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

일어날

울면서 마속처형하였다는 의미로, 공정하고 엄정한 법 집행을 위해 사사로운 감정을 포기하는 것을 가리킨다. 휘루참마속(揮淚斬馬謖), 누참마속(淚斬馬謖)과 같은 표기도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유래[편집 | 원본 편집]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에 모두 등장하며, 제갈량북벌에 나서 중요한 길목인 가정의 수비를 책임질 사람으로 주변의 권유와 다르게 마속을 기용하였다. 그러나 마속은 제갈량의 기대에 못미치는 용병술로 위나라 상장인 장합에게 대패하여 결과적으로 제갈량을 비롯한 촉군 모두가 한중으로 후퇴하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이에 제갈량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 마속을 하옥시켰고, 마속이 옥중에서 죽자 이를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에서 유래한 고사이다.

정사[편집 | 원본 편집]

建興六年 ,亮出軍向祁山,時有宿將魏延、吳壹等,論者皆言以為宜令為先鋒,而亮違眾拔謖,統大眾在前,與魏將張郃戰於街亭,為郃所破,士卒離散. 亮進無所據,退軍還漢中. 謖下獄物故,亮為之流涕.良死時年三十六,謖年三十九.
— 촉서 39권 마량전의 일부

진수가 기록한 정사 삼국지 촉서 39권에 수록된 내용으로, 마속의 형인 마량의 열전에 기록된 내용이다. 건흥 6년, 제갈량이 촉군을 일으켜 기산으로 향했다. 주변 사람들은 마땅히 대군의 선봉으로 숙장인 위연이나 오의 등을 거론했지만, 제갈량은 사람들의 의견과 다르게 마속을 발탁하여 대군을 통솔하도록 하였다. 마속은 위나라의 명장 장합을 상대로 가정(街亭)에서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장합에게 패하여 군세가 흩어지고, 마속을 포함한 지휘부도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퇴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갈량은 진군을 하려해도 거점으로 생각했던 가정이 무너지면서 퇴로가 끊길 것을 우려하여 군대를 한중으로 퇴각시켰다. 이후 마속은 하옥되어 죽었다. 제갈량은 그를 위해 눈물을 보이며 슬퍼했고, 마량이 죽을 때 나이는 36세였고, 마속은 39세였다.

연의[편집 | 원본 편집]

삼국지연의》에서는 정사의 간략한 언급에 살을 붙여 더욱 풍부한 이야기로 각색되었다. 제갈량이 북벌에 나서면서 중요한 길목으로 생각한 가정을 지키는 임무를 누구에게 맡길지 고민하였는데, 정사와 유사하게 주변에서는 경험이 많은 위연을 추천하였으나, 제갈량의 결정은 뜻밖에도 마속이었다. 제갈량은 위연의 용맹을 진군하는 걸림돌을 제거하는 역할로 생각하였고, 마속에게는 그간 제갈량이 그에게 보낸 신임[1]과 실전 경험을 통해 확실한 후계자로서 능력을 검증해보려는 심산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마속이 행여 실수라도 저지를까 걱정된 제갈량은 왕평을 부장으로 딸려보냈고, 길목만 잘 지키면 된다는 조언도 남겼다.

제갈량의 기대와 다르게 마속은 전장에 도착하자마자 길목에 진영을 꾸리지 않고 뜬금없이 주변 높은 고지에 진영을 꾸리겠다고 말한다. 이에 왕평은 만약 적군이 고지를 포위하면 마땅한 탈출구도 없는 지형이니 승상의 말씀대로 길목에 진영을 꾸리고 잘 지켜야한다며 반대했지만, 마속은 고지를 점령한 상태에서 적군의 동태를 감시하면서 위에서 아래로 기세를 몰아 충분히 격파가 가능하다며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고지에 진영을 꾸렸다. 보다못한 왕평은 자신의 군대라도 길목을 지키겠다면서 마속의 본영에 합류하지 않고 길가에 진영을 꾸렸다.

사마의 역시 가정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장 장합을 보내 가정을 점령하라는 명을 내렸고, 장합은 대군을 이끌고 가정으로 진군했다. 가정에 도착한 장합은 촉군이 고지에 진영을 꾸린것을 보고는 적장을 비웃으며 대군을 몰아 고지를 포위했다. 마속의 생각과는 다르게 장합은 포위망을 구축한 후 물길을 끊고 고사작전을 실행하였다. 고지에 고립된 마속은 보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식수도 부족해지면서 어려움에 처했고, 이런 상황을 파악한 장합이 군사를 몰아 진격해오자 촉군은 이렇다할 전투도 치르지 못하고 와해되어 패퇴하였다. 산 아래에 진영을 꾸렸던 왕평이 그나마 건재를 유지하면서 퇴각하는 병사들을 통솔하여 후퇴하였고, 가정은 위나라에 넘어가고 말았다.

마속이 장합에게 패해 가정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한 제갈량은 퇴로가 차단당할 우려가 높아 결국 모든 촉군을 한중으로 퇴각하라 명했고, 마속에게는 패전의 책임을 물어 참형에 처했다. 주변에서는 인재가 모자란 촉의 상황을 고려하여 그에게 선처를 베풀라는 의견도 제시되었으나, 제갈량은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모두에게 법의 준엄함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는 대답을 하였다. 죽기 전 마속은 제갈량에게 자신의 가족들을 잘 보살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에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가족들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말한다.

마속을 참한 후 제갈량은 문득 유비가 "마속은 실제보다 말이 앞서는 사람이니 그를 중하게 쓰지 말라."는 유언을 떠올리며 자책하기도 하였다.[2]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코에이영걸전 시리즈 중에서 특히 제갈량이 주인공인 공명전의 경우 읍참마속의 상황이 잘 묘사된다. 여기에서 마속을 용서할지, 역사대로 처형할지 선택지가 등장하고, 대다수 플레이어들은 거리낌없이 마속의 목을 날리게 된다. 이유는 마속을 처형하면 이후 제갈량을 제외한 모든 장수들의 레벨이 5씩 증가하기 때문. 또한 장막 안에 등장하는 대다수 장수들은 마속에게 선처를 제안하나, 유독 왕평만은 등을 돌린 채 "제갈량의 선택에 따르겠으나 전장에서 희생된 병사들의 심정도 헤아려 달라."는 말을 한다.
  • 마속을 참수하였다는 의미에서 읍참마속이라는 고사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정사에서는 단순히 마속이 옥중에서 죽었다는 기록만 남아있어 실제로 마속이 처형당해 죽었는지, 혹은 옥중에서 병사하거나 자결하였는지 등 상세한 죽음의 경위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각주

  1. 칠종칠금의 고사도 연의에서는 남만 정벌에 나서면서 참군으로 종군하던 마속이 적을 단순히 사로잡는 것이 아닌 그들의 마음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듣고 제갈량이 몹시 흡족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2. 정사에서는 제갈량이 유비의 유언을 떠올리며 자책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