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황제(皇帝)는 제국군주를 지칭한다.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황제'라는 용어 자체는 진나라시황제에서 비롯된 것이며, 서양의 로마 제국 최고 지도자와 이에서 비롯된 칭호(카이저, 엠퍼러 등…)도 황제로 번역하고 있다.

정의[편집 | 원본 편집]

휘하로 수많은 제후들, 이하 들을 두는 봉건 형식을 채택하는 국가의 총수를 황제로 부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에선 잘 사용되지 않는 개념으로 전제주의나 왕권국가에서 주로 사용된다. 근대 이후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데, 사실상 제3제국인 나치 독일을 분기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1]

같은 개념이지만, 황제라는 개념이 창시된 곳은 동양과 서양이 제각각 다르며 그런 만큼 어원, 특성 등도 꽤 다르다.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편집 | 원본 편집]

동양의 황제는 전국시대의 패권을 쟁취한 진나라의 건국자이자 통치자였던 시황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동양권에서 으레 황제라고 칭하는 존재는 주로 중국의 '천자'[2]를 뜻한다. 원래 천자는 왕으로 표현되었지만, 시황제 때에 황제라는 호칭이 등장하여서 천자는 황제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동양의 경우 서양처럼 많은 지역이 하나의 제국 아래 강력하게 복속된 적이 전혀 없어서 각 국가들은 자신들만의 황제를 지니기도 했다. 중국 대륙이 분열한 상태에 이런 상황이 잘 나타났다.

다른 일례로 한반도고려 시대에 제국[3]으로 거듭났으며, (비록 허울 좋은 간판 뿐이었지만) 조선고종 시기에 고종이 국명을 대한제국으로 바꾸며 청일전쟁 이후로 군주의 호칭도 대군주에서 황제로 하는 제국이 되었다.

일본은 아예 '하늘의 자손'이라는 중국의 황제보다 높은 존재인 '천황(天皇 - 하늘의 황제)'[4]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5] 다만 일본 천황은 중국 황제보다도 힘이 전혀 없는 철저한 허수아비 신세였다. 실질적으로 동양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지배 범위가 넓어지는 광활한 중국 대륙을 지배하던 중국 황제가 거창한 칭호만 가진 일본 천황 따위를 가볍게 뛰어넘는 위대한 존재였다.

조선도 황제국인 대한제국으로 개편을 참조할 때에 근대 관료제 품계 등을 일본식 제도에서 가져왔어도 황실 예법 관련은 중국식 황제국 제도를 많이 가져왔다는 점, 베트남도 중국식 황제국 제도를 가져와서 외왕내제를 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권에 중국식 황제국 제도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다.

참고로 사실 조선 역시 시호는 왕으로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외왕내제를 행했다.[6] 형식상으로는 이품체강이라고 해서, 조선왕을 포함한 조선 관료들 관직을 중국의 관직보다 2단계 아래인 것으로 치는 제도가 있었다. 그래서 명나라와 청나라는 조선 국왕을 친왕에 버금가게 예우했다. 영의정 같은 정1품 관직은 명나라와 청나라에는 정3품으로 인정받았다.

유럽 문화권[편집 | 원본 편집]

유럽의 황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유럽에서 으레 황제라고 칭하는 존재는 주로 고대 로마 제국의 황제를 뜻한다. 특히 유럽 언어권의 경우 황제라는 어원은 전부 카이사르에서 비롯되었는데, 우선 엠페러(Emperor)라는 호칭은 카이사르의 군 계급이었던 임페라토르(Imperator) - 최고 사령관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엠프레스(Empress), 여제는 엠페러라는 호칭이 만들어지고 난 후 여성 명사로 후대에 창작된 것이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유럽에서 황제란 개념을 제공한 카이사르 본인은 정작 죽는 순간까지 '황제'였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가 실권을 잡았을 때, 로마 제국이 원로원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원로원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신이 유일한 지배자로 올라서면 많은 로마인들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에이다. 그래서 최고 지도자라는 간판만 원로원에게 남겨 살려두고 카이사르 자신은 원래 직함만 그대로 유지한 채 모든 권한만 자기 앞으로 챙기는 식으로 로마를 지배하려고 했었다. 그런데도 죽음을 당하자, 아우구스투스 등 후대 지배자들도 눈치가 보여(...) 그냥 '나는 카이사르의 뒤를 이었다'는 식으로만 스스로를 호칭하다보니 아예 카이사르라는 이름 자체가 황제를 뜻하는 명사화된 것이다.

또한 더불어 후대 황제들의 경우 앞서 서술했듯 스스로를 호칭할 때 독자적인 호칭을 만들기보다는[7] '나는 카이사르(의 뒤를 이은 자)다'라는 뜻에서 스스로를 '카이사르'로 칭하였다. (예: 네로 황제 → 네로 카이사르) 이것이 이후 여러 문화권으로 넘어가면서 현지 언어에 맞게 변하였는데 일례로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도 카이사르를 썼고, 이 카이사르가 슬라브 문화권과 제정 러시아로 건너가 짜르(Tsar)가 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을 타고 독일로 건너가 카이저(Kaiser)가 되었다.

영국인도를 식민지배한 이후 인도 황제를 영국 국왕이 겸직하여 칭했다. 프랑스나폴레옹 1세나폴레옹 3세 시절에 프랑스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프랑스인의 황제를 칭했다.

