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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6월 1일 철도 운영을 UN군으로부터 회수한 교통부는 수송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하여 "라"형 및 "마"형 대용객차(약칭 대객)를 제작하여 구간열차에 충당하였다. 참고로 과거 [[비둘기호]]에 사용하는 3등객차가 구 분류 기호로 "다"형 객차에 해당하므로, 그 아래의 차종임을 인지하고 제조, 사용한 것이다.
1955년 6월 1일 철도 운영을 UN군으로부터 회수한 교통부는 수송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하여 "라"형 및 "마"형 대용객차(약칭 대객)를 제작하여 구간열차에 충당하였다. 참고로 과거 [[비둘기호]]에 사용하는 3등객차가 구 분류 기호로 "다"형 객차에 해당하므로, 그 아래의 차종임을 인지하고 제조, 사용한 것이다.


* 다형 대용객차
* 라형 대용객차
*: 유개차를 기반으로 나무의자와 창문, 변소가 설치된 차량이다. 크로스시트 형식의 좌석이지만, 모켓이 씌워지지 않고 쿠션도 없는 그야말로 앉을 수만 있는 좌석 수준.
*: 유개차를 기반으로 나무의자와 창문, 변소가 설치된 차량이다. 크로스시트 형식의 좌석이지만, 모켓이 씌워지지 않고 쿠션도 없는 그야말로 앉을 수만 있는 좌석 수준.



2018년 12월 30일 (일) 19:30 판

代用客車

개요

대용객차는 과거 철도청의 전신인 교통부 철도국에서 사용하던 객차의 일종이다. 왜 대용이라는 말이 붙었는가 하면, 이것은 실은 객차가 아니라 유개화차를 개조한, 즉 화물용 차량이기 때문이다! 빈말로 사람을 화물처럼 수송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쪽은 정말로 화물차.

한국전 직후 한국철도는 심각한 객차 부족 문제를 겪게 되었다. 미군의 공습이나 북한군의 약탈 등으로 그나마 일제이후 유지해오던 객차들이 상당수 망실되었기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원조 등으로 기관차는 어느 정도 수량이 확보되었지만, 객차는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의 보유량이었기 때문. 그래서 상태가 좋은 화차 위주로 개조하여 여객을 태울 수 있는 최소한의 설비를 갖춘 대용객차로 쓰게 된 것이었다.

형식

1955년 6월 1일 철도 운영을 UN군으로부터 회수한 교통부는 수송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하여 "라"형 및 "마"형 대용객차(약칭 대객)를 제작하여 구간열차에 충당하였다. 참고로 과거 비둘기호에 사용하는 3등객차가 구 분류 기호로 "다"형 객차에 해당하므로, 그 아래의 차종임을 인지하고 제조, 사용한 것이다.

  • 라형 대용객차
    유개차를 기반으로 나무의자와 창문, 변소가 설치된 차량이다. 크로스시트 형식의 좌석이지만, 모켓이 씌워지지 않고 쿠션도 없는 그야말로 앉을 수만 있는 좌석 수준.
  • 마형 대용객차
    그야말로 극한차량. 유개차에 창문조차 없이, 나무로 된 장의자(롱시트)와 변소만 설치되었으며, 환기창 4개만이 시공되었다.

운용

휴전 직후인 1953년 12월 1일에 설정된 통근열차에 40량의 대용객차가 투입된 것으로 최초 투입이 이루어졌다. 이후 1955년 518량, 1959년 102량, 1961량 255량의 대용객차가 보충되어 운용되었다. 도합 900량에 이르는 수준으로 그야말로 하위 열차는 전부 대용객차를 사용했던 셈.

대용객차는 이후 1964년까지 정기열차에 운용되었다. 1960년대에도 400량 가까이가 남아 있었으며, 1963년 연두 사업계획 보도에서도 250량의 대용객차가 남아있으며 이를 해소하겠다는 언급이 나온다. 1963년 부산철도국 관내에 61량이 남아 있었다는 보도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