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타나 광장 폭탄 테러

1969년 12월 12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

이탈리아 정부는 해당 테러가 좌익 세력, 그 중에서도 아나키스트가 벌인 일이라고 여기고 좌익 세력을 대규모로 탄압했지만 훗날 우익 세력이 저지른 일로 밝혀진다.

사건 경위[편집 | 원본 편집]

1969년 12월 12일 오후 4시, 이탈리아 밀라노 폰타나 광장에 있는 국립농업은행(Banca Nazionale dell'Agricoltura) 본점에서 8kg 규모의 폭탄이 폭발한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은행은 깨진 유리창 조각, 떨어져나간 사지, 비명지르는 사람들로 가득찬 지옥도로 변한다. 이 일로 17명의 사망자와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한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에서도 세 개의 폭탄이 폭발해 최소 14명의 부상자가 발생한다. 이후 다시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근처 한 은행에서 폭탄이 발견되었으나 경찰에 의해 해제된다.

여파[편집 | 원본 편집]

이탈리아 정부는 이 일이 아나키스트가 벌인 일이라고 여기고 수많은 아나키스트를 잡아들인다. 이 중에는 쥐세페 피넬리(Giuseppe Pinelli)라는 이름의 철도 회사 직원도 있었다. 12월 15일 밤, 루이지 칼라브레시(Luigi Calabresi)를 포함한 경찰들에게 심문 받던 피넬리는 밀라노 경찰서 창문에서 떨어져 죽는다. 이 미심쩍은 사건은 다리오 포의 연극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의 모티브가 된다. 칼라브레시는 1972년 5월 자신이 살던 아파트 앞에서 총에 맞아 죽는다.

이 사건으로 뜨거운 가을(Autunno caldo)이라고 불리는 시위의 시대가 끝나고 납탄 시대(Anni di piombo. 납의 시대라고도 함)라고 불리는 테러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

진상[편집 | 원본 편집]

사실 테러를 저지른 이들은 아나키스트가 아닌 오르디네 누오보(Ordine Nuovo, 신질서)라는 이름의 네오 파시즘 단체였다. 테러를 저지르고 이를 극좌파에게 덮어씌워 이탈리아인이 좌파를 증오하게 만드려고 한 것이다.

참고 자료[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