물론 유럽에도 외왕내제와 비슷한 개념이 존재하여서 신성 로마 제국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서 왕국의 왕은 왕국 내에서는 황제와 같다는 논리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유럽의 자주국 국왕들은 로마 황제의 뒤를 잇는다는 전통성을 가진 유럽의 황제들에게 내정간섭을 피하는 논리를 들어서 황제가 왕작을 허가한 경우인 제후왕을 제외하면 자주국 국왕으로 유럽 황제국이 임명한 제후 왕작들보다 더 높이 취급되었다. 독립국의 국왕은 독립국의 황제와는 사실상 주권국가의 군주로 동등하게 대우 받았다.

동아시아와 달리, 유럽에서 황제 칭호가 남발되지 않은 이유가 제법 있었다. 먼저 황제가 인정 받으려면 로마와 연관된 정통성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두 번째는 신성 로마 제국처럼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교회와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라고 인정받아야 했다. 근대 이전은 둘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반발이 컸고 둘 다 인정받아야만 유럽의 황제, 로마 황제의 계승자로 인정받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영국이 영국 식민제국으로 19세기와 20세기에 강대국 중의 강대국이라는 인식을 받으며, 초강대국의 자리에 있음에도 영국 국왕 자리를 황제로 올리지 않은 이유였다. 대신에 영국은 유럽이 자기들 세계 내에서 황제로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다른 문화권의 나라가 황제를 칭해도 큰 문제를 삼지 않는 편법을 내세워서 위에서 상술한 대로 영국령 인도 제국을 수립하여, 영국 국왕이 인도 제국 황제를 겸임하는 식으로 우회적으로 황제를 칭했다.

근대의 포르투갈브라질 제국이 독립하기 이전까지 이런 식으로 황제를 우회적으로 칭했다. 러시아도 제정 시절에 표트르 대제가 차르를 임페라토르로 바꾸어서 제 3의 로마, 로마식 황제 계승자를 칭할 때도 유럽은 러시아 제국을 자기들 문화권 밖이라고 인식해서 그들의 황제 자칭을 일정 부분 무시하면서도 상관없어 했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오스만 튀르크는 동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자신들이 동로마를 이었다는 식으로 룸 카이세리 등을 칭했다. 또 로마법을 비롯하여 로마적 특징을 19세기에 민족주의가 강해지기 이전까지 이슬람적 지배와 섞어서 병행하였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나치 독일의 수장 아돌프 히틀러는 자기 자신을 황제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독일을 신성 로마 제국(제1제국)과 독일 제국(제 2제국)에 이은 제 3제국으로 부르긴 했었다.
  2. 이 천자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왕조는 주나라 때부터다.
  3. 다만 주의할 점은 고려 제국은 일반 제국과는 달리 중국에게 조공을 바치는 등 킹왕짱 독립 구조가 아니라 중국에 어느 정도 복속되어 있었던 구조였다는 점이다. 즉 중국에게 복종은 하되 자국 내에서는 황제로 칭해졌었다. 이런 관행은 원나라에 복속당하면서 '왕'으로 내려앉은 뒤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호칭만 바뀐거지 구조는 동일했지만, 이것이 바로 창조경제 외왕내제)
  4. 현재도 유효한 호칭이기는 하나, 주변국들의 경우 어차피 자신들의 지배자가 아니라는 점, 게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에게 시달려 일본을 향한 반감 의식이 생긴 점을 고려해 그냥 '일왕 - 일본 왕'으로 부른다.
  5. 우익 성향의 일본인들이 중국인들을 향해서 "일본 천황은 하늘의 황제이며 반대로 중국 황제는 하늘의 자손이기 때문에 일본 천황이 중국 황제보다 높다"는 개드립을 시전한다. 그런데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솔직히 중국도 천황 즉 하늘의 황제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중국에서의 천황은 옥황상제를 의미하지 절대로 일본 천황 따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반일 감정이 매우 심한 중국에서는 이런 개드립을 펼쳤다가는 중국인들에게 총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실례다(...).
  6. 애초에 무슨 조니 종이니 하는 묘호라는 것 자체가 황제한테나 붙이는 건데 조선은 자기 나라 왕한테 그걸 신명나게 가져다 붙였다. 고려도 원에게 복속되기 전까진 묘호를 쓰다가 원에게 복속된 이후에야 묘호를 안 쓴 것(원나라 복속 이후 왕의 시호가 ~~왕으로 바뀜)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조선 성종 시대에 묘호를 임금인 성종이 제후국 예법에 맞지 않다고 폐지하려다가 신하들이 반대해서 없던 일이 되기도 했었다.
  7. 예외로 카이사르의 뒤를 이은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을 프린켑스(Princeps)라는 독자적인 호칭으로 부르긴 했다만, 이 역시 '1등 시민(로마 법상으로는 평범한 시민 중 한 사람이지만 각종 특권을 지닌 '특별한' 시민이라는 뜻)'이라는 뜻으로 절대로 왕이라는 뜻을 내포하지 않고 있었다. 이 호칭 또한 여러 언어로 퍼지면서 변형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영국의 프린스(Prince), 왕자...가 아니라 군주라는 뜻이다. 프린스가 왕자라는 뜻을 갖게 된 건 왕을 뜻하는 킹(King)이 추가되면서 프린스가 서유럽에서는 왕의 아래로 격하되어 생긴 의미이다. 물론 프린스는 서유럽이라도, 중유럽의 퓌르스트와 동유럽의 보이보드,그리고 크냐지 등 처럼 영역 제후의 뜻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리히텐슈타인과 안도라가 대표적이다. 중유럽, 독일어권에서는 프랑스와 영국이 쓰던 왕자라는 뜻의 프린스를 '프린츠'로 수입해서 영역제후와 왕의 왕자 호칭으로 사용했다. 참고로 프린세스(Princess)는 엠프레스(Empress)와 마찬가지로 후대에 생겨난 여성 명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