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李奎顯. 자는 우문(于文)·명오(明五), 호는 광암(廣菴)·광거재(廣居齋).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74년 1월 7일 경기도 여주군 홍천면 외사리에서 선략장군 용양위 부사과를 역임한 이준희와 경주 김씨 김명희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충무공 이순신의 10대손으로, 고조는 함경병마절도사를 역임한 이한오이고, 증조 이형수 역시 함경병마절도사를 맡았다. 또한 조부 이우권은 경사좌도 병우후를 역임했으며, 작은 아버지 이필희는 을미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이다. 그는 본처로 남양 홍씨 홍종두의 딸을 두었고, 후부인으로 연일 정씨 정덕원의 딸 정운희를 두었다.

이규현은 성재 유중교, 의암 유인석, 급계 배찬 등 당대 유학자들의 문인이었으며, 학식으로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1905년 7월 강원도 원주에서 원용팔이 1,000여 명의 사람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고자 할 때 이에 참여했다. 원용팔이 체포되면서 의진이 와해되자, 다시 충북 단양으로 가서 그곳에서 의병을 일으킨 정운경에게 가담했다. 이어 1907년 8월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에게 가담해 사서 겸 참모를 맡았다.

이강년이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처형된 뒤 고향에 은거하였고, 1911년 <취정록>을 지어 단양, 도담, 심곡 일대의 의병 활동에 대해 기록했다. 또한 <육의사찬문>을 지어 이준영, 주용규, 안승우, 홍사구, 서상렬, 이범직의 의병장으로서의 행적을 기술했다. 1951년 6월 24일 여주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이규현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에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 김기승, 천경석, <이순신 후손의 항일독립운동>, 이순신연구논총, 2011년.[1]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