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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嚴基善.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포장을 수여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29년 1월 21일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옆 건물에서 엄항섭연미당의 장녀로 출생했다. 본적지는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추록리이며, 이명은 '엄기매(嚴琪梅)'이다. 그는 어릴 때 독립운동을 전개한 부모를 따라 중국 관내를 전전하였고, 1938년 12월 10살의 나이로 한국 광복군의 전신인 한국광복전선 청년전지공작대에 참가해 연극과 무용 등을 통해 중국에 한민족의 참모습을 알리고, 일본군내의 한인 장병을 포섭하기 위한 역할을 수행했다.

1943년 2월부터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전부장으로 활약하던 부친을 도와 중국 방송에 출연해 임시정부의 활동 상황과 중국 현지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만행을 동맹국 및 국내 동포에게 알렸고, 일본군 내의 한국인들과 국내 동포들에게 염전사상을 고취시켰다. 또한 중국 토교의 깊은 산 계곡에 소재한 수용소를 찾아가 일본군 포로 중 한인 사병들을 위문하고, 일본의 패망이 머지 않았음을 알리는 선전공작에 적극 참여했다.

8.15 광복 후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수료하였고, 6.25 전쟁이 발발하자 모친 연미당과 함께 여주로 피신했으나 부친 엄항섭이 납북되는 비극을 맞이했다. 이후 그녀는 월북자 가족으로 오해받아 사회의 지탄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에서 중학교 교사로서 교편을 잡고 후학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주위에 너무 많은 독립유공자 후손과 전쟁 미망인들이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것에 충격받고, 1964년부터 대전 중구 선화동에 '루시모자원'을 설립해 전쟁 미망인과 자녀를 보살피고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교류하며 서로 위로하였다. 이후 '3.1여성동지회' 대전지부회장과 '광복회' 중앙대의원을 역임하였으며, 1993년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수여받았다.

말년에 심장질환으로 고생하여 대전 을지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다 2002년 12월 9일 사망했다. 향년 73세. 그녀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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