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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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 원본 편집]

사형수의 목을 베는(자르는)형벌로, 세계적으로 많이 행하여졌던 처형 방식이다. 현대에서는 그 잔인성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시행하지 않지만, 일부 아랍 국가에서는 여전히 시행하고 있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에서는 포로를 참수[1]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유투브에 버젓이 올려 보여주어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특징[편집 | 원본 편집]

목이 잘리고, 잘린 단면이 적나라하게 보이고, 피가 솟구치는, 얼핏 보면 잔혹해보이는 비주얼과는 달리 되려인류 역사상 존재하던 사형방식 중 가장 온건하고 자비로운 편에 속했다. 운 좋게 한번에 목이 잘리면 고통 없이 죽는 거고, 한번에 목이 잘리지 않더라도 여러번 내려치다 보면 목이 날아가며, 그 과정에서 고통이 느껴지긴 하겠으나, 다른 사형벚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산 채로 불에 태우고, 끓는 솥에 넣어 산 채고 찌거나 삶고, 십자가에 박아 매달아놓고 방치하고,밧줄에 매달아 잡아 당기면서 사지를 찢어버리고, 살가죽을 벗겨가며 천천히 고통스럽게 고문하면서 죽이는 형벌 등 온갖 잔학한 방식이 난무하던 과거 기준으로 보면 목만 달랑 자르고 끝내는 참수형은 오늘날로 치면 거의 안락사나 다름없었다.

현대 많은 국가에서 흔히 시행되는 교수형 또한, 단번에 경추를 또각거리며 순식간에 목을 분질러 버리지 얺는 한 오랫동안 매달려 목이 졸리면서 호흡곤란과 기도 압박 등을 겪으면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기도 한다. 다름 사형 집행 방식인 약물주사형은 그래도 독극물을 주입하는 것으로 비교적 고통스럽지 않고 안락하게 사형을 집행하는 방법이었다 하니 참수형은 과거 기준으로 보면 약물주사형이나 다름 없었다. 현대에서 참수형을 집행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집행 전 사형수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먹이고 최대한 날을 세운 검으로 신속하게 집행한다.

집행 과정[편집 | 원본 편집]

  • 본 항목은 조선의 사형집행 과정을 기초로 작성함.

과거 인기리에 방송했던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 때문인건지 사람들은 망나니가 술을 마시고 춤을 덩실덩실 추다가 단칼에 사형수를 베어 죽이는 것을 상상하기 쉬운데, 현실은 이와 많이 달랐다.

대략적으로 구전되는 사형 집행 과정은 아래와 같다.

참수형에는 사형선고 후 일정 기간 기다렸다 목을 베는 참대시와 사형선고와 동시에 형이 집행되는 참부대시가 있었다. 원칙적으로는 참대시의 형태를 취하였으나, 중죄를 지은 경우에는 참부대시를 하였다.

참부대시이든, 부대시이든 사형 집행을 취할 때가 되면 죄수를 이송한다. 다만 그 전에 조리돌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형수는 포도청 앞에서 처형되기도 하였으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포졸들은 소달구지 적재 칸에 사형수의 양팔과 머리칼을 매단 채[2] 감옥에서 사형장으로 사형수를 압송하였다. 사형장은 지금의 당고개, 서소문 밖 네거리, 무교동 일대, 새남터, 절두산[3] 등이었다.

사형장을 기준으로 약 50보 내외의 넓이로 장막을 둘러치고 구경꾼이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였으나 이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효수의 목적이 일반인들에 대한 위하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굳이 지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죄수가 형장에 도착하면 사형집행인, 즉 망나니는 죄수의 옷을 벗기고 죄인의 두 손을 뒤로 묶은 뒤 그의 가슴 밑에 나무토막을 받쳐 놓는다. 이때 죄수의 귀를 뚫어 관이전(貫耳箭)이라는 화살 2개를 꽂아 목뒤로 교차시킨다. 화살을 꽂는 이유는 칼을 댈 곳을 판단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얼굴은 땅 위에 떨군 상태인데, 얼굴에는 분칠을 하여 사형수임을 인식하기 쉽게 한다.

위 작업이 끝나면 사형집행인은 큰 칼로 사형수의 목을 자른다. 이때 상투에 줄을 매어 목을 베기도 하였는데, 이는 잘린 목을 나무에 매달아 효시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칼이 뭉툭하여 참수가 한 번에 이루어지는 일은 드물었다고 한다.

참수가 끝나고, 사형수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면, 사형집행인은 사형수의 목을 들어 나무에 매단다. 때로는 성문이나 다리에 매다는 경우도 있었다.[4]

문제점[편집 | 원본 편집]

서양에서 단두대가 개발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참수하기 위해서다.

사형제 자체의 문제점은 논외로 하고 참수검을 휘두른 망나니는 자신이 손에 든 칼로, 그것도 눈앞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것 자체로도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5] 흔히 망나니라는 말이 되먹지 못한 인성을 진 사람을 욕하는 말로 쓰이는 이유는, 과거 집행인들이 PTSD에 시달려 정신이 망가졌기 때문이다.즉, 잔혹한 경험을 지속적으로 겪으면서 인격이 피폐해지는 직업병에 걸렸다는 것.

더군다나, 목을 베는 집행인(망나니)도 나름대로의 검술 숙련이 된 사람이나 별 실수 없이 수월하게 목을 베지, 최대한 정확하고 강하게 칼을 휘둘러 목을 벤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심리적 압박감을 감내해야 함은 물론, 삐끗하다가 목이 제대로 베이지 않는 불상사가 벌어지곤 했다.

