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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1969년 4월 22일~ )은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교수]]다.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현재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소장 및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외과장을 역임하고 있다.<ref>{{웹 인용 |url=http://hosp.ajoumc.or.kr/Center/DoctorIntroduce.aspx?DC=5V%2FIgAoqam3CMxRQyzkRKw%3D%3D |제목=의료진 상세 |저자=아주대학교병원 |날짜= |웹사이트=아주대학교병원 홈페이지 |출판사= |확인날짜=2017-11-16 }}</ref> 한국의 중증외상분야에서는 최고 권위자로, 대중에게는 2011년의 [[아덴만 여명 작전]]의 일화로 유명해졌다.
'''이국종'''(1969년 4월 22일~ )은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교수]]다.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현재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소장 및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외과장을 역임하고 있다.<ref>{{웹 인용 |url=http://hosp.ajoumc.or.kr/Center/DoctorIntroduce.aspx?DC=5V%2FIgAoqam3CMxRQyzkRKw%3D%3D |제목=의료진 상세 |저자=아주대학교병원 |날짜= |웹사이트=아주대학교병원 홈페이지 |출판사= |확인날짜=2017-11-16 }}</ref> 한국의 중증외상분야에서는 최고 권위자로, 대중에게는 2011년의 [[아덴만 여명 작전]]의 일화로 유명해졌다.


또한 국방부의 의무자문관으로도 활동중에 있다. 대한민국 해군 명예 중령이기도 하다. 아주대학교에서 2020년에 해군으로 파견되었는데 2022년 8월에 국방부의무자문관이 되었고 2023년에는 해군작전사령부의 발전위원에 위촉되기도 했다.
또한 국방부의 의무자문관으로도 활동중에 있다. 대한민국 해군 명예 중령이기도 하다. [[아주대학교]]에서 2020년에 해군으로 파견되었는데 2022년 8월에 국방부의무자문관이 되었고 2023년에는 해군작전사령부의 발전위원에 위촉되기도 했다.


== 생애 ==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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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열악한 대한민국의 응급의료체계와 중증외상환자를 적시에 치료할 수 있도록 물질적ㆍ제도적 지원을 피력하였고, 정치권에서 논의된 끝에 이른바 이국종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나마 권역별로 중증외상센터를 개설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으며, 그간 소홀하게 여겼던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열악한 대한민국의 응급의료체계와 중증외상환자를 적시에 치료할 수 있도록 물질적ㆍ제도적 지원을 피력하였고, 정치권에서 논의된 끝에 이른바 이국종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나마 권역별로 중증외상센터를 개설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으며, 그간 소홀하게 여겼던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법안이 개정되고, [[권역외상센터|권역별 중증외상센터]]가 설립된 이후로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전히 고된 외상외과에 지원하려는 [[의사]]들은 손에 꼽히는 수준으로 적고, 여전히 의사나 환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은 미흡한 상태라고.<ref>인터뷰에서 밝히길 자신의 후배 의사는 1년 중 집에 들어간 시간이 단지 4일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ref>
그러나 법안이 개정되고, [[권역외상센터|권역별 중증외상센터]]가 설립된 이후로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전히 고된 외상외과에 지원하려는 [[의사]]들은 손에 꼽히는 수준으로 적고, 여전히 의사나 환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은 미흡한 상태라고.<ref>인터뷰에서 밝히길, 자신의 후배 의사는 1년 중 집에 들어간 시간이 단지 4일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ref>


