연구 : 교회 건축을 중심으로」, 동의대학교 석사논문, 2004, pp.21-22
  8. Ibid., p.23
  9. Ibid., pp.23-24
  10. Ibid., p.25
  11. Ibid., p.25
  12. Ibid., pp.25-26
  13. Ibid., 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