19세기 말 영국의 여행하 새비지 랜도어는 수구문(水口門, 광화문) 밖에서 참형 광경을 목격하였는데, 망나니가 처형장으로 가는 도중 주막집마다 들러 마신 술로 잔뜩 취해 단칼에 목을 베어내지 못하고 어깨를 찍는 등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칼을 휘둘렀다고 한다.[6]

달구지가 언덕 바로 아래의 평지에 멈추고 (중략) 사형 집행인에게 인계되었다. 무감각한 상태에서 그들은 등 뒤로 팔을 결박당하고 상투를 긴 줄에 묶인 채 얼굴을 땅 위에 떨구었다. 그들은 다시 옮겨지기 전까지 작은 발판 위에 가슴을 대고 땅 위에 엎드려 있었다. 죄인들의 자리 배치가 끝나자 사형 집행인은 그들의 머리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날이 무딘 칼로 계속해서 내리쳤다. - 새비지 랜도어 저,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7]

사형수의 가족들은 집행인에게 거금을 주고 한 번에 처형시켜줄 것을 부탁하곤 했다.

예를 들면 최양업 신부의 모친 이성례는 어린 자녀들을 살리기 위해 혼자서만 참수당하는 길을 택하였는데, 이에 자녀들은 자신들이 동양한 쌀과 돈 몇 푼을 집행인에게 가져다 주면서 '어머니가 고통 당하지 않도록 단칼에 베어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감동받은 사형집행인은 밤새 칼을 갈아 자녀들의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이덕화 주연의 영화 살어리랏다 초반에 이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 다만, 돈을 전달하는 사람이 사형수의 가족임을 이용한 잔혹한 장면이 나오니 감상에 주의하도록.....

현대의 참수형[편집 | 원본 편집]

현대의 참수형은 중동 여러 국가에 규정되어 있으나, 2011년 기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만 시행되고 있다.[8] 물론 여기서 다에시는 (2011년에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지만)나라 취급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에도 집행인을 맡을 자가 부족하여 총살형 등 다른 형벌로 대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참수형을 당하면 어떨까?[편집 | 원본 편집]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기에 목이 잘린 사형수가 어떤 기분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참조할만한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미 해병 제임스 저드 상병은 테러리스트에게 참수를 당하던 도중 구출되었는데, 이와 같은 발언을 하였다.

그들은 짧고 굵은 전투용 검으로 제 목을 한번 찌르고 고기 썰듯 썰었죠. 저는 극심한 공포로 소리를 질렀고 이렇게 죽는구나 하며 목에 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외로 통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처음엔 목 주위가 마취한처럼 감각이 없더니 갑자기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황홀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공포감에 소리를 쳤지만 기분이 너무 좋아 아이러니하게도 이순간이 계속 되길 바랬죠. - 제임스 저드 상병

이에 반하여, 사형을 당하는 순간, 신경이 파괴되어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는 입장이 있으나, 아직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은 없다.

참수형을 당한 인물[편집 | 원본 편집]

가상[편집 | 원본 편집]

실제[편집 | 원본 편집]

사형집행인[편집 | 원본 편집]

사형집행인 문서 참조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인도네시아에서는 자위행위를 하면 참수형을 당한다는 소문은 거짓이라고 한다. 다만, 최대 2년 8개월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10]
  • 과거 인기리에 방영했던 드라마 판관 포청천에는 처형도구로서 작두가 등장하는데, 실제 작두로 잘랐던 것은 극 중 묘사되는 이 아니라 허리였다고 한다.[11]

각주

  1. 국가가 집행하는 형벌이 아니기에 참수형이 아니다
  2.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등 천주교인들의 처형의 경우에는 수레 한가운데 세워진 십자가에 매달아서 이송하였다.
  3. 조선말 병인박해 당시 1만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절두산에서 참수당했다.
  4. 효수의 주목적은 일벌백계인바, 나무나 다리 밑을 지나는 백성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중국 한나라 때의 사형장은 수도 장안(長安·지금의 시안)의 남문 안에 있는 고가(藁街)였다. 그런데 이곳은 제후국(속국) 사절들이 머무는 만이저(蠻夷邸) 인근에 있었다. 이는 정변 등을 꿈꾸던 제후국의 사절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사형장의 살풍경…인간백정의 역사, 경향신문, 2014.12.2.
  5. 공감능력이 바닥을 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든 눈 앞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크고 작은 충격을 받기 마련이다. 사고나 재난, 전쟁등 고강도 소요사태가 발생하면, PTSD를 겪는 사례가 속속 나온다. 대표적 직종으로는 군인이 있다.
  6. 조선시대의 참형(斬刑), 2010.1.25.
  7. [http://contents.history.go.kr/mfront/ht/view.do?levelId=ht_006_0040_0010_0030 주제로 본 한국사 형정풍속도(刑政風俗圖)를 통해 본 조선의 형정(刑政)]에서 재인용
  8. 연례사형현황 보고서 2011 사형선고와 사형집행
  9. 본인은 노드족의 방식대로 정정당당하게 울프릭과 토릭이 싸우도록 성문을 열어줬다고 주장하지만, 솔리튜드의 인심은 제국에 넘어간지 오래라 그대로 뚝배기가 댕-강!
  10. 자위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7가지, 위키트리, 2016.2.16.
  11. 역사상 잔인했던 사형 5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