그렇다고 능력이 떨어지는 의사는 전혀 아니다. 경력쪽에서도 보았듯 총상을 입은 환자를 모두 살려내기도 했으며<ref>심지어 석해균 선장의 경우 본인이 현지에선 불가하다 판단하고 대한민국으로 와서 수술을 집도했다.</ref> 일반적인 총상이 아닌 경우에는 대부분 이국종 교수가 집도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 한참 전문의로 일하던 와중 [[미국]]에서 총상 치료법을 배워오겠다고 했으나 주변 사람들이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끝끝내 미국에서 치료법을 배워왔고, 이 치료법을 토대로 석해균 선장과 귀순자를 치료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능력이 떨어지는 의사는 전혀 아니다. 경력쪽에서도 보았듯 총상을 입은 환자를 모두 살려내기도 했으며<ref>심지어 석해균 선장의 경우 본인이 현지에선 불가하다 판단하고 대한민국으로 와서 수술을 집도했다.</ref> 일반적인 총상이 아닌 경우에는 대부분 이국종 교수가 집도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 한참 전문의로 일하던 와중 [[미국]]에서 총상 치료법을 배워오겠다고 했으나 주변 사람들이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끝끝내 미국에서 치료법을 배워왔고, 이 치료법을 토대로 석해균 선장과 귀순자를 치료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 시점에 배운 기술 중 하나인 '손상 통제 수술'이라는 개념을 국내에 도입하고 이를 기반으로 만든 의사이기도 하다. 이 개념은 생명에 위험을 줄 수 있는 부위를 응급수술로 처치한 뒤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기까지 기다린 후 수술을 진행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당시 외상환자는 끽해야 5%의 확률로 살아날 수 있었는데<ref>쉽게 말하면 "외상 환자 =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환자" 와 같았다.</ref> 이 방법을 통하여 약 40%까지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엔 이러한 수술 방식을 외과 의사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불만과 난색을 표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방식을 사용해서 치료했던 사람이 바로 [[2017년 공동경비구역 북한군 귀순 사건]]의 귀순 병사이다.
게다가 이 시점에 배운 기술 중 하나인 ‘손상 통제 수술’이라는 개념을 국내에 도입하고 이를 기반으로 만든 의사이기도 하다. 이 개념은 생명에 위험을 줄 수 있는 부위를 응급수술로 처치한 뒤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기까지 기다린 후 수술을 진행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당시 외상환자는 끽해야 5%의 확률로 살아날 수 있었는데<ref>쉽게 말하면 ‘외상 환자 =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환자’와 같았다.</ref> 이 방법을 통하여 약 40%까지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엔 이러한 수술 방식을 외과 의사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불만과 난색을 표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방식을 사용해서 치료했던 사람이 바로 [[2017년 공동경비구역 북한군 귀순 사건]]의 귀순 병사이다.


이 사건 및 그동안의 통계를 계기로 대한외과학회에서는 '손상 통제 수술'을 필수적으로 공부하는 내용이 되었으며, 그 내용을 '전부' 이국종 교수가 집필했다.
이 사건 및 그동안의 통계를 계기로 대한외과학회에서는 ‘손상 통제 수술’은 필수적으로 공부하는 내용이 되었으며, 그 내용을 ‘전부’ 이국종 교수가 집필했다.


