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이평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단체 사진.png

1939년 11월 17일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시안으로 떠나기 전 임정요인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 붉은 원으로 표시된 인물이 현이평이다.

玄以平.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현이평은 독립유공자 현익철의 조카로, 출생지와 출생년도, 독립운동 가담 이전 행적 등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1939년 중국 시안에서 나월환 등과 함께 함께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를 창설했다. 그는 선전, 초모 등 지하 공작을 벌여 일본군 내부의 한인 청년을 빼내어 공작대원으로 편입시키는 한편, 중국군과 합동으로 일본군의 후방 교란 및 일본군 막사 습격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1940년 5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시안 성내 남원문 가설극장(假設劇場)에서 ‘군민(軍民) 위안과 일선장병 위문품 모집을 위한 공연대회’를 개최했을 때, 현이평은 대회 규찰장(糾察長)으로 임명되어 「국경의 밤」,「한국의 일용사(一勇士)」,「아리랑」등을 10여 일 동안 공연하여 중국 군관민들에게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러던 1941년경, 그는 돌연 실종되었다. 이후 그의 행방은 1년간 묘연하다가 1942년 3월 초 부대원들에게 피살된 나월환을 수색하던 중국군이 연호공원 안에 있던 폐쇄된 우물 속에서 나월환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그의 시신 역시 발견되었다. 그가 무슨 이유로 피살된 뒤 그 우물에 암매장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부대원 간의 갈등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현이평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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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