== 기타 ==
== 기타 ==
* MBC의 의학 드라마 방송 《[[골든 타임 (드라마)|골든 타임]]》의 등장인물 최인혁의 모델이다. 사실 골든 타임이라는 용어는 와전된 용어이며, 이국종 교수 자신은 골든 아워라는 표현이 정확한 용어라고 말했다.
* MBC의 의학 드라마 방송 《[[골든 타임 (드라마)|골든 타임]]》의 등장인물 최인혁의 모델이다. 사실 골든 타임이라는 용어는 와전된 용어이며, 이국종 교수 자신은 골든 아워라는 표현이 정확한 용어라고 말했다.
* 상당히 무표정한 모습으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데 '음악' 이야기에는 화색이 돋는다고 한다. 줄곧 수술을 하고 나서 쉬는 시간에도 음악을 들으며 쉰다고 한다. 특히 록 음악을 좋아하며 가장 좋아하는 곡이 린킨파크의 'New Divide' 라고 한다.
* 상당히 무표정한 모습으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데, ‘음악’ 이야기에는 화색이 돋는다고 한다. 줄곧 수술을 하고 나서 쉬는 시간에도 음악을 들으며 쉰다고 한다. 특히 록 음악을 좋아하며, 가장 좋아하는 곡은 린킨파크의 <New Divide>라고 한다.
* 상당한 과로로 인해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밝히길, 오른쪽 눈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 상당한 과로로 인해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밝히길, 오른쪽 눈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 과로로 인해 사고가 난 적이 있는데, 그 때 왼쪽 얼굴이 마비되었다고 한다.
* 과로로 인해 사고가 난 적이 있는데, 그 때 왼쪽 얼굴이 마비되었다고 한다.
* 인터뷰에서 '죽는 날 관 속에 가지고 갈 것은 그동안 치료한 환자의 명부'라고 밝힌 적이 있다.
* 인터뷰에서 “죽는 날 관 속에 가지고 갈 것은, 그동안 치료한 환자의 명부”라고 밝힌 적이 있다.
* 소아정신과 의사로 유명한 [[오은영]]의 제자라고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ukamtB3Wz8 대화의 희열]에 [[오은영]]이 나와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때 이국종이 제자로 있었다'고 밝혔다.
* 소아정신과 의사로 유명한 [[오은영]]의 제자라고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ukamtB3Wz8 대화의 희열]에 [[오은영]]이 출연하여 “내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때 이국종이 제자로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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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대한민국의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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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대한민국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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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전주 이씨]]
[[분류:아주대학교 동문]]
[[분류:서울 강서구 출신]]

2024년 3월 19일 (화) 22:09 기준 최신판

이국종
李國鍾
이국종.png
인물 정보
다른이름 블라시오(세례명)
출생 1969년 4월 22일 (55세)
서울특별시 강서구
국적 대한민국
학력 명덕고등학교
아주대학교 의학 학사 (1995)
아주대학교 대학원 의학 석사 (1999)
아주대학교 대학원 외과학 박사 (2002)
직업 의사, 대학 교수
종교 가톨릭
가족 2남

이국종(1969년 4월 22일~ )은 대한민국의사이자 교수다.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현재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소장 및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외과장을 역임하고 있다.[1] 한국의 중증외상분야에서는 최고 권위자로, 대중에게는 2011년의 아덴만 여명 작전의 일화로 유명해졌다.

또한 국방부의 의무자문관으로도 활동중에 있다. 대한민국 해군 명예 중령이기도 하다. 아주대학교에서 2020년에 해군으로 파견되었는데 2022년 8월에 국방부의무자문관이 되었고 2023년에는 해군작전사령부의 발전위원에 위촉되기도 했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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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편집 | 원본 편집]

투철한 직업의식 및 사명감을 가진 의사[편집 | 원본 편집]

외상외과는 여러 의료분과중에서도 가장 고된 보직으로 손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 어디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중증외상환자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특성상 다른 분과들은 퇴근하여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도 대기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보험 수가도 낮게 책정되어있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좋지 않아 외상센터를 개설하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강하며, 의사들 역시 3D 업종을 넘어 4D 업종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인력 수급도 매우 어려운 분야이다.

이런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이국종 교수는 투철한 직업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서 중상자가 발생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119 구조 헬기에 몸을 싣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인물이다. 아덴만 여명 작전 이후 해적이 쏜 소총에 맞고 오만의 대학병원에 이송된 석해균 선장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 그는 한달음에 오만으로 날아가 긴급수술을 하였으며, 임대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앰뷸런스 항공기를 급히 섭외[2]하여 한국으로 이송한 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수차례 수술을 집도하고 무사히 석 선장을 회복시켜 유명세를 탔다.[3]

그리고 열악한 대한민국의 응급의료체계와 중증외상환자를 적시에 치료할 수 있도록 물질적ㆍ제도적 지원을 피력하였고, 정치권에서 논의된 끝에 이른바 이국종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나마 권역별로 중증외상센터를 개설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으며, 그간 소홀하게 여겼던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법안이 개정되고, 권역별 중증외상센터가 설립된 이후로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전히 고된 외상외과에 지원하려는 의사들은 손에 꼽히는 수준으로 적고, 여전히 의사나 환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은 미흡한 상태라고.[4]

그렇다고 능력이 떨어지는 의사는 전혀 아니다. 경력쪽에서도 보았듯 총상을 입은 환자를 모두 살려내기도 했으며[5] 일반적인 총상이 아닌 경우에는 대부분 이국종 교수가 집도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 한참 전문의로 일하던 와중 미국에서 총상 치료법을 배워오겠다고 했으나 주변 사람들이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끝끝내 미국에서 치료법을 배워왔고, 이 치료법을 토대로 석해균 선장과 귀순자를 치료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 시점에 배운 기술 중 하나인 ‘손상 통제 수술’이라는 개념을 국내에 도입하고 이를 기반으로 만든 의사이기도 하다. 이 개념은 생명에 위험을 줄 수 있는 부위를 응급수술로 처치한 뒤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기까지 기다린 후 수술을 진행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당시 외상환자는 끽해야 5%의 확률로 살아날 수 있었는데[6] 이 방법을 통하여 약 40%까지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엔 이러한 수술 방식을 외과 의사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불만과 난색을 표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방식을 사용해서 치료했던 사람이 바로 2017년 공동경비구역 북한군 귀순 사건의 귀순 병사이다.

이 사건 및 그동안의 통계를 계기로 대한외과학회에서는 ‘손상 통제 수술’은 필수적으로 공부하는 내용이 되었으며, 그 내용을 ‘전부’ 이국종 교수가 집필했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MBC의 의학 드라마 방송 《골든 타임》의 등장인물 최인혁의 모델이다. 사실 골든 타임이라는 용어는 와전된 용어이며, 이국종 교수 자신은 골든 아워라는 표현이 정확한 용어라고 말했다.
  • 상당히 무표정한 모습으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데, ‘음악’ 이야기에는 화색이 돋는다고 한다. 줄곧 수술을 하고 나서 쉬는 시간에도 음악을 들으며 쉰다고 한다. 특히 록 음악을 좋아하며, 가장 좋아하는 곡은 린킨파크의 <New Divide>라고 한다.
  • 상당한 과로로 인해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밝히길, 오른쪽 눈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 과로로 인해 사고가 난 적이 있는데, 그 때 왼쪽 얼굴이 마비되었다고 한다.
  • 인터뷰에서 “죽는 날 관 속에 가지고 갈 것은, 그동안 치료한 환자의 명부”라고 밝힌 적이 있다.
  • 소아정신과 의사로 유명한 오은영의 제자라고 볼 수 있다. 대화의 희열오은영이 출연하여 “내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때 이국종이 제자로 있었다”고 밝혔다.

각주

  1. 아주대학교병원. 의료진 상세, 아주대학교병원 홈페이지. 2017년 11월 16일에 확인.
  2. 섭외 과정에서 당국의 일처리가 미흡하여 섭외시간이 자꾸 늘어지자, 보다못한 이국종 교수는 자신의 사비라도 지불할테니 어떻게든 빠른 시간안에 항공기를 섭외하도록 요청하였고, 한국에 도착한 이후 정부에서 지급보증을 해주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3. 후일담으로 석 선장의 수술 및 치료과정에서 막대한 금액의 병원비가 발생하였는데, 석해균 선장이 몸담고 있던 삼호해운은 부도로 인해 지급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결국 아주대학교병원은 이사회를 열어 석해균 선장의 치료비 일체를 손실비용 처리하여 손해를 떠안았다고 한다.
  4. 인터뷰에서 밝히길, 자신의 후배 의사는 1년 중 집에 들어간 시간이 단지 4일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5. 심지어 석해균 선장의 경우 본인이 현지에선 불가하다 판단하고 대한민국으로 와서 수술을 집도했다.
  6. 쉽게 말하면 ‘외상 환자 =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